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을 존치시킬 것인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일부에서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들어 산업은행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체질개선만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전문가는 없다.
산업은행은 국내 조선산업의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엄청난 금액을 조산산업에 투입했고 결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돌려막을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조선 시장이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어 회생이 가능하다는 반론도 있지만, 조선 불황이 아니라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해결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선 시장이 회복되더라도 2010년 전후의 호황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이 저가 선박 수주에서 벗어나 기술수준을 끌어올리면서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고, 일본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회복해 우리를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왜 국내 조산산업의 경쟁력이 바닥으로 떨어졌는지도 모르고 거액을 대출해 주었을까? 대우조선의 인력수준과 설비가 훌륭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LNG선을 비롯해 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남다른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서 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도 크게 다를 것은 없겠지만 특히 대우조선해양은 고액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음에도 파업으로 날을 새고 임금인상 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고임금에 노사분규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임원들의 무책임까지 가세해 원가 이하 또는 매우 불리한 조건의 수주가 관행화됨으로써 엄청난 적자가 불가피했고 적자를 숨기기 위해 회계장부 조작이라는 불법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MB 정권의 묵인이 있었겠지만…
그렇다면,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실태를 전혀 모르고 거액을 대출해주었느냐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강만수 회장의 배경이 그렇게 대단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부실이 훤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무작정 국민의 세금을 퍼줄 생각을 했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조선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석유화학산업도 경쟁력과는 상관없이 에틸렌 신증설에 너도나도 나서고 있다. 유도제품 생산에 필요한 원료를 자급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과연 산업은행이 저리에 거액의 설비투자자금을 빌려주지 않아도 가능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에틸렌 생산능력을 820만톤에서 650만톤 전후로 대폭 감축하는 마당에 한국은 800만톤에서 1000만톤으로 확대한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중동이 고부가가치화 투자를 확대하고, 미국이 셰일가스 베이스 신증설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중국이 석탄화학을 중심으로 자급률을 급격히 끌어올리고 있는 판국에… 동남아시아도 자급화를 목표로 투자 확대를 적극 도모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사업타당성도 검토하지 않은 채 거액의 자금을 저리에 빌려주지 않는다면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5년, 10년 후 부실화되면 또다시 국민세금으로 메꿀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
산업은행은 지금이라도 중소기업 위주의 정책자금 통로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 묻고 싶다.
산업은행은 재벌 대기업들에게 엄청난 특혜를 주고 부실화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개혁대상 1호이고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불가능하다면 존립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