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 아크릴섬유 감산을 이어가고 있다.
아크릴섬유는 AN(Acrylonitrile)을 주요 원료로 생산하는 합성섬유로 양모와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고 보온성이 높아 스웨터 등 편직 의류, 산업용 필터·분리막 등에 투입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1950년 듀폰(DuPont)이 최초로 상용화했으며 일본은 1958년 엑슬란(Exlan)이 기술 도입 후 상업생산을 시작한 이래 여러 섬유기업이 잇달아 진출했다.
하지만, 폴리에스터(Polyester) 섬유와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철수가 이어졌으며 미츠비시레이온(Mitsubishi Rayon) 시절부터 아크릴섬유 사업을 영위해온 미츠비시케미칼(Mitsubishi Chemical) 그룹마저 2022년 12월 철수를 결정함에 따라 엑슬란과 도레이(Toray) 2사만 남게 됐다.
일본 전체 생산능력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1998년 42만톤에서 2021년 9만7000톤으로 대폭 줄었고 도레이는 고기능 이너용을, 엑슬란은 산업자재용을 중심으로 사업을 이어가며 경쟁력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글로벌 생산량 20년 사이 절반으로 축소
아크릴섬유는 글로벌 생산량이 2000년대 초 250만톤대에서 2020년 130만톤으로 절반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전체적으로 수요 감소 및 경쟁 심화에 따라 철수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스웨터나 모포 등 방한용 수요가 상당했으나 생활양식 변화와 난방설비 보급으로 예전처럼 실내에서 스웨터 차림으로 방한하는 수요가 거의 사라졌고 한겨울에도 실내복은 가볍게 입고 외출 시에는 코트나 다운 등을 걸치는 패션이 유행하며 수요 감소가 이어지고 있다.
폴리에스터섬유와의 경쟁 심화도 아크릴섬유 수요 감소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성이나 그레이드별로 차이가 있으나 아크릴이 폴리에스터보다 2배 이상 고가이고 코스트 경쟁력도 폴리에스터섬유가 우수해 최근 20년 사이 모포, 에코퍼 등은 아크릴섬유에서 폴리에스터섬유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사업 환경 악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생산기업 철수가 이어지고 있다.
아크릴 단섬유 캐시미론(Cashmilon), 아크릴 장섬유 퓨론(Pewlon), 아크릴 내염섬유 라스탄(Lastan) 등을 공급해온 아사히카세이(Asahi Kasei)는 내수 부진과 수입 증가로 영업적자가 이어짐에 따라 2002년 일본기업 최초로 아크릴섬유 사업에서 철수했다.
2003년에는 가네보(Kanebo)가 연결 영업적자를 계상하고 사업 철수를 선언했으며, 이어서 도호테낙스(Toho Tenax)까지 철수했다.
이후 본넬(Vonnel) 브랜드로 아크릴섬유를 공급해온 미츠비시케미칼 그룹마저 60년 동안 이어온 사업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전체 사업 철수 대신 생산능력 최적화, 범용제품 철수 등 재구축 방안을 고심해왔으나 원료가격 급등으로 수익성 개선이 어려워졌다는 판단 아래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흡음재용 초극세 섬유 XAI 등 아크릴섬유와 관련된 다른 소재도 모두 철수하나 탄소섬유 원사 프리커서 생산은 계속할 예정이다.
일본 아크릴섬유 생산기업은 도레이와 엑슬란 2사만 남게 됐다.
글로벌 시장은 튀르키예(터키) 화학기업 악사(Aksa Acrylic)가 메이저로 자리 잡은 가운데 중국기업들도 생산능력을 줄이고 있고 그동안 유럽 시장을 주도해온 독일 드라론(Dralon)까지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섬유산업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와 같이 특수한 요인을 제외하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편이고, 특히 신흥국을 중심으로 수요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되나 아크릴섬유가 아니라 폴리에스터섬유가 성장을 견인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1회용 섬유 사용량을 줄이는 움직임도 아크릴섬유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폴리에스터섬유는 PET(Polyethylene Terephthalate) 병으로, PA(Polyamide) 섬유는 에어백이나 어망으로 제조했을 때 단일소재이기 때문에 회수 및 리사이클이 용이한 편이지만 아크릴섬유는 다른 소재와 혼합해 사용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도레이, 고기능 의류용 중심 사업 계속
도레이는 아크릴섬유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고기능화에 주력하고 있다.
도레이는 아크릴 단섬유 도레이론(Toraylon)을 주로 이너웨어용으로 공급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이어온 유니클로(Uniqlo)와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고기능 의류용 공세를 강화할 계획이다.
도레이 역시 철수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아크릴섬유 사업에서 영업적자를 내고 있고 1990년대 초반까지 미츠비시레이온과 아사히카세이에 밀려 시장점유율 5위에 그쳤으나 과거부터 성장 분야로 주목해온 탄소섬유 제조공정에서 아크릴섬유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출 초기부터 대형시장인 중국에서 원면과 방적사를 함께 공급함으로써 확보한 판로를 바탕으로 유니클로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 역시 아크릴섬유 사업을 계속하는 이유로 분석된다.
유니클로와의 협업 초기 아크릴섬유 사업에서 흑자전환에 성공했으며 현재는 영업적자로 고전하고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흑자 확보가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사업 계속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클로의 기능성 이너웨어 히트텍은 아크릴, 레이온, 폴리에스터, PU(Polyurethane) 등 4가지 소재를 채용했으며 시즌마다 기능성 향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도레이는 도레이론 생산능력 2만톤 가운데 40% 정도를 이너용으로 공급하며 나머지는 스웨터와 양말, 머플러, 장갑 용도로 투입하는 가운데 최근 모포용 개발을 재개했다.
또 다른 소재와 혼합해 부가가치를 강화하거나 배합비율, 방적기술을 변경해 조합 방식을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수요기업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다.
리사이클에도 도전하고 있다.
유니클로 방적 공장에서 발생한 짜투리 천으로 생산한 리사이클 그레이드는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스웨터를 회수해 탈색, 용해해 재생한 PCR(Post Consumer Recycled) 그레이드나 혼합 소재에서 아크릴을 분리시키는 기술 등도 개발할 예정이다.
엑슬란, 산업자재 용도에서 차별화 전략
엑슬란은 매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산업자재용을 중심으로 아크릴섬유 사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엑슬란은 아크릴섬유의 내약품성과 강도를 살리면서 피브릴화 기술을 응용해 종이로 가공한 다음 배터리 분리막, 산업용 필터 등으로 공급하고 있으며 최근 항균, 항바이러스 등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원료로 AN을 100% 사용한 그레이드는 기존제품보다 강도가 높고 폴리에스터 이상의 내열성, 내후성, 내약품성을 갖추어 자동차용에서 활용을 기대하고 있다.
분리막은 범용 LiB(리튬이온전지) 용도는 경쟁이 치열한 반면, 마그네슘 전지는 고부가가치화 전략으로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보급되며 배터리도 다양화되고 용량이 확대됨에 따라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신제품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미래 수소사회 도래에 대비해 연료전지용 수요 개척도 본격화하고 있으며 확산층과 친화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산업용 필터 분야에서는 공기오염이 심각한 인디아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시멘트, 철강산업에서 발생하는 분진과 산을 PP(Polypropylene)로는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아크릴섬유의 내약품성과 내구성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인디아를 중국의 뒤를 이을 대형시장으로 설정하고 있다.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