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화학단지는 탄소중립 트렌드 확산을 타고 GX(Green Transformation)가 요구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개별기업 차원에서 탈탄소화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으나 일본은 정부 지원 아래 산업단지 단위로 GX에 나서고 있어 보다 빠르고 효과적인 경쟁력 강화가 기대되고 있다.
특히, 앞으로 10년 동안 20조엔을 발행할 GX 경제이행채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내에서도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과 개별기업 간 연계에 참고할 부분이 큰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석유화학, GX 없이 생존 불가능…
일본 석유화학기업들은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 GX가 필수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최근 석유화학 내수 감소로 NCC(Naphtha Cracking Center) 가동률이 1년 이상 80%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중장기적으로 전기자동차(EV) 보급이 본격화되면 석유제품 수요 둔화가 불가피하며 인건비‧물류비 상승에 따른 코스트 부담 확대로 생산설비의 해외이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폐쇄적인 산업구조로는 국제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경제적으로는 불리한 면이 있어도 장기적인 코스트 절감과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을 위해 에너지 및 원료 조달체계를 국내에서 확충해야 한다는 반론도 팽팽해 석유화학단지 재편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일본 정부 방침 역시 전체적으로 통일된 미래상을 제시하기보다 지역별로 차별화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 산업단지별 수요가 상이한 점도 지역별 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너지 수요가 막대한 수도권 인근의 게이요(Keiyo), 게이힌(Keihin) 단지는 차세대 에너지 생산기지로 역할이 요구되며, 주변 철강산업과의 연계가 가능한 슈난(Shunan) 단지는 관련 소재 공장을 집적시키는 식의 재편이 필요할 것으로 파악된다.
이밖에 일부 단지는 바이오 화학제품 생산을 위해 인근 농업 혹은 폐기물 처리업과 연계하는 사업모델 구축에 유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GX는 개별기업의 단독 투자로 달성하기 어려운 거대한 목표이기 때문에 일본 화학기업들은 유럽‧미국이 준비하고 있는 방식대로 정부 부처 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틀을 넘는 연계에 나선 후 범정부 차원에서 정리된 목표를 제시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도 공표된 정부의 에너지 관련 정책을 기준으로 개별기업 단위 혹은 인근기업과 연계한 형태로 각각 전략을 세우고 있으나 산업계 전체의 모습을 바꾸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이행채로 청정수소 인프라 지원
탄소중립 시대가 도래하면 재생에너지, 그린수소 등을 대량으로 저가에 공급할 수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국가가 에너지 자원국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부 화학단지들은 수소 등 청정연료 수송이 기존 화석연료에 비해 어렵기 때문에 수입해 사용하는 대신 아예 해외에 업스트림 설비를 건설하고 청정수소 등을 활용해 일정수준 생산된 상태에서 일본으로 들여와 반도체 소재 등 최종 다운스트림이 사용하는 구조를 확립함으로써 기존 산업단지 생태계를 아시아‧태평양 전체로 확장하는 구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GX 경제이행채를 통해 수소‧암모니아(Ammonia) 공급 인프라 정비를 지원할 방침이다.
대도시권에 대단지 3곳을 조성하고 지역별로 분산된 중규모 단지도 5곳 정도 지원할 예정이다.
대단지는 게이힌, 주쿄(Chukyo), 한신(Hanshin) 등 3대 공업지대에 조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게이힌 지역은 이미 가와사키(Kawasaki)와 요코하마(Yokohama)에서 수소를 도입해 산업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상태로 JFE Steel이 가동을 중단한 제철소 고로 부지에 신규 인프라를 건설하거나 도쿄(Tokyo)만에서 가장 깊고 대형선이 접안할 수 있는 부두를 사용할 수 있고, 인근에 가스화력발전소 7기가 있어 수소 혼소에 적합한 강점이 주목된다.
