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학산업 관계자들은 국내 화학산업의 현재 위치를 평할 때 대개 과도기적 현상 또는 샌드위치 신세라고 말한다. 석유화학 생산능력은 세계 4-5위를 달리고 있으나 경쟁력은 바닥을 헤매고 있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선진국의 자본집약적이고 고도기술적인 방어와 개발도상국의 노동집약적인 공격의 중간위치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을 한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내 화학산업의 경쟁력이 전혀 없다고는 섣불리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하나는 석유화학 생산규모가 세계 4-5위권이어서 잘만하면 경쟁력을 회복시키고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 또는 기대감의 표현이고, 또다른 하나는 현재의 사적인 위치를 지키기 위해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세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화학산업은 오퍼레이션 기술을 제외하면 자본력이나 기초 프로세스, 생산기술, 마케팅력, 경영능력 모두 선진 글로벌 화학기업에 뒤지고, 고임금 현상이 지나쳐 중국이나 인디아 등 개발도상국과의 경쟁에서 이미 가격경쟁력을 상실했음은 물론 석유화학 부문은 임금수준이 이미 미국, 일본과 비슷하고 매출액 중 임금총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5%를 넘나들어 일본 3%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현재의 경영상태를 유지하고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고 머지않아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시 말해 현상을 타파하려는 노력을 진지하게 기울이지 않으면 오래가지 않아 추풍낙엽의 신세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단 화학산업만의 문제는 아니고 전체 경제·산업의 문제이기는 하나 화학산업이 조금 더 심각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현상을 타파하고 경쟁력을 강화해 미래비전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화학산업 관계자들이 무엇인가 행동으로 옮길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기술개발 투자를 어느 수준으로 끌어올려 어느 정도의 고부가가치제품을 생산할 것인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임금수준은 어느 선이 적정하고 어떠한 방법으로 조정할 것인가, 마케팅력 및 경영능력은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등등 한가지 한가지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학산업 경영자 또는 관계자들이 현재의 문제점들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현재의 상태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개선을 위한 노력을 전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화학산업 관계자 모두가 현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미래의 비전을 공유할 필요가 있고, 거기에서 개선점을 찾는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것이다. 국내 화학산업계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모든 허울과 허상을 벗어던지고 새롭게 출발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1992-93년의 최대적자 위기도 벗어났고, 1997-98년의 IMF 질곡도 벗어났는데 무슨 소리하느냐고 자위해서는 안 되고 스스로 무엇인가 헤쳐 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야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석유화학산업이 위기를 겪을 때면 의례적으로 선진국의 플랜트 사고가 겹쳐 살아났지 않느냐는 과거와 같은 안이한 사고로는 오늘의 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음이 분명하다. 글로벌 화학기업들이 한국 화학산업을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하지도 않을 뿐더러 중국이나 인디아가 계속 현재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도 않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세계시장에서 WTO(World Trade Organization)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GDP 중 무역의존도가 40%를 넘고 있는 현실에서 관세 또는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보호할 수 없음은 물론이요, 자동차 등은 과보호에 따른 폐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석유화학은 합성수지를 중심으로 수출의존도가 50%를 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직시할 필요가 있고, 플래스틱 가공부문은 순수 내수부문을 제외하고서는 경쟁력을 상실해 중국과 동남아 이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내수요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수출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음도 분명하다. 미국 화학산업이 과거 3-4년 동안 섣부른 경기호조 예측으로 얼마만한 곤혹을 치루었는 지는 강조하지 않아도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대책을 세울 때만이 타개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화학산업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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