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학산업은 정확한 탄소발자국(CFP: Carbon Footprint) 산정 및 가시화가 요구되고 있다.
탄소발자국은 상품, 서비스 등의 원료 조달부터 폐기‧리사이클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산화탄소(CO2)로 환산해 표시한 것으로 1990년대부터 화학기업 브랜딩 및 마케팅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글로벌 금융기관이 탄소발자국을 평가지표로 삼으면서 화학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부상하고 있으며, 특히 화학제품을 평가할 때에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물성치, 가격과 함께 중요한 지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유럽 CBAM 부과 앞두고 중요성 확대
탄소발자국은 최근 유럽연합(EU)이 환경규제가 느슨한 국가로부터 수입할 때 사실상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배터리 규제에 나섬에 따라 중요성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EU는 이르면 2027년부터 CBAM에 따라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며 2023년 가을 이후 유럽에 수출을 희망하는 화학기업에게 수출제품의 온실가스 배출량 정보 보고를 의무화했다.
여기에 환경 NGO(비정부기구)인 영국 DCP와 주요국 금융당국의 기후 관련 재무 공개에 관한 태스크포스(TCFD)도 서플라이체인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을 가리키는 스코프3 산정과 감축을 요구하며 탄소발자국 산정의 필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는 2023년 3월 탄소 배출량 감축과 관련된 가이던스를 공표했다.
개별기업에게만 배출량 감축을 요구하고 친환경제품 개발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 탄소중립을 가로막고 있다는 인식 아래 배출량 감축 기여량을 가시화하기 위한 지침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7개국(G7) 기후‧에너지‧환경장관 회의에서도 탄소 배출량 감축에 기여한 양을 가시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된 바 있다.
기존 파리협정 1.5도 목표는 주로 탄소 다배출산업의 직접적인 배출량을 줄이는데 주목하고 있는 반면, 탄소 배출 감축 기여량과 관련된 논의는 특정제품 및 서비스가 산업계 전체의 배출량 증감에 미치는 정도를 평가하자는 내용으로 파악된다.
에너지 절감 성능이 우수한 가전이나 친환경 자동차 등의 효과를 반영함으로써 생산 과정 뿐만 아니라 사용, 폐기에 이르는 라이프사이클 전체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진정한 친환경제품 생산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상공회의소, 자발적 탄소 거래소 개설
국내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최초로 자발적 탄소 거래소를 개설할 예정이다.
기존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은 정부 지정기업 650곳과 산업은행, 기업은행, 하나증권, 한국투자증권, SK증권 등 금융기관 5곳만이 참여자격을 가져 거래가 저조했으나 정부기관 지정 없이도 거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탄소배출권 거래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은 자발적 탄소 시장 형성에 대비해 입지를 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자발적 탄소배출권에 대한 자기매매 및 장외거래 중개업무를 신청한 곳은 하나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SK증권, NH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등 8곳으로 파악된다.
증권사들은 자발적 탄소 시장이 형성되면 거래 중개 뿐만 아니라 탄소배출 감축 사업 투자, 탄소배출권 거래 플랫폼 개발 및 운영, 탄소배출 관리 컨설팅, 탄소배출권 관련 파생상품 거래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나증권은 2022년 4월 국내 증권사 최초로 자발적 탄소배출권 중개업무 등록을 마쳤으며 방글라데시 6개주에 태양광 정수설비를 보급하는 탄소 감축 사업을 통해 탄소배출권 94만톤을 확보한데 이어 싱가폴 탄소배출권 거래소 CIX와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카카오는 친환경 기여 데이터를 계량화한 지표인 카카오 카본 인덱스와 카카오 이용자들에게 탄소 감축 보상을 통해 자발적 탄소 시장 확대를 위한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함으로써 자발적 탄소 거래에 나설 계획이다.
카카오 카본 인덱스는 카카오 서비스 이용자의 친환경 기여‧행동 데이터를 수집한 후 온실가스 감축 기여, 간접적인 사회적 감축 기여, 탄소 상쇄 후원 기여 등 수집된 친환경 기여 데이터를 계량화한 지표로, 카본 인덱스 단위는 KUC(Kakao Users Carbon-Reduction)이다.
바스프, 독자 알고리즘으로 화학산업 리드
글로벌 화학산업에서는 바스프(BASF)가 탄소발자국 산정을 주도하고 있다.
바스프는 독자적인 알고리즘을 활용한 해석 시스템을 개발해 4만5000개에 달하는 생산제품을 대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산정하고 있다.