가와사키‧요코하마에서는 에네오스(Eneos)가 수소 에너지 공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만, 수소나 액화수소는 수송할 때 영하 섭씨 235도의 극저온을 유지해야 하며, 수소를 톨루엔(Toluene)과 반응시켜 MCH(Methyl Cyclohexane)로 변환해 상온에서 수송할 수는 있으나 수소 분리에 400도에 달하는 열을 가해야 해 수송 코스트가 만만치 않다는 제기가 지적된다.
CCU 기술로 그린 원료‧연료 공급 실현
주쿄 지역에서는 JERA와 IHI가 헤키난(Hekinan)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암모니아 혼소 실증실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도요타(Toyota) 그룹과 덴소(Denso), 아이신(Aisin)은 공장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CO2)를 포집해 수소와 조합한 후 메탄(Methane) 등으로 재이용하는 카본 리사이클에 도전하고 있다.
이밖에 도호(Toho)가스가 천연가스를 원료로 투입하는 수소 플랜트 건설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데미츠코산(Idemitsu Kosan)도 기존 정유공장 2곳 중 1곳에 수증기 메탄 개질(SMR) 장치로 설치한 후 수소 공급기지로 전환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한신 지역에서는 간사이(Kansai)전력이 화력발전소에서 천연가스와 수소 혼소를 추진하면서 수소 서플라이체인 구축을 적극화하고 있고, 최근 미쓰이케미칼(Mitsui Chemicals)도 암모니아 서플라이체인 구축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중규모 단지는 홋카이도의 이시카리(Ishikari)와 도마코마이(Tomakomai), 후쿠시마(Fukushima)의 오나하마(Onahama), 이바라키(Ibaraki)의 가시마(Kashima), 치바(Chiba)의 게이요, 니가타(Niigata), 도야마(Toyama), 오카야마(Okayama)의 미즈시마(Mizushima), 야마구치(Yamaguchi)의 슈난, 기타큐슈(Kitakyushu)의 히비키(Hibiki), 오이타(Oita) 등이 후보이다.
이바라키현은 이바라키항과 가시마항을 일체화한 암모니아 인프라 정비를 계획하고 있으며, 게이요는 게이힌과 합류하고 긴키(Kinki)까지 묶어 광역화하는 방안이 구상되고 있다.
일본은 2050년 전체 전력원 중 재생에너지가 60%를 장악하고 카본프리 화력이 약 30%, 원자력은 약 1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본프리 전력은 연소 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수소, 암모니아를 이용하거나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화학제품 원료로 재이용하는 이산화탄소 포집·활용(CCU) 화력을 가리킨다.
특히, CCU는 탄소중립 실현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최근 재생에너지 베이스 전력으로 만드는 그린 암모니아 역시 1세기 전 확립된 하버보슈법의 고온‧고압조건을 대체할 신기술 개발이 요구됨에 따라 CCU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된다.
전력 떠나 제조업 중심 접근 필요…
석유화학기업들은 일본 정부가 그린 원료 및 연료로 수소와 암모니아 서플라이체인 확립에 나서고 있으나 사실상 전력업 중심에 그쳐 실제 수소‧암모니아를 사용하는 제조업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게이요와 가와사키 단지의 에틸렌(Ethylene) 생산능력을 내수 수준에 맞추어 감산해 크래커별 경쟁력을 높이거나 지하 파이프라인으로 기초 원료를 융통하는 방안이 제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석유화학단지를 정유기업이 주도해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석유정제는 석유화학과 동일하게 안전성, 자급률, 경제적 효율성, 환경적합성을 지향하고 예전부터 화학산업과 친화성이 높기 때문으로, 이미 국내 정유기업들이 석유화학 사업을 확대한 것을 산업단지 차원으로 확장하는 것과 유사한 개념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화학산업은 범용제품을 중심으로 수익 악화가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에 석유화학 사업을 확대해온 국내 정유기업들은 수익 개선에서 한계에 부딪쳤다는 점에서 효과는 높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