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의약품의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국내 화학기업들을 자극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2년 2월 제14차 5개년계획과 관련된 성장전략을 공개하며 바이오의약품 등 최첨단 분야에서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공급 안정화 및 개발능력 강화 등 과제 해결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중국은 2010년대 후반 환경규제를 강화하며 화학‧의약품 공장 폐쇄를 주도했으나 여전히 세계 최대의 API(원료의약품) 생산국으로 자리잡고 있고 CDMO(의약품 위탁개발‧생산) 시장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해외자본 유치를 적극화하며 제약산업의 국제적 경쟁력 향상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CDMO는 Contract Development & Manufacturing Organization의 약자로 의약품 생산시설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제약기업의 위탁을 받아 의약품을 대신 개발·생산하는 것을 말하며 코스트 절감과 개발 효율을 추구하는 바이오기업들이 증가하면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중국, 2025년까지 연평균 8% 성장 목표
중국은 공업정보화부 등 의약품 관련 9개 기관이 공동으로 발표한 성장전략을 통해 2025년까지 의약품 관련기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연평균 8% 이상 확대하고 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제약산업의 부가가치 비율을 5%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제13차 5개년계획에서는 관련기업 매출액 및 영업이익 증가율 목표로 10% 이상을 제시했으나 9.9% 달성에 그쳤고 부가가치 비율은 3.9%로 직전 계획 대비 0.9%포인트 상승한 바 있다. 저분자 의약품‧원료, 한방약품, 바이오의약품 생산기업과 함께 부형제, 포장재, 제약설비 생산기업까지 대상에 포함했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추진한 제13차 5개년계획에서 의약품 수출액을 연평균 15% 확대했으나 최첨단 영역의 신제품 개발능력이나 글로벌 경쟁력은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고 질병 예방과 건강 유지 니즈 확대가 예상됨에 따라 신약 개발을 위한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AI) 활용을 적극화함으로써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지방정부들이 산업 부흥에 도움이 될만한 방안을 고안해 성장전략으로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지방정부는 바이오의약산업의 환경 정비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장쑤성(Jiangsu) 쑤저우시(Suzhou)는 2021년 말 쑤저우공업원의 바이오 메디컬 산업원 6지구 정비를 완료했으며 바이오 메디컬 기술혁신센터를 신설해 중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의약 신제품 개발을 주도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했다.
산둥성(Shandong) 둥잉시(Dongying), 장쑤성 타이저우시(Taizhou), 우시시(Wuxi), 광둥성(Guangdong) 광저우시(Guangzhou) 등은 2022년 말까지 바이오의약 및 관련제품 개발과 생산 확대를 위한 전용 공업단지 개발‧확장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오의약품은 생산량도 증가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2022년 3월 광둥성 주하이시(Zhuhai)에서 Jafron 그룹 산하기업이, 2021년 12월 상하이(Shanghai) 푸동신구(Pudong)에서 CDMO 전문기업 ZhenGe Biotech이 각각 바이오의약 및 원제 공장을 착공했다.
중국 CDMO 메이저인 AppTec은 2021년 매출액이 229억위안으로 전년대비 38% 증가했고 주로 바이오의약 관련 사업에서 호조를 누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2020년 3조5700억위안(약 700억원)에서 2022년 4조위안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규제 강화에 엄격한 운영체제가 발목
중국 제약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나 환경규제 강화와 엄격한 운영체제가 부작용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8년 대기‧수질오염물질 배출에 대한 환경보호세를 도입해 이산화황이나 질소산화물(NOx) 배출량 0.95kg당 1.2-12위안을 부과하고 있어 API산업도 영향이 불가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2010년대 후반 강화한 환경규제 조치로 이미 약 150곳의 API 공장이 폐쇄돼 서플라이체인이 상당한 영향을 받았고, 특히 중국산 API 의존도가 높은 인디아 제약산업은 원료 부족과 코스트 상승으로 고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세계 각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해열진통제 파라세타몰의 원료 파라아미노페놀은 2020년 중국 정부가 주요 생산기업에게 공장 가동중단 및 이전을 명령하면서 생산량이 급감해 파라세타몰 가격이 2021년에만 70% 이상 폭등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환경오염물질을 배출기준보다 큰 폭으로 적게 배출한 곳에 감세 우대조치를 취하고 있어 API산업 자체가 쇠퇴하지는 않았으며 현재도 인디아의 추격에도 세계 시장점유율 30%를 차지하는 최대 API 생산국 및 수출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은 앞으로도 환경보호와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제약산업의 국제적 경쟁력 향상에 주력할 계획이다.
반대로 중국에 진출한 유럽 의약품 관련기업들은 환경규제 강화를 좋은 기회로 파악하고 있다.
스위스 론자(Lonza)는 2022년 3월 2000만S프랑(약 270억원)을 투자해 광저우시 API 생산기지의 GMP 랩을 증설하고 암 치료 분야에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고효능 원료의약품(HPAPI) 개발 및 제조를 시작했다.
유리제 의약품 용기와 수지제 의약품 수송제품 생산기업인 이태리 Stevanato 그룹은 장쑤성 장자강시(Zhangjiagang)에 연구개발(R&D)과 생산을 담당할 전략기지를 정비했다.
2022년 3월 장자강 시내시설을 실린지, 바이알, 외관검사기 공장으로 개조한다고 발표했으며 바이오의약품과 백신 수요 증가에 대응해 2023년부터 2024년 초 사이 순차적으로 생산을 개시할 계획이다. 장자강 경제기술개발구에 소재한 기존 약제 봉입용기 공장도 확장해 생산능력을 2배 확대하기로 했다.
