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화학 경기가 좀체 회복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각종 보조금을 확대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급과잉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신증설에 따른 과잉과 더불어 부동산 위기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중국의 석유․화학제품 자급화 정책에 따른 급격한 신증설, 미국의 PE를 중심으로 한 에탄 베이스 투자 확대, 사우디 중심의 중동 신증설이라는 눈에 훤히 보이는 공급과잉 요인에도 불구하고 LG화학, 롯데케미칼을 필두로 한 확장 경쟁이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일부에서는 정유기업들의 석유화학 확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전기자동차의 대두를 그냥 지켜볼 수는 없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신증설을 추진할 때 코스트 경쟁력을 제대로 검토했느냐 하는 점이다.
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하는 스팀 크래커는 에탄 베이스와 비교할 때 코스트 경쟁력이 크게 뒤진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보통 에탄이 톤당 150-250달러일 때 나프타는 700-800달러 수준으로 적어도 2-3배, 크게는 5-6배 차이가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규 크래커를 건설하고 기존 크래커를 대폭 증설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중국이 앞으로도 계속 수입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면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수출물량을 조절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원성이 자자하고, 중국 정부가 산업단지를 육성하면서 신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었다.
석유화학기업들이 신증설 강행을 결정하고 실행에 들어갔을 때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해외 컨설팅기업의 사주를 받아 신증설을 독려한 것은 아닌지 의심도 든다.
석유화학 불황이 장기화하자 일본과 비교하는 기사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타이완이 석유화학 투자를 본격화할 무렵인 1990년대부터 일본의 경쟁력이 뒤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스팀 크래커를 중심으로 통폐합에 나서 에틸렌 생산능력을 720만톤에서 600만톤 수준으로 대폭 감축했고 중동과 동남아시아 투자로 전환했다. 최근에는 2차 구조조정에 들어가 지역별로 1개 크래커만 가동하는 체제로 이행하고 있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통폐합과 함께 화학제품의 고부가가치화․차별화에 들어가 글로벌 전자, 반도체, 자동차 소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일 때도 중국이 일본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은 일본이 소재를 공급하지 않으면 공장을 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도 2000년대 들어서는 신증설을 중단하고 동남아 투자로 전환했어야 마땅했다. 제조 코스트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낮고 오퍼레이팅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원료 코스트는 비교 대상으로 거론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2024년 들어 롯데케미칼이나 LG화학이 스팀 크래커 통폐합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에 대한 운을 띄운 바 있으나 구체성이 없어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진정 구조조정을 원한다면 무엇을 어떠한 방법으로 실행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오너의 의견 표명도 반듯이 뒤따라야 한다.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경영판단 잘못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하며, 각종 특혜를 요구하기 전에 자기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점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