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화학산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은 더 이상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도 당연하다.
롯데그룹이 롯데케미칼을 중심으로 한 유동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상징적 건축물인 롯데타워를 담보로 4조원을 대출받았다는 것이 잘 증명하고 있다. 어디 롯데케미칼만의 문제이겠는가?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미국이 셰일가스를 바탕으로 에틸렌, PE 프로젝트를 확대하고 중국이 한참 석유화학 자급률을 끌어올리고 있는 와중에 에틸렌 생산능력을 800만톤 수준에서 1300만톤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겠다고 나섰고 3-4년에 걸쳐 실행에 옮겼다.
그것도 정유기업들이 석유제품 수요 감소에 대응해 석유화학 사업 진입을 본격화한 가운데 무작정 신증설을 감행한 것이다. 더군다나 국내기업들이 기초원료로 사용하는 나프타는 경쟁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아마도 중국 경제가 10% 안팎의 고도성장을 계속해 중국이 자급률을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믿었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일단락되고 중국이 일시적으로 석유화학제품 수입을 확대하자 적기에 신증설을 잘했다고 콧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중국의 고도성장이 끝나고 5% 성장도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 주류를 형성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견제를 본격화하면서 사실로 고착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팽창주의를 본격화하면서 타이완에 대한 위협까지 가세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견제가 심화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사태가 발발해 에너지에 이어 나프타 강세가 겹친 것도 석유화학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따라서 석유화학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석유화학 플랜트는 가동률이 80% 이하로 떨어지면 적자가 불가피한데 70% 안팎의 가동률로는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스스로 잘못 판단한 책임에서 비롯되어야 한데도 정부가 나서 정책적 자원을 거론함으로써 구조조정의 동력을 끌어내리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1월11일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사업 개편을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안덕근 장관은 나아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석유화학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만들고 있으며 12월 초 발표할 예정”이라고 국회에서 답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등이 기초 범용제품에서 스페셜티 위주로 사업 재편을 유도하기 위한 세제 혜택, 정책금융 등 인센티브가 포함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하자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과 발표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번복했다.
그러면서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은 관련기업들의 자발적 사업 재편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이며 인위적 구조조정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스스로 적극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지도 않은 가운데 정부가 정책적 지원 운운하면서 재벌기업 지원에 나선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판단된다. 더군다나 정부가 생각하는 인위적 구조조정은 국내 재벌들의 특성상 가능하지도 않다.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한 데 따른 책임에서 출발해야 하며, 구조조정 실행에 있어 정당성 있는 걸림돌이 발생하면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무책임한 결정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점 분명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