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석유화학기업의 절반이 3년 안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충격적이다. 5-6년 전만 해도 중국과 동남아시아 시장을 석권하겠다면서 신증설에 열을 내던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2030년이 되기도 전에 50%가 사라질 수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왜 오늘날의 위기를 초래했는지는 아무런 말이 없다. 무책임의 극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불과 3-4년 후도 내다보지 못하고 막대한 돈을 투입해 놓고서는 이제 국민 세금으로 손실을 보전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한때 최대 수출시장이던 중국이 석유화학제품 생산을 확대해 저가에 쏟아내고, 중동 국가들이 석유정제와 천연가스를 바탕으로 추가 신증설을 단행할 수 있어 구조조정이 시급하고 정부가 법규를 개정해 행정적 지원을 서둘러야 하고 세제 혜택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독과점·기업결합 규제 때문에 통합을 할 수 없다면서 김기식 국회미래연구원장은 “이대로 흘러가다간 큰 대가를 치르고 망가진 해운산업처럼 될 수 있다”며 국민을 상대로 엄포를 놓는 과단성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면서도 구체적인 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자회사나 다름없는 현대케미칼에게 대산 크래커를 매각하거나 합작하는 방식으로 통합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끝이다.
현대오일뱅크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으나 통합하는 시늉에 그치지 않을까 생각된다. 공급과잉이 극에 달해 있고 앞날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엄청난 짐을 떠안을 수 있는 안을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정부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한 대책의 하나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산단지에서 석유화학 단지를 운영하는 LG화학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잘 증명하고 있다. 대산단지를 구조조정하기 위해서는 롯데케미칼, 현대오일뱅크, LG화학 3자 협력이 필수적이고 롯데‧현대의 부분적 구조조정만으로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여수단지나 울산‧온산단지도 마찬가지이다. 여수단지는 LG화학을 비롯해 여천NCC를 합작하고 있는 한화솔루션, DL케미칼, 그리고 GS칼텍스가 통폐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아무런 말이 없다. 울산‧온산단지 역시 SK이노베이선과 대한유화, 에쓰오일이 주축이나 통폐합은 남의 집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7월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석유화학 구조조정 포럼에 참석한 석유화학기업들은 사업 재편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공정거래법상 담합 우려를 꼽았다고 한다. 심지어 엄찬왕 화학산업협회 부회장은 “석유화학기업들이 설비를 통폐합하고 생산량을 감축하려면 정보를 교환해야 하고, 가격도 논의해야 하나 담합으로 해석될 여지가 여전히 크다”며 “산업통상자원부와 공정위가 합의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1994년 3월부터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묵인 아래 합성수지 공급‧가격을 담합함으로써 단번에 적자에서 벗어남은 물론 엄청난 수익을 올린 추억이 아직도 남아있는 모양이다. 1조원에 가까운 과징금을 물고서도 고약한 버릇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실질적 구조조정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겉으로는 구조조정을 하는 척 정부에 특혜를 요구하고, 속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마찰이 최소화되면서 중국 경기가 살아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꿩 먹고 알도 먹자는 심산이다.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5-10년 앞을 내다볼 작업이 아니라 최소한 20-30년 후의 미래를 설계하고 추진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