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환경 및 경제 정책 향방에 따라 크게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6월1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은 파리협정의 전면적인 이행을 중단한다”며 “파리협정은 미국에 불이익을 가져다준다”고 밝혔다.
대선 당시 내놓았던 파리협정 탈퇴 공약을 실행한 것으로, 극단적인 미국 우선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미국과 미국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발언해왔다.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정책은 기존 35%인 연방법인세를 15%로 낮추어 세제 개혁을 실시하는 것과 대규모 인프라 투자 등 경제정책, 무역, 이민, 군사정책 등으로 대표되고 있다.
특히, 연방법인세 인하폭이 사상 최대수준이기 때문에 연방정부의 세수가 크게 줄어들어 재정적자가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각종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자본을 활용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며 경제성장과 고용창출로 적자를 커버할 계획이다.
EPA 국장으로 온난화 회의론자 임명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협정을 비롯한 환경 관련 정책을 최우선 사항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기후변화 대책에 반대하고 환경보호국(EPA)에 다수의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강경파로 유명한 스콧 프루이트를 EPA 국장에 임명했다.
임명 당시 민주당, 환경보호단체가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상원에서 진행된 청문회에서 프루이트 임명자가 “EPA가 2009년 발표한 온실가스가 인체 건강과 재산을 침해한다는 「위험성의 인정(Endangerment Finding)」에 기반을 두고 이산화탄소(CO2) 규제를 의무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발언한 영향으로 2월17일 상원에서 찬성 52표, 반대 46표를 얻으며 임명 승인을 받았다.
프루이트 국장은 EPA 취임 후 첫 연설에서도 “에너지 생산 확대에 따른 고용 증대와 환경보호가 상반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법은 없다”고 강조해 반대 의견을 잠재웠다.
하지만, 3월9일 CNBC 방송에 출연해 “CO2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기 때문에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논란이 점화됐다.
해당 방송 이후 프루이트 국장이 EPA 국장으로서 부적절하다는 비난이 확산됐다.
또 지나 맥커시 전 EPA 국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가 연구기관과 EPA 소속 과학자 43%에게 해고통지 메일이 전달됐다는 사실을 밝힘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과학을 경시하는 태도도 강한 비난을 받았다.
기후변화 예산 최저수준으로 “삭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환경 관련 예산도 대폭 삭감했다.
3월16일 국회에 제출한 첫 예산편성 지침은 국방비를 전년대비 10%, 불법난민 대책을 담당하는 국토안전보장국 예산도 7% 늘리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대통령의 예산편성 지침은 다음 회계연도 예산교서의 골자이며 의회 예산 책정의 기초자료로 사용된다.
EPA 예산은 기후변화 대책비를 31% 줄여 과거 4년간 최저수준인 57억달러만 투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부(DOE) 예산도 280억달러로 5.6% 줄어들어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가 거액을 투입한 청정에너지중심의 혁신 에너지 연구개발(R&D) 프로젝트는 폐지 또는 예산 삭감이 불가피해졌다.
국무부 등 외교 관련 예산도 28% 대폭 감축했다.
행정관리 예산국(OMB)의 믹 멀버니 국장은 “줄어든 예산만큼 인원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공화당 양당 의원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고 국내외에서 각종 비난이 제기되고 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 명기한대로 연방법인세를 인하해 세수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최우선 정책 외의 정책들은 예산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자동차 연비기준 완화 가능할까?
운수 및 발전 부문은 미국 CO2 배출량의 7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2025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에 비해 25-28% 감축, 2050년에는 8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으며 CAFE(Corporate Average Fuel Economy: 기업평균연비규제)와 발전소의 CO2 배출량을 규제하는 CPP(Clean Power Plan) 등 2개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CAFE는 자동차기업이 판매한 자동차 전체에서 평균연비를 산출해 적용하는 것으로 특정 차종에서 연비기준을 달성하지 못해도 다른 차종의 연비가 향상되면 합산해 커버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1978년 신차에 처음으로 기준이 적용됐고 1985년 단계적으로 확대돼 대대적인 연비 향상을 유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동안 기준치가 기존 수준을 유지했으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구온난화 문제와 국제유가 급등을 이유로 2009년 5월 연비 기준을 2012년-2016년 매년 5%씩 단계적으로 강화하는 새로운 기준을 내놓았다.
그러나 미국 자동차 시장은 픽업트럭, SUV, 미니밴 등 대형 가솔린 자동차 판매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만큼 자동차기업들의 경영에 큰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 반발이 거셌다.
EPA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인 2017년 1월13일 신차 평균 연비기준을 2025년까지 36마일/갤런으로 기존에 비해 10마일/갤런 강화했다고 발표했다.
자동차기업들은 해당 조치에 강하게 반대하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기준을 다시 낮추어 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연비기준 변경은 간단히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기준을 완화한다고 해도 몇년이 걸릴지 알 수 없어서 실효성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CAFE 기준은 연방규제인 동시에 주정부 규제와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완화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연방정부가 CAFE 기준을 낮춘다 해도 자동차 규제에 까다로운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 등 7개주가 규제를 완화하지 않는다면 적용이 어려울 것으로 파악된다.
