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저널 2019.08.05
환경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연구개발용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를 일부 완화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화학기업들은 아무도 믿지 않는 분위기이다.
박천규 환경부 차관은 7월2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의 근간을 유지하되 한시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화학물질의 등록의무를 간소화하고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이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 갈등에 대한 보복으로 7월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용 FPI(불소계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산 수출을 규제하고 나섰고 8월에는 수출규제 대상을 1100가지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나선 마당이니 화학소재를 중심으로 일본산을 대체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고 있고 정부도 관련 법률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일부 언론들이 화평법 및 화관법의 규제가 화학소재 개발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적으로 보도함으로써 환경부가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자·반도체·전지·자동차용 소재의 국산화는 단순히 환경규제가 가로막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산업계·정부·학계·연구기관이 뜻을 모아 공동 노력을 전개해도 단시간에 성과를 올리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에 나선 화학소재들은 연구개발을 확대한다고 쉽게 개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순도가 매우 높고 국내 생산설비에 최적화돼 있다는 점에서 개발에 많은 시간이 요구되고 있다. 일본 화학기업들도 장기간에 걸친 연구개발과 시험을 거쳐 생산에 최적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더군다나 스페셜티 화학소재는 화학기업이 단독으로는 개발할 수 없고 화학기업과 수요기업이 공동의 노력을 전개해야 가능하다. 삼성전자가 D램, 낸드플래시 등 반도체를 개발할 때 단독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일본 화학기업들과 협업을 통해 개발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일본 화학기업이 서로를 인정하고 공생하는 바탕에서 협력한 것이다.
반면, 국내 화학기업들은 스페셜티 화학소재 개발에 많은 시간이 들고 수요가 소량이라는 이유로 먼 산 쳐다보듯이 멀리한 가운데 손쉽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범용에 주력하고 있고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대기업들도 국내 화학기업의 기술개발능력을 믿지 못하고 일본과 유착함으로써 오늘의 사태를 불러왔다.
그런데 박천규 차관은 “국가적 위기상황인 만큼 신규 화학물질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더 많은 인원을 투입해 최대한 빨리 확인하도록 하겠다”면서도 화평법·화관법의 모순을 바로잡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화평법·화관법을 손보지 않고 연구개발 목적의 신규 화학물질에 대해서만 등록의무 면제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식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용 소재·부품 국산화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생색만 내겠다는 것이다.
화평법은 기존 화학물질을 1톤 이상 제조·수입할 때 물질정보 등록을 의무화하고 있고 유해성 자료도 제출해야 한다. 신규 화학물질은 100kg 미만을 제조·수입할 때도 반드시 사전에 신고해야 한다.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동반하는 작업으로 화학기업들은 범법자로 전락할지언정 할 수 없다고 발을 뻗고 있다.
특히, 환경부는 화학물질 정보 등록이나 유해성 자료를 제출할 때 컨설팅을 통해 절차를 간소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컨설팅이 도와주기는커녕 비용을 상승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함으로써 원성이 자자하다.
환경부 공무원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을 즐기면서 법을 핑계로 화학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화학저널 2019년 8월 5·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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