바스프는 1980년대 후반부터 지적되기 시작한 환경오염 문제와 1992년의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 선언을 계기로 1994년부터 화학 사업에서 지속가능성 향상을 중시하고 있다.
이미 25년 전부터 LCA(Life Cycle Assessment) 조사를 실시해 탄소발자국 계산을 시작했고 최근 정보 공개 요청이 확대됨에 따라 디지털 어플리케이션 SCOTT를 개발했으며, 2021년 8월부터 SCOTT 라이선스 사업을 시작함으로써 수요기업의 ERP(전사적 자원 관리)와 연계하거나 탄소 감축을 위한 LCA 컨설팅까지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COTT는 원료 조달과 제조 과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해석하는 시스템으로 원료 2만종, 10TWh의 전력 사용량, 1만5000톤 이상의 화학제품 제조 프로세스 관련 데이터를 투입한 후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개별제품별 배출량을 산정하고 있다.
바스프는 과거 ISO14044 및 ISO14067, 온실가스 프로토콜 기준에 따라 탄소발자국을 산출했으나 개별제품을 대상으로 했을 때 정확하지 않았고 다른 화학기업이 생산한 동일제품과 비교하는 것이 어렵다는 한계가 지적됨에 따라 SCOTT를 위한 독자적이면서도 산업계에서 표준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새로운 기준 수립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바스프는 유럽‧미국 화학기업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니셔티브 Together for Sustainability(TfS)에서 탄소발자국 글로벌 가이드라인 설정에 참여하고 있다.
TfS는 2023년 3월 독일 자동차기업 등이 운영하는 데이터 유통 플랫폼 Catena-X와 화학제품, 플래스틱 원료 데이터 연계와 관련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바스프를 중심으로 서플라이체인 전체에서 배출량 감축을 도모하고 있다.
일본, 신기술‧혁신제품 응용 강조
일본은 정부 및 산업계 차원에서 화학기업들의 탄소발자국 산정을 돕고 있다.
최근 바스프의 가이드라인을 참고해 개별기업의 탄소발자국 산정을 지원하고 서플라이체인 전체에서 가시화하거나 감축을 도울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설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화학공업협회(JCIA)도 화학기업들을 위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산정에 특화된 지침 설정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산정 가이드라인을 공표했다.
JCIA는 화학제품 제조 시 탄소 배출량 감축에만 머무르지 말고 라이프사이클 전체에서 신기술 및 혁신제품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탄소 배출 감축에 기여할 수 있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1년부터 매년 1년 동안 생산된 화학제품을 폐기하기 전까지 사용했을 때의 이산화탄소 감축 기여량을 산정해 사례집을 공개하고 있다.
만약, 역삼투(RO)막이 대상이라면 역삼투막을 사용한 해수 담수화 기술과 증발법을 채용한 해수 담수화 기술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기여량을 산정한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전세계에 건설될 해수 담수화 플랜트의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역삼투막 도입을 통해 감축할 수 있는 탄소(막 1개당 291kg)의 차이를 구하고 역삼투막 수요 전망치와 곱함으로써 1억3120만톤이라는 수치를 산출했으며 최근에는 제로 에너지 하우스(ZEH) 도입에 따른 감축 기여량을 계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학기업, 자체 시스템 개발해 산업계 공유
일본 관련기업들도 개별기업 차원에서 탄소발자국 산정에 주력하고 있다.
미츠비시케미칼(Mitsubishi Chemical)은 탄소발자국 산정 노하우를 활용하는 공격적 LCA 전략을 수립했다.
2023년 3월까지 일본 사업장 15곳과 모든 생산제품 및 그룹기업 270곳을 대상으로 탄소발자국 산정체제를 정비했으며 앞으로 수요기업이나 위탁생산처의 산정을 도와 서플라이체인 강화 및 환경가치 향상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스미토모케미칼(Sumitomo Chemical)은 CFP-TOMO 프로그램을 활용해 탄소발자국을 산정하고 있다.
엑셀 등 범용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원가 계산에 사용하는 BOM(원단위표)를 바탕으로 온실가스 배출계수를 간단히 산출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며, 업스트림 혹은 중간체가 다운스트림 원료로 투입되거나 부생물이 발생하는 화학 프로세스에 적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스미토모케미칼은 CFP-TOMO를 활용해 2022년까지 총 2만개에 달하는 생산제품과 그룹기업을 대상으로 탄소발자국 산정을 완료한 바 있다.
