영국 화학 시장이 EU(유럽연합)와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Brexit)로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영국 하원은 2019년 4월3일(현지시간) 노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한 법안에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며 브렉시트를 5월22일로 연기했다.
그동안 유럽의 REACH 규제에 영국의 유일한 대리인(OR)을 통해 등록절차를 밟은 해외 화학기업이 많아 영국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또 영국시장이 브렉시트 이후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되고 있다.
유럽은 REACH 규제를 통해 미등록 화학물질을 EU 내부에서 제조 및 수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브렉시트 후 영국 화학 관련 사업자는 물론 영국 OR을 통해 등록한 해외 사업자들의 화학물질도 모두 EU에서는 제조·수입이 불가능해진다.
즉, 유럽에서 화학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EU의 OR을 통해 재등록해야 할 필요가 있으나 당국이 원하는 수준을 맞추기 어려워 당분간 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REACH는 영국이 EU를 탈퇴한 후 2020년 12월까지 이행기간을 둘 계획이었으나 노딜 브렉시트로 끝난다면 모든 등록 화학물질은 무효화되며, 브렉시트 시행일까지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물질은 통관절차를 늦추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시장 침체도 우려되고 있다.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 후에도 REACH와 동일한 자체 시스템을 마련하고 계속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힘에 따라 영국에서 화학제품을 취급해온 사업자들은 유럽 REACH에 맞추어 제출했던 데이터를 영국에 다시 제출해야 한다.
브렉시트 시행 후 60일 안에 예비등록, 2년 안에 본등록을 의무화하고 있으나 영국을 통한 REACH 등록 수가 독일 다음으로 많고, 영국기업만이 보유한 데이터는 10%에 불과하며 소유권이 해외기업에게 있다면 금전적 대가를 포함해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화학기업들은 영국 정부의 방침이 공표된 이후 많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유럽 화학물질청(ECHA)에 등록된 데이터 소유권은 유럽기업과 구축한 컨소시엄이나 시험실시기관 등이 보유한 것이 많고 영국의 상황에만 맞추어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국 화학기업들로 이루어진 영국 화학사업협회(CBA)가 영국 주요 화학기업 38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29%만이 데이터 소유자였고 나머지는 데이터 소유자가 대부분 유럽기업이어서 영국 정부에 데이터를 재제출하기 위해 소유권자와 협의하고 있으나 8%만이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데이터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면 다시 시험을 거쳐 데이터를 작성해야 해 경제적 리스크가 상당하며 2년이라는 본등록 기한을 맞출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 화학기업의 부담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데이터 이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영국에서 유통되는 화학제품은 대부분 제한을 받아 산업 전반이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영국 화학협회연합(ACA)은 재등록에 수반되는 화학기업의 부담이 10억파운드(약 1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재등록 요구는 생산기업에게만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수요기업이 화학물질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하며 넓게는 영국경제 및 고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에 따라 ACA는 영국 정부에 더 효율적이고 균형 잡힌 대체안을 마련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새롭게 공표된 화학제품 규제안은 정부 내부의 규제정책위원회로부터는 목적에 부합한 적절한 규제라는 호평을 받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데이터 소유권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화학기업이 추가적인 비용 부담을 져야 하고 데이터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새로 시험을 실시해야 해 비용이 상당할 것이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영국판 REACH의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도 제기돼 예비등록 기간을 120-180일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BA는 영국 정부에게 ECHA의 준회원으로서 REACH 아래 남는 방안을 모색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EU 측이 거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REACH 데이터를 그대로 영국에 이전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REACH는 EU 내에서만 데이터 융통을 허가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