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구조재편을 진행하고 있다.
여수단지와 대산단지는 그런대로 통합과 합병을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추고 있으나 울산단지는 SK가 대한유화에게 석유화학 사업을 넘기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대한유화가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울산을 찾아 석유화학기업들의 신속한 사업 재편을 당부한 것도 울산단지의 구조조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실을 반증해주고 있다. 김정관 장관은 SK지오센트릭, 에쓰오일, 대한유화를 방문해 생산 및 안전관리를 종합 점검했으나 형식적인 제스처일 뿐 실제 방문 목적은 울산단지의 구조조정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산업부는 구조재편 민관협의체를 통해 범부처·석유화학기업 차원에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으며, 앞으로 대산·여수단지도 방문해 구체적인 재편 현황을 논의하고 구조재편을 차질 없이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모두가 설로 거론될 뿐 어떠한 방식으로 통폐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구조조정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업을 넘기고 넘겨받는 작업이어서 모든 절차를 공개적으로 진행하기는 어렵겠으나 그렇다고 모든 논의를 비공개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어느 시점에 가면 합의한 내용을 뒤엎을 수도 있고, 합의 문구를 놓고 서로가 해석을 달리할 수도 있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정부 부처가 관여하고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중간에 끼어 순수한 거래를 어렵게 할 수도 있고, 거래가 성사되더라도 정권이 바뀌면 거래의 순수성이 의심받아 무효화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구조조정 전체를 공개적으로 진행하지는 않더라도 큰 틀은 공개해야 하고, 논의 내용도 국민적 검증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구조조정 안을 들고 오면 종합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공언해 국민 세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도 공개가 필요한 이유이다.
석유화학기업들이 요구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적용 예외를 통한 카르텔 인정은 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있겠으나 구조조정에 따른 세금 감면이든 고부가가치화·차별화를 위한 연구개발이든 세금을 들이지 않고는 아무런 지원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석유화학 카르텔을 수용해줄 리는 만무하다는 점에서 패키지 지원은 국민 세금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정부가 현재 시점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할 카드가 마땅치 않은 것은 물론이고 국민 세금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도 비판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석유화학 구조조정 지원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은 크게 경계할 필요가 있다. 국민적 합의 없이 특정 정당의 필요에 따라 재벌의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아닌 될 것이다.
정부는 8월20일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 3대 방향 및 정부 지원 3대 원칙을 발표하고 에틸렌 생산능력 기준 270만-370만톤 감축을 요구했으나 국내 석유화학산업 현실을 잘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대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경영권을 재벌들이 보유하고 있어 국가 차원에서 또는 산업 차원에서 순수하게 구조조정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