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대표 구자영)은 명실상부한 국내 1위의 정유기업으로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한 후 줄곧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2011년 1월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정유ㆍ화학 사업을 분리하고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자원개발과 신ㆍ재생에너지에 집중하며 종합 에너지기업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석유파동과 Gulf 철수로 민영화
SK이노베이션의 전신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설립된 대한석유공사로, 대한석유공사는 글로벌 메이저인 Gulf의 투자를 유치해 원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데 집중했다.
석유공사는 1964년 3만5000배럴의 울산공장을 가동하면서 국내 석유산업의 서막을 알렸고,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성장을 지속하며 정제설비를 확대했다.
1967년에는 울산공장 확장을 통해 생산능력을 5만5000배럴로 늘렸고, 1968년에는 제2 상압증류설비(CDU) 6만배럴을 가동해 11만5000톤의 정제능력을 갖춤으로써 가동 3년 만에 정제능력을 3배 이상으로 확대했다.
1969년 호남정유의 등장으로 경쟁체제에 돌입했지만 석유공사는 정제설비를 확대하며 선두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석유화학 사업에도 착수해 1972년 국내 최초로 울산에 에틸렌 생산능력 10만톤의 NCC(Naphtha Cracking Center)를 건설했고, 제1 BTX 21만6000톤 플랜트도 가동하기 시작했다.
1977년에는 에틸렌(Ethylene) 생산능력을 15만5000톤으로, 1978년에는 제3 CDU 건설 및 확장공사를 통해 정제능력을 28만톤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1970년대 전 세계를 강타한 2차례의 석유파동은 국내에도 커다란 파급효과를 가져왔고, 대한석유공사 민영화의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1979년 이란의 회교도 혁명으로 촉발된 2차 석유파동 이후 중동 지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던 Gulf는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겨 한국 공급을 중단했고, 결국 1980년 8월 지분 50%를 완전 양도하고 공식 철수했다.
Gulf가 손을 떼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2차 석유파동이지만, 이전부터 석유화학 부문을 확대하려는 국내 경영진과의 갈등도 상당부분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 경영진은 석유화학제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지만, Gulf 측은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며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래프, 도표<SK이노베이션의 생산능력(2010)><국내 경질유 시장점유율><SK이노베이션의 석유ㆍ화학제품 매출(2010)><SK이노베이션의 사업현황(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