CDMO, 우시바이오 중심으로 급성장
중국은 CDMO도 확대하고 있다.
CDMO 전문기업 우시바이오로직스(Wuxi Biologics)는 2021년 매출액이 102억9010만위안(약 1조9600억원)으로 전년대비 83.3%, 영업이익은 48억2890만위안(약 9185억5400만원)으로 90.6% 폭증했다.
우시바이오는 의약품 개발과 생산, 임상을 대행하는 의약품 아웃소싱 시장에서 2021년 매출 점유율이 세계 1위인 스위스 론자(Lonza) 18.9%에 이어 10.3%로 2위를 차지했다. 2018년에는 론자, 독일 베링거잉겔하임(Boehringer Ingelheim),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이어 4위에 불과했지만 3년 만에 2위로 올라섰다.
중국은 의약품 시장 성장과 더불어 코로나19 백신 개발, 유통, 위탁생산에 뛰어들면서 위상을 강화하고 있으며, 소득수준 향상과 고령화를 타고 급성장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중국 상장 제약·바이오기업 363곳 가운데 43곳은 매출이 100억위안(약 1조9100억원)을 돌파했다. 글로벌 제약기업들이 코스트 절감 차원에서 중국에 개발과 생산을 위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시바이오는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글로벌기업을 포함한 9곳의 백신 개발기업과 위탁생산 계약을 맺어 매출이 급증했다. 2018년부터 백신 제조 연구에 투자하고 미국, 독일, 아일랜드에도 제조설비를 확보해 대규모 백신 생산물량을 소화하고 있다. 바이러스 벡터(매개체), 재조합 단백질, mRNA 3가지 방식의 백신 모두 생산 가능한 것도 강점이다.
우시바이오가 2021년 말까지 확보한 위탁생산 수주액은 136억달러(약 16조6000억원)에 달했다.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중국 국영 제약기업 사이노팜(Sinopharm)도 2021년 매출이 5210억5124만위안(약 99조6000억원)으로 2020년(4564억1461만위안)에 비해 14% 늘어났다.
중국 제약·바이오기업들은 글로벌기업들과 협력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상하이 포순제약(Shanghai Fosun)은 2021년 독일 바이오엔테크(BioNTech)와 코로나 백신 판권계약을 체결해 현재 홍콩과 마카오, 타이완에 백신을 공급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복제약) 매출도 증가하며 2021년 매출은 28.7% 증가한 390억500만위안(약 7조5000억원)에 달했다.
아심켐(Asymchem)도 2021년 11월 미국 대형 제약기업 2곳과 4억8100만달러(약 5900억원)의 의약품 위탁개발‧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2020년 매출 4억8000만달러와 비슷해 2021년 매출이 40%가량 급증했다.
한국, 대기업 중심으로 바이오사업 참여 활발
국내 대기업들도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삼성그룹이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과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사업에 참여한 지 10년만에 국내 대기업의 바이오 진출이 줄을 잇고 있으며, 10대 그룹 가운데 8곳이 인수합병(M&A) 등으로 바이오 사업에 진출했거나 지분투자로 사업 기회를 찾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는 글로벌 바이오산업이 2027년까지 연평균 7.7%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유·석유화학이 바이오‧헬스케어 사업 진출에 가장 적극적이다. 정유와 석유화학 모두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GS그룹은 국내 1위 보툴리눔톡신 생산기업 휴젤 인수에 3000억원을 투자한데 이어 알츠하이머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 바이오벤처 바이오오케스트라에 60억원을 투자했고, CJ그룹과 신세계그룹(이마트)은 장내 미생물인 마이크로바이옴 생산기업들과 잇달아 손을 잡았다.
롯데그룹은 2021년 삼성 출신 헬스케어·바이오의약품 생산공정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바이오 사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고, 그룹 컨트롤타워인 롯데지주 산하에 롯데헬스케어를 설립했다.
한화그룹 역시 바이오 사업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한화는 2000년대 초반 바이오에 뛰어든 후 철수했으나 한화임팩트는 최근 미국 유전자 치료제 개발기업에 투자했다.
CJ그룹은 바이오·제약 사업에 다시 진출했다. CJ헬스케어(HK이노엔) 매각으로 손을 뗀 지 5년여만이다. CJ는 장내 미생물인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해 면역항암제와 염증성 장질환치료제 등을 개발하는 천랩(현 CJ바이오사이언스)을 인수했다. 3년 이내에 신약 후보물질 10개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이다.
신세계그룹 계열 이마트는 마이크로바이옴 바이오벤처 고바이오랩에 투자했다. 고바이오랩과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건강기능식품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정보기술(IT)도 예외가 아니어서 네이버와 카카오는 건강·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한 헬스케어 사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네이버는 나군호 세브란스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를, 카카오는 황희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를 사업 수장으로 영입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바이오·헬스케어 진출을 서두르는 것은 삼성, SK가 성공한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삼성의 CMO와 바이오시밀러 사업은 본궤도에 올랐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CMO 세계 1위로 부상했다. 2021년 매출 1조5680억원, 영업이익 5373억원로 영업이익률이 34.2%에 달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바이오시밀러 5개를 앞세워 매출 8470억원, 영업이익 1927억원을 올렸다.
SK는 신약(SK바이오팜)과 백신(SK바이오사이언스)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 진출했고,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아스트라제네카 등 코로나 백신 위탁생산으로 2021년 9290억원의 매출을 올려 1년 만에 5배 성장했다. (강윤화 선임기자: kyh@cheml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