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컵 사용규제 정책이 실패로 돌아갔다.
환경부는 2025년부터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전국적으로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반발이 거세자 지방자치단체 자율에 맡기기로 방향 선회했다. 3년간 2차례 연기했던 보증금제 의무화를 철회한 것이다.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는 이유로 백지화를 선언했으나 이미 예견됐던 일이었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음료를 종이컵이나 플래스틱컵으로 구매할 때 개당 자원순환보증금 300원을 낸 후 컵을 반납하면 돌려받는 제도로 2022년 12월부터 세종과 제주도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법은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3년 이내에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하도록 명기하고 있으나 환경부는 고시를 개정해 시행 시점을 삭제하고 전국 의무 시행을 명시한 법 조항도 개정할 예정이다.
환경부가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시행하기 위해 2021년부터 약 240억원을 투입하고도 백지화 수준을 밟는 것은 소비자들의 호응도가 매우 낮고 재활용 비율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가맹점이 100개 이상인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빵집, 패스트푸드점이 적용 대상이어서 총 3만8000개 매장이 2022년 6월부터 보증금제를 시행하면 상당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했으나 점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6개월 유예했고 1년이 지나면서 폐기하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매장과 프랜차이즈보다 큰 개인 매장에 대한 형평성 문제, 보증금 300원에 대한 반발, 회수설비 설치 부담, 재사용에 따른 위생·코스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주·세종도 시범사업의 성과가 엇갈리고 있다. 2022년 12월 일회용 컵 반환율은 제주가 10%, 세종이 18%에 불과했으나 제주는 2023년 6월까지 30%대를 오르내린 후 7월 53%, 8월 64%로 상승했다. 반면, 세종은 8월까지 45%에 그친 것으로 파악된다. 제주는 6월부터 참여하지 않는 매장에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함으로써 반환율이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제주는 물론이고 세종도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단속을 강화하면 회수율을 70-8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환경부는 성공 가능성을 평가하기보다는 오히려 의무화에 따른 부담을 회피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한마디로 반발을 의식한 것이다.
국익이나 환경을 생각하기보다는 인기영합적 정책에 몰두하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 것이다. 환경부 공무원들이 퇴직 후 갈 자리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구석도 있다.
환경부는 국내에서 소비하는 일회용 컵이 2018년 기준 294억개에 달했고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환경부와 일회용 컵 저감 자발적 협약을 맺은 전국 15개 커피 및 5개 패스트푸드 브랜드 전문점에서 사용한 일회용 컵은 2019년 7억7311만개에서 2020년 9억6724만개, 2021년 10억2389만개, 2022년 10억3590만개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3년간 240억원의 혈세를 투입하고도 보증금제를 정착시키지 못한 것은 환경부의 무능을 증명하고 있다. 더군다나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2003년 시행했으나 회수율이 30%대에 머물러 2008년 폐지한 경험이 있다.
일부에서 유럽처럼 생산단계 규제를 주장하고 있으나 실패를 예비한 졸속정책일 뿐이다.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판매가격을 이원화하는 방안이 유일하다.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모든 매장을 대상으로 일회용 컵을 포함한 가격과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는 가격을 이원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커피 한잔을 일회용 컵에 담아주면 3000원, 텀블러나 컵을 가져오면 2500원으로 이원화하고 일정시간이 지난 후 차이를 1000원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300원은 유인책이 되지 못한다.
회수율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형평성, 보증금, 회수설비, 위생 등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다.
<화학저널 2023년 9월 18·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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