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이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화학제품 (규제)전략이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유럽이사회는 유럽위원회가 2020년 10월 공표한 화학물질 정책의 장기적 비전인 EU(유럽연합) 화학제품 전략을 2021년 3월 승인했다.
오염 제로(0)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상황을 제외하고 화장품, 세제, 장난감 등 소비재에서 유해물질 사용을 일절 금지하는 내용이 핵심이며, 앞으로 전략에 맞추어 REACH 규제와 CLP 규제 등도 수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규제물질이 유해하다는 근거와 필수 불가결한 상황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산업계 일부에서는 경쟁력 저하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소비자 관점에서 유해 화학제품 사용규제
EU의 화학제품 전략은 2019년 12월 유럽위원회가 EU의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내세운 유럽 그린딜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그린딜은 사람의 행복과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위험화학물질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겠다는 전략이며, 순환경제 실현을 위해 화학물질 관리를 강화하고 재사용(Reuse) 및 재활용(Recycle)을 통해 유해화학물질이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화학제품 전략은 그린딜에 기반을 두고 있어 유해물질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화장품, 세제, 장난감 등 소비재에 대한 유해물질 사용을 절대 필요한 때를 제외하고는 전부 금지하며 내분비교란물질과 PFAS(Perfluoroalkyl Sulfonate) 등이 핵심 규제대상이다.
유해성 평가를 위해서는 화학물질을 병용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복합적 작용인 칵테일 효과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구체화를 위해 REACH 규제의 평가방법을 수정하고 용도별로 세분화돼 있는 기존의 규제를 소비재 사용을 중심으로 포괄화하는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안전하면서 지속가능한 설계 기준을 설치하고 개발과 보급을 위해 민관이 자금을 집중시키도록 촉진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노베이션을 자극함으로써 유럽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등록할 때 REACH에 완전히 준거한 정보를 제공한 물질이 전체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고 역내에 유통되는 화학물질 베이스 위험제품 대다수는 수입제품이라는 점에서 국경과 역내를 대상으로 한 화학제품 규제 적용을 강화할 예정이다.
유럽위원회가 채택한 화학제품 전략은 2021년 3월15일 EU 가입국 대표로 구성된 유럽이사회가 승인했다.
유럽이사회는 화학제품 전략이 안전하면서 지속가능한 설계라는 접근법에 쟁점을 둔 점을 참신하다고 평가하고 화학물질 제조부터 사용, 재활용, 폐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화학물질의 독성을 고려한 라이프 사이클적 접근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EU가 화학물질 규제를 통해 앞으로도 글로벌 시장의 선두자 역할을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화학산업계, 실효성 의문에 경쟁력 저하 우려…
유럽 화학산업연맹(CEFIC)은 화학물질 전략에 제시된 비전을 공유하고 있어 유럽의회와 마찬가지로 안전하면서 지속가능한 설계를 기준으로 설정하는데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는 전략의 2번째 목적인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화학물질을 위한 이노베이션을 촉진시키기 위한 방법의 구체성과 명확성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EU 역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그린딜을 실현하기 위한 솔루션을 역외로부터 구입해야 한다는 비난도 제기하고 있다.
또 화학물질 전략이 용도와 노출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물질 자체가 유해한지 여부만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해상 풍력발전용 고기능‧고내구 소재에 사용되고 있는 화학물질들은 난분해성이 특징이기 때문에 유해물질을 필요 이상으로 배출하지도 않고 열화되지 않으며 사용연수 이후 재활용도 가능하지만 유해성 관점에서는 분해성이 떨어져 유해물질로 구분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독일 화학산업연맹(VCI)도 EU의 화학제품 전략이 화학제품의 유해성만을 기준으로 규제안을 마련하자는 것은 특징적이지만 그동안 실제 사용되면서 어느 정도 리스크를 야기했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물질 자체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VCI는 위험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물질도 안전하게 취급할 수 있고 여러 용도에서 실제로 필요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강조하고 있다.
유럽 플래스틱 생산자 단체인 플래스틱유럽(Plastic Europe) 역시 화학제품 전략에 반발하고 있다.
플래스틱유럽은 유럽 화학물질청(ECHA)이 BPA(Bisphenol-A)를 내분비 교란물질이라며 고우려물질(SVHC)로 설정함에 따라 EU 일반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기각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 자체에 법적으로 결함이 있고 잘못된 진술을 바탕으로 증거가 구성돼 있어 판례로 남게 된다면 앞으로 신뢰성이 낮은 데이터와 불완전한 평가 결과만으로도 화학물질 규제를 남발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학적 지식에서 벗어난 자의적인 판단이 남발되면 그동안 세계 환경규제 흐름을 주도해왔던 EU의 지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유럽위원회,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착수
CEFIC은 2021년 3월 중순 화학물질을 어떻게 사용했을 때를 필수 불가결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지, 또 누가 필수 불가결한 상황인지 여부를 결정할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필수와 필수가 아닌 화학물질은 무엇으로 구분해야 하는지, 필수라고 인정할 때 인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정의에는 누가 동의해야 하는지, 현재 제기되고 있는 여러 우려 사항을 REACH에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 등을 논의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사했다.
유럽위원회, 유럽의회, 유럽 소비자단체, 학계, 산업계에서 참여한 토론에서는 화학제품 전략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에 대해 모든 관계자로부터 아직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럽위원회는 산업계와 과학계, 시민사회 대표를 모아 화학제품 전략 실시와 관련된 하이레벨 원탁회의를 설치했다. 3월18일 공모를 마감해 32명으로 구성했으며 앞으로 여러 이해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전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언을 구할 예정이다.
특히, 화학물질과 관련된 법률을 더욱 효율적이면서 효과적으로 기능화시키는 방법과 혁신적이면서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화학물질 개발 및 도입 분야를 넘어서 촉진시키는 방법에 주목하고 있다.
오염 제로 실현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이념을 현실화하기 위해 유럽위원회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화학산업계의 우려를 어디까지 참고해 반영할지 주목된다.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