에너지 생산 확대로 경제 부흥
CPP 정책은 2030년까지 발전소 등에서 배출된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2005년에 비해 총 32% 줄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정부에게 다양한 상황에 대응한 감축안을 책정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현재 유효성을 둘러싸고 소송이 진행되고 있어 실행되지는 않고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산업진흥, 고용창출을 우선시하기 위해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탄광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EPA에게 CPP 재검토를 위한 정식 절차를 시작하도록 명령한 바 있다.
미국은 앞으로 지구온난화 대책이 크게 후퇴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에너지 정책인 America First Energy Plan은 화석 에너지 생산 확대, 에너지 자급률 향상 등으로 대표되는 것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구온난화를 우려해 건설 신청을 기각했던 키스톤XL, 다코타 액세스(Dakota Access) 등의 석유 파이프라인 사업을 신속히 승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동안 쇠퇴를 지속해온 석탄산업을 부활시킬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석탄산업은 셰일가스(Shale Gas)를 통해 에너지 수급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장기간 쇠퇴를 거듭해왔다.
그러나 석탄 수요가 늘어날 이유가 뚜렷하게 없기 때문에 생산을 확대한다면 수출을 늘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에틸렌·PE 신증설 프로젝트 본격화
미국은 최근 수년동안 셰일 베이스 에탄(Ethane)을 원료로 사용해 에틸렌(Ethylene) 생산을 확대하고자 하고 있으며 2017년 이후 멕시코만을 중심으로 각종 생산설비가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석유화학기업들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아래 새롭게 창출된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정제, 화학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 화학위원회는 2010-2020년까지 석유화학기업들의 투자액이 1800억달러에 달하고 70%가 멕시코만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xonMobil은 2022년까지 멕시코만에서 진행하는 석유화학 프로젝트에 2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할 예정이다.
천연가스 수송채널 건설 등을 포함해 11개 프로젝트를 추진할 방침이며 직접고용 및 간접고용 효과가 각각 3만5000명, 1만2000명에 달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LyondellBasell은 PE(Polyethylene) 사업 강화를 위해 텍사스 La Porte에 7억-7억5000만달러 상당을 투입해 2019년 상업가동을 목표로 HDPE(High-Density PE) 50만톤 플랜트를 건설하고 있으며 멕시코만 인근 지역에 총 30억-50억달러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다.
Dow Chemical은 텍사스 Freeport에 에틸렌 생산능력 150만톤 상당의 ECC(Ethane Cracking Center)를 건설했으며 앞으로 5년 동안 200만톤으로 증설할 방침이다.
유도제품으로는 PE에 주목하고 있으며 ECC 근처에 60만톤 플랜트를 신규건설하고 기존 설비는 디보틀넥킹해 총 35만톤을 증설할 계획이다.
Total은 Borealis, 캐나다 Nova Chemicals과 함께 에틸렌 100만톤 상당의 ECC 및 PE 62만5000톤 플랜트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또 펜실베니아에서는 Shell Chemicals이 에틸렌 150만톤 크래커를 중심으로 PE 160만톤 건설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hevron Phillips도 텍사스 Permian Basin과 뉴멕시코 등지에서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국제유가 상승세를 타고 양 지역의 석유 생산량을 2020년 일일 90만배럴로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22년 세계 최대 에너지 공급국으로 등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대를 유지하면 셰일 생산량이 일일 140만배럴에 달하고, 국제유가가 80달러대로 올라서면 셰일 생산량도 300만배럴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은 바 있다.
국내기업, 수출처 잃고 방황 우려된다!
국내 석유화학 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협정 탈퇴 자체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지만 석유화학을 비롯한 에너지 생산 확대 등으로 장기적인 타격이 우려된다.
우선, 파리협정 탈퇴는 당장에 큰 영향은 미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 대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는 2020년 이후에야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파리협정은 발효 후 3년간 가입국이 마음대로 탈퇴할 수 없어 미국은 2020년 11월 초까지 탈퇴가 불가능하다.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 또한 비슷한 시기이어서 그새 정책이 뒤바뀔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또 세계적으로 반대여론이 거세기 때문에 탈퇴 자체도 쉽지 않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결정과 관계없이 파리협정을 통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망치 대비 37% 감축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할 방침이다.
감축량 가운데 약 11%는 해외에서 배출권을 구입해 해결하고 국내에서는 약 25%를 줄이며 석유정제 및 석유화학 산업은 각각 1700만톤, 700만톤을 감축해야 한다.
다만, 국내 시장은 미국이 에틸렌, PE 생산을 확대함에 따라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이 점차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PE는 LDPE(Low-Density PE), LLDPE(Linear LDPE), HDPE 포함 생산량이 2016년 기준 총 424만4119톤에 달한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06만7067톤을 수출해 앞으로 미국이 PE 수출을 확대하면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은 PE 신증설량의 대부분을 주요 수요지인 중국으로 수출할 계획이어서 중국 수출에 의존해온 국내기업들은 타격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 장기적으로 미국이 우월한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아시아 수출을 확대하면 아시아 석유화학제품 가격도 하향안정화돼 2015년부터 이어진 원료가격 약세, 판매가격 강세에 따른 석유화학 시황 호조가 종료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물론, 일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계획한 정책을 모두 강경하게 단행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하고 있다.
미국 각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방향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과학자들은 환경 정책과 과학을 경시하는 태도를 강력히 비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윤화 기자: kyh@chemlocus.com>
<화학저널 2017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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