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기업들은 코스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원유 수입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2015년 말부터 원유 수출을 허용한 가운데 파나마 운항이 확장되면서 WTI(서부텍사스 경질유), 컨덴세이트(Condensate) 수입을 적극화하고 있다.
미국산 원유는 유럽 정유·화학기업들이 2016년부터 점진적으로 구매를 확대하고 있으며 중·남미, 아프리카도 수입을 늘리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인디아 등 중동산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도 미국산 수입을 적극 검토함으로써 코스트 절감 및 구매력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사우디, 카타르 등 중동 산유국들은 아시아 프리미엄 명목으로 한국, 일본 정유기업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요구하고 있어 수입선 다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원유 수입국들은 미국산 유입으로 경쟁이 이루어지면 중동 산유국들이 수요처 확보를 위해 공급가격 인하, 운송비용 감면 등을 제안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원유 수출금지 조치가 해제되더라도 수출 경제성 및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입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란이 경제재제 해제 이후 원유 수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국내 정유기업들도 컨덴세이트를 중심으로 거래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 원유 수출금지 해제 “고대”
미국이 2015년 12월 원유 수출금지를 해제함에 따라 글로벌 에너지 시장판도가 변화하고 있다.
미국 하원이 1975년 이후 40년만에 미국 본토의 원유 수출 허용을 의결하면서 글로벌 정유기업들이 수입 경제성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중동이 미국에 대한 원유 수출을 금지해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자 1975년 1차 오일쇼크 이후 원유 수출을 엄격하게 제한해왔다.
하지만, 2015년 12월 통합세출예산법을 통과시키면서 원유 수출을 허용함에 따라 2016년부터 미국산 원유가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수출금지 이전에는 국경이 인접해 있는 캐나다에만 대부분 수출했고 2014년부터 경질유인 컨덴세이트에 한해 제한적으로 수출을 허용해왔다.
미국기업들이 셰일가스(Shale Gas) 개발을 본격화함에 따라 부산물인 컨덴세이트 생산이 증가하면서 미국 정부에 원유 수출금지 완화를 강력하게 요구했고, 미국 상무부가 2014년 6월 텍사스 소재 2사에게 컨덴세이트 수출을 허용하는 등 점진적으로 원유 거래를 확대하고 있다.
2016년부터는 수출금지를 해제함에 따라 캐나다 수출비중이 줄었고 유럽 및 남미 등으로 수출선을 다변화하면서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Vitol, Tranfigura 등 원유 중개기업과 유럽 석유화학기업들이 미국산 원유 수입을 주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원거리에 위치한 일부 아시아 국가들도 구매선 다각화의 일환으로 미국산 원유 수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GS칼텍스가 최초 수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시장 관계자는 “미국이 원유 수출을 허용하면서 여러 국가들이 미국산 수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미국은 수출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 미국산 원유 수입 “신호탄”
미국산 원유는 유럽 및 중남미 수출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과 근거리에 위치한 중남미와 중동산 의존도가 높은 인디아가 수입을 확대하는 가운데 유럽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럽기업들은 중동산과 미국산을 모두 수입할 수 있는 지리적인 이점을 통해 기존의 사우디, 러시아, 이란산과 미국산을 경쟁시켜 구매력을 높일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유럽은 주로 브렌트유를 사용하고 있으나 미국 WTI 재고가 높은 수준을 유지해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2016년 초 수입을 확대한 것으로 파악된다.
원유 중개기업들이 차익 거래의 일환으로 WTI를 지중해 연안의 정유공장에게 공급했으며 미국 석유화학기업 중에는 Exxon Mobil이 최초로 수출한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Taxas에서 원유를 생산하고 있는 Enterprise Products Partners는 2016년 1월 초 WTI 60만배럴을 네덜란드 중개기업인 Vitol에게 판매했으며 ExxonMobil은 2016년 2월 이태리에 위치한 자사의 정유공장으로 수출을 추진했다.
ExxonMobil은 원유 수입선 다변화를 위해 Chevron, Continental Resources 등과 미국산 원유 수출금지 해제를 위한 로비를 지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산 원유는 2016년 2월 말 재고가 5억1800만배럴에 육박해 수출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시장 관계자는 “미국산 원유 재고가 높은 수준을 유지함에 따라 유럽에 공급이 가능했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유럽 정유기업들이 원유를 수입하는 또 다른 선택지가 생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GS칼텍스, 미국산 수입 적극적
GS칼텍스는 국내 최초로 미국산 원유를 수입해 주목된다.
미국 정유기업 Chevron이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어 미국산 원유 도입에 대한 관심이 높으며 가장 선제적으로 수입을 추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GS칼텍스는 컨덴세이트를 CDU(상압증류장치)에 투입해 나프타(Naphtha)를 추출하고 있으며 미국이 2014년 컨덴세이트 수출을 허용했을 때에는 코스트가 맞지 않았음에도 수입을 강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GS칼텍스는 2014년 중동으로부터 매달 200만배럴의 컨덴세이트를 수입했으나 가격인상으로 1/4분기 100만배럴로 줄였고 4월부터는 수입을 중단했으며 6월에는 미국산 40만배럴을 수입했다.
하지만, 미국산에 운송비를 추가한 최종가격이 중동산의 2배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시험 가동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파악되며 장기거래는 어려웠던 것으로 판단된다.
GS칼텍스는 미국의 수출금지가 해제됨에 따라 경제성을 검토한 끝에 2016년 11월 Eagle Ford에서 생산된 WTI 100만배럴을 수입했다.
