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3년반에 걸친 구조개혁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의 기초질서와 공정한 경쟁 의식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DI(한국개발연구원)는 5월15일 발표한 'IMF 경제위기와 국민 경제의식 변화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국민의 경제의식이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기준)에서 점차 멀어지고 망국적인 과소비와 무절제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7년 외환위기와 이어진 경제위기의 주범이 학연·지연 등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패거리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로 지적돼 연고보다 능력과 경쟁을 중시하는 경제질서 구축이 구조개혁의 최우선 과제였으나 KDI의 조사에서 '경제 활동에서 연고가 매우 중요하다'는 응답이 1998년11월 17.3%에서 24.5%로 오히려 높아졌다. 반면, '경쟁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견은 34.7%에서 26.3%로 하락했다. 우리 사회가 연고주의의 폐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매매, 거래, 고용계약 등 경제활동의 기초질서에서도 공정한 경쟁 풍토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의 또다른 요인이었던 망국적인 과소비와 무절제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응답자의 64.3%가 '경제의 거품이 빠지지 않았다'고 답했고, 68.8%가 '과소비·충동구매·모방소비 등 비합리적 소비풍조가 개선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외환위기 위기 극복을 위해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허리띠를 졸라매고 금모으기 운동을 벌였던 기억은 먼 옛날 얘기가 된 것이다. 고용의 유연성을 확대하려는 노력도 후퇴했다. 연공서열식 '평생직장'보다는 능력 위주의 '평생고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평생직장제로 돌아가자'는 '복고파'가 늘어나고 있다. 개혁이 필요한 경제 주체를 물은 결과 1위는 기업인(32.9%), 다음이 공무원 및 공공부문 종사자(32.8%), 소비자(15.5%), 근로자 (15.1%) 순이었다. 2년전 조사와 비교하면 공무원·근로자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은 증가하고 소비자와 기업인은 줄어든 것이다. IMF 이후 국민들은 외국자본 유입 자체에 대해서는 상당히 개방적으로 변했으나 외국자본의 역할에 대해서는 IMF 외환위기 직후에 보였던 긍정적 시각이 다소 줄어들었다. 응답자의 69.2%가 외국자본 유입에 대해 국민들의 의식이 개방적으로 변했다고 응답, 2년전의 50.8%에 비해 18.4%포인트가 상승했다. 그러나 외국자본의 국내 유입이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3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응답률이 80.6%였으나 1999년말 조사에서는 66.9%만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함으로써 외국자본의 국내경제 역할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다소 줄었다. 따라서 외자유입의 득실을 재점검함으로써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고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고, 특히 외자유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의 의식과 경제관행의 선진화가 필수적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민들은 외환위기 직후 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적 노력의 결집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거품, 과시소비 등 비합리적인 소비풍토는 여전한 것으로 인식했다. 64.3%가 우리 사회의 총체적 거품이 여전히 빠지지 않았다고 응답함으로써 비합리적 소비행태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2년전에 46.0%가 '거품이 빠지지 않았다'고 응답한 것에 비추어 우리 사회의 거품적 요소가 2년전에 비해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과시소비, 충동구매, 모방소비 등 비합리적인 소비행태가 개선되지 않았다고 응답한 국민들도 68.8%에 이르러 역시 2년전 37.7%보다 크게 증가했다. 설문에 응한 국민들은 경제활동에 있어 경쟁풍토가 아직 정착되지 못하고 있으며, 기초질서의 공정성 또한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매, 거래, 고용계약 등 경제활동에 있어 연고가 중요시된다는 응답이 49.3%로 경쟁이 중요시된다는 응답(45.6%)보다 약간 더 높게 나타났다. 1996년4월과 1998년11월 설문조사에서는 경쟁이 중요시된다는 응답이 과반수 이상으로 1996년 57.0%, 1998년 57.1%로 나타났던 점으로 보아 국민들은 경제활동에 있어 경쟁풍토가 아직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국민의 대부분(86.8%)이 IMF 체제 이후 경제활동에 있어 기초질서가 '별 차이가 없다'(52.8%)거나 '오히려 불공정해졌다'고 응답, 역시 1998년11월과 1999년11월에 비해 'IMF 이전보다 공정해졌다'는 응답률은 줄고 '불공정해졌다'는 응답률은 10% 포인트 정도 늘어났다. 특히, 대다수 국민들(90.7%)은 국내기업의 경영진이 부실경영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의식이 약하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경제활동에 있어 경쟁풍토의 조성과 공정한 거래관행의 정착 등 시장경제원리를 정착시켜나가기 위해서는 정부는 보다 일관성 있고 원칙있는 정책 운용에 힘써야 하고, 이미 도입된 부실기업의 상시적 퇴출 시스템의 정착을 위해서도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성에 관한 국민경제의식도 IMF를 겪으면서 크게 바뀌게 됨에 따라 '평생직장'에서 '평생고용'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바뀌어 해직과 채용이 보다 빈번해지고 개인능력이 없이는 쉽게 고용이 보장되지 못하는 추세에 대해, 2년전 63.1%가 바람직하다고 응답한 것에 비해 다소 낮아진 과반수 이상의 국민들(57.0%)이 바람직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생고용으로의 전환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다소 낮아지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가운데 약 60% 정도가 평생고용의 고용관행을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는 구조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만 위기극복은 물론 선진경제로의 이행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더불어 많은 개혁조치들이 추진되고 선진 경제제도들이 도입됐다. 그러나 많은 경제제도의 도입 및 개혁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의 구조적인 변화는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으며, 구조적인 문제가 경제제도의 도입만으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제도도입과 더불어 제도를 이행하는 각 경제주체들의 경제의식이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Chemical Daily News 2001/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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