CFP-TOMO는 당초 사내에서 활용할 목적으로 개발한 것이나 최근 탄소발자국 산정이 화학산업 전체의 과제로 부상한 만큼 외부에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으며 70사 정도가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사와 연계해 관리 시스템 개발…
아사히카세이(Asahi Kasei)는 최근 독자적인 탄소발자국 산정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과거에도 엘라스토머(Elastomer)와 EP(엔지니어링 플래스틱) 등 개별제품 혹은 사업부 단위로 탄소발자국 산정을 추진한 바 있으나 최근 자동차, 패션 분야 수요기업들이 탄소발자국 정보 공개를 요청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전사적 표준으로 개발했으며 2023년 말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미쓰이(Mitsui)물산은 탄소발자국 인증기관인 SuMPO와 공동 개발한 탄소발자국 가시화 도구 LCA Plus를 통해 2023년 7월부터 산정 결과 타당성 검증 서비스를 개시했다.
NTT Data는 화학기업 전체의 배출량과 화학제품 및 서비스별 배출량을 모두 가시화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제안하고 있으며 2023년 말까지 에네오스(Eneos)의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과 생산제품별 탄소발자국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아사히카세이와는 경영정보 관리 도구 및 활용 시스템을 개발했다.
기존 화학제품 원가 및 손익 정보 가시화 시스템에서 이미 국내외 1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1만5000건에 달하는 화학제품 정보와 원가, 손익 정보를 클라우드에서 일원화한 가운데 공급기업의 배출 데이터 등을 더함으로써 제조 프로세스 전체를 망라한 탄소발자국 산출이 가능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일본 전자정보기술산업협회(JEITA)가 2021년 10월 설립한 Green×Digital 컨소시엄은 탄소발자국 산정 시스템 간 데이터를 연계하거나 공급기업이 얻은 배출량 1차 정보를 바탕으로 이산화탄소 데이터를 유통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탄소발자국은 원래 생산제품별로 모든 라이프 사이클에서 산출하는 것이지만 유통 사업자에게 제공하는 데이터는 공급기업 배출량과 스코프3 중 카테고리1에 해당하는 구입제품‧서비스에 한정돼 있는 실정이어서 데이터 유통 규칙을 조기에 정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유, 탄소발자국 산정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탄소발자국 산정은 정유산업 등 탄소 다배출산업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본 최대 정유기업 에네오스는 최근 에틸렌(Ethylene), 프로필렌(Propylene) 등 기초화학제품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데이터를 요구하는 수요기업들이 늘어남에 따라 탄소발자국 산정을 위한 로직 구축 및 시스템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르면 2024년 봄철까지 정유공장 등 조직단위와 생산제품 단위로 구성된 산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산업계 표준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에네오스는 자체 공장에서 직접 배출한 탄소를 의미하는 스코프1과 에너지 이용에 수반되는 배출량인 스코프2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
이 2022년 기준 약 3000만톤에 달했다.
여기에 스코프3 배출량 1억8000만톤까지 더하면 전체 배출량이 2억톤 이상으로 일본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중 20%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에네오스는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자체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은 물론 사회 전체 배출량도 감축할 수 있도록 탄소발자국 등 배출량을 가시화할 수 있는 시스템 확립에 주목하고 있다.
스코프1 및 스코프2 배출량 산정을 위해서는 약 90%가 배출되고 있는 정유공장 10곳과 100곳 이상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으며 매월 탄소발자국을 산출함으로써 가동 계획과 일치하는지 비교하는 작업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코프3 배출량은 생산제품별로 산정할 계획이다.
정유공장은 중간제품을 포함 취급품목 수가 수천개에 달하고 동일한 프로세스나 동일 원료에서도 여러 생산제품을 추출하거나 중간제품을 원료로 재이용하는 등 제조 프로세스가 복잡한 편이며 에틸렌 역시 스팀 크래커로 생산했는지 혹은 OCT(Olefins Conversion Technology) 장치로 생산했는지에 따라 배출량 산정 방법을 달리할 수 있어 기준을 검토하고 있다.
시스템 확립 후 초기에는 에틸렌, 프로필렌, 아로마틱(Aromatics) 등 기초화학제품과 석유수지, 윤활유 등 탄소발자국 정보 공개 요청이 많은 분야를 대상으로 운영하고 대상제품을 순차적으로 늘려갈 방침이다.
또 탄소발자국 시스템 적용 초반에는 수요기업들이 탄소발자국 정보 공개만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나 중장기적으로 감축까지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아래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강윤화 책임기자: kyh@chemlocus.com)
표, 그래프: <자발적 탄소 시장 진출 증권사(2023), JCIA의 화학제품 LCA 추진, JCIA의 화학제품 LCA 추진, 일본의 주요 탄소발자국 산정 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