GS칼텍스와 SK이노베이션이 미국산 컨덴세이트, 알래스카산 원유를 수입한 적은 있으나 미국 본토에서 원유를 수입한 것은 최초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WTI 재고에 따른 가격 약세가 지속되면 미국산 수입을 확대함으로써 원료 구매선을 다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GS칼텍스는 WTI 가격이 하락한 가운데 파나마 운항 확장으로 운송비가 절감되고 멕시코산과의 공동적재로 부대비용을 절감하면서 경제성을 확보한 것으로 판단된다.
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는 미국산 사용을 검토했으나 이란산 수입에 집중하고 있으며 S-Oil은 아람코(Saudi Aramco)의 영향으로 사우디산을 수입하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GS칼텍스는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아프리카·남미 수입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국산 수입에 관심이 많았다”며 “중국·일본 정유기업들도 미국산 구매를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산 원유 수입 “시기상조”
국내 정유기업들은 미국산 원유 수입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파나마 운하가 2016년 6월26일부터 확장·개통되면서 운송비 절감으로 미국산 컨덴세이트 및 WTI 수입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직까지는 경제성 확보가 쉽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컨덴세이트는 셰일가스, 천연가스 시추를 통해 발생하는 초경질 원유로 정제하면 일반 원유보다 많은 양의 나프타를 추출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은 ECC(Ethane Cracking Center) 기반의 석유화학산업을 영위하고 있어 나프타 생산에 사용되는 컨덴세이트 수요가 크지 않아 수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미국은 컨덴세이트 생산량이 2015년 일일 150만배럴에서 2020년 220배럴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돼 국내를 비롯한 아시아에서 수입을 점진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미국산 원유 및 컨덴세이트 수입을 크게 늘리지 못하고 있다.
국내 정유기업들은 CDU에 컨덴세이트를 투입하거나 컨덴세이트 스플리터(Splitter)를 통해 나프타를 추출하고 있다.
중동산 컨덴세이트는 나프타를 70-80% 가량 추출할 수 있으나 미국산은 수율이 50%에 불과해 높은 운송료를 부담하면서까지 수입할 이유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14년 미국이 컨덴세이트 수출을 허용한 이후 SK이노베이션과 현대오일뱅크가 미국산 컨덴세이트 입찰에 참여했으나 예상외로 가격이 뛰어 Mitsui상사에게 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2014-2015년 미국산 컨덴세이트를 일부 도입해 지속적으로 채용을 검토했으나 품질 문제와 운송비용 부담으로 포기했다.
미국산 컨덴세이트는 중동산과 비교해 황 함유량이 낮아 품질이 더 우수한 것으로 파악되나 국내 컨덴세이트 스플리터가 주로 중동산에 맞게 설계된 것도 문제시되고 있다.
또 파나마 운하는 확장 이후에도 200만배럴을 운송할 수 있는 VLCC(초대형원유운반선)급 선박이 통과할 수 없어 운송료도·기대만큼 낮아지지는 않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미국산 컨덴세이트나 원유 도입을 검토했으나 최근에는 카타르 뿐만아니라 이란산 수입을 확대하는 등 수입선을 늘리고 있어 상대적으로 미국산이 메리트를 잃었다”고 밝혔다.
미국, 수출 인프라 확보해야…
미국은 원유 수출을 본격화함에 따라 수출 인프라의 확충이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은 탱크터미널 등의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으로 경쟁 원유와의 가격차이, 수송비용 등 경제성 확보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40년 동안 원유 수입포지션을 고수해 멕시코만 연안의 항만은 대부분 수입 설비가 구축돼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6년에는 저유가에 따라 용선료가 낮게 형성되고 시험 수출물량을 제공하는 등의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원유 수출이 가능했으나 장기거래는 리스크가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WTI와 운송비를 합한 가격이 브렌트유보다 낮게 형성돼야하는데 WTI-브렌트유 가격차이가 수익성을 확보할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WTI-브렌트유의 가격차이는 2017년까지 크지 않고 미국의 원유 생산이 크게 증가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돼 단기적으로 미국산 도입을 낙관할 수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2016-2017년 WTI-브렌트유의 가격차이는 배럴당 1달러 수준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운송코스트를 고려하면 크게 메리트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 WTI 가격이 하향안정화돼 수출 경제성이 확보되면 인프라 확보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선제적인 투자가 요구되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2016년에는 미국 원유수출이 크게 확대되지 않고 있어 혼란이 없었으나 장기적으로는 탱크터미널 등 수출 인프라 구축의 중요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란산 컨덴세이트 경쟁력 높아…
이란은 경제재제가 해제됨에 따라 미국보다 수출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국내 컨덴세이트 시장은 카타르 의존도가 높았으나 SK이노베이션, 한화토탈, 현대케미칼 등이 이란산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 정유기업들은 이란과 거래를 확대함에 따라 2016년 1-8월 이란산 원유 수입이 전년동기대비 112% 증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현대오일뱅크는 카타르산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컨덴세이트를 비롯한 이란산 원유 수입을 확대하고 있으며 GS칼텍스도 이란산 수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란산 컨덴세이트는 SK인천석유화학과 한화토탈이 2016년 상반기 대량 구매했으며 하반기에는 현대케미칼이 상업화를 앞두고 있어 월평균 수입량이 700만-800만배럴에 달하고 있다.
SK인천석유화학은 2015년 이란산 원유 및 컨덴세이트 수입량이 734만6000배럴을 기록했으나 2016년 1-2월에만 536만6000배럴에 달하며 카타르산은 의존도를 크게 낮췄다.
현대케미칼은 이란산 컨덴세이트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NIOC(National Iranian Oil Company)와 장기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가 충남 서산 석유비축기지에 이란산 원유 및 컨덴세이트를 저장하는 공동비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한화토탈과 현대케미칼이 공급 안정성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미국산 컨덴세이트보다 이란산이 경쟁력이 높다”며 “기존의 카타르산보다 품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해 국내기업들이 선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현섭 기자: jhs@cheml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