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 계약 취소‧축소 공시 계속 … 유럽・미국 보조금 축소 영향
전기자동차(EV)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 영향이 배터리 밸류체인에서 확산하고 있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등 배터리 4대 소재 공급기업들은 전기자동차 수요가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서둘러 생산능력을 확대했으나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폐지한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기자동차 판매대수가 감소하면서 고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 12월에만 13조5000억원의 계약을 취소했다. 미국 포드(Ford)와 약 9조6000억원, 미국 배터리팩 생산기업 프로이덴베르크배터리파워시스템(FBPS)과 3조9217억원의 계약이 해지됐다.
포스코퓨처엠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2023년 체결한 13조7697억원의 전기자동차용 하이니켈 양극재 중장기 공급계약 금액 가운데 실제 집행된 금액은 2조8112억원에 불과하다고 공시했다.
엘앤에프도 테슬라(Tesla)와 체결한 하이니켈 양극재 계약액이 3조8347억원에서 937만원으로 조정됐다고 공시했다. 공급 기간은 2024년 초부터 2025년 말까지 2년간이었으나 사실상 계약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SK온은 서산 2공장과 3공장 설비투자액을 기존 1조7534억원에서 9363억원으로 정정하고 투자 종료 시점을 2025년 12월31일에서 2026년 12월31일로 1년 연기했다. 전기자동차 캐즘으로 투자규모 및 시기를 조절한 것으로 파악된다.
SKC는 2025년 말 공시를 통해 2021년 제시했던 중장기 성장전략 가운데 차세대 양극재 사업 진출 계획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전기자동차 캐즘 장기화로 2차전지 산업 전반의 투자 및 생산이 축소된 것을 이유로 들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유럽은 신규 자동차 판매대수가 2024년부터 줄어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글로벌 전기자동차 전망 2025를 발표하면서 2024년 독일‧프랑스‧스웨덴 등 전기자동차 판매 상위권 국가들에서 신규 등록대수가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전기자동차 구매 보조금이 철회되거나 감액됐다.
전기자동차 판매 세계 2위인 미국도 9월 말 최대 7500달러에 달하는 전기자동차 세액공제를 종료해 시장에 미칠 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전기자동차 수요가 감소하면서 배터리 소재 공급망에서 한국과 경쟁하는 일본기업들도 사업 재편을 본격화하며 증설 계획을 재검토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스미토모케미칼(Sumitomo Chemical)은 2025년 11월 LiB(리튬이온전지)용 분리막을 더 이상 일본에서 생산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일본 오에(Oe) 공장 가동은 2026년 3월 말까지 중단하고 생산성이 우수한 한국 자회사 SSLM에 생산 기능을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자동차용 배터리 수요 둔화로 분리막 수주가 감소하고 가격이 하락하면서 이미 설비 가동률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스미토모케미칼은 2025년 7-9월 결산에서 분리막 부문의 부진을 이유로 ICT(정보통신기술) & 모빌리티솔루션 부문의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영업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도레이(Toray) 역시 10월 LG화학과 합작한 헝가리 분리막 공장의 지분 전부를 약 300억엔(약 2773억원)에 LG화학에게 매각했다.
미츠비시케미칼(Mitsubishi Chemical)은 자회사 MU Ionic Solutions(MUIS)를 중심으로 세계 5개 전해액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나 영국과 미국에서 준비하고 있던 증설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최적의 투자 타이밍과 방법을 가늠하기 위해 계속 수요 전망을 관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양극재 메이저 스미토모금속(Sumitomo Metal Mining)도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4년 동안 총 470억엔(약 4345억원)을 들여 일본 생산능력을 40% 확대했으나 수요기업의 니즈에 맞춘 생산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진 상황이다.
양극재 전구체를 생산하는 도다(Toda Kogyo)는 2025년 3월에 캐나다 자회사 TAM(Toda Advanced Material) 해산 및 청산을 발표했다.
다만, 글로벌 전기자동차 판매대수는 장기적으로 상승 곡선을 유지하고 있다. IEA에 따르면, 글로벌 신규 자동차 판매대수 가운데 전기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20%를 넘었고 2030년 저가형 전기자동차 공급을 주도하는 중국이 시장을 견인하면서 40%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적 성장 전망을 근거로 배터리 소재 생산체제를 강화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아사히카세이(Asahi Kasei)는 캐나다에서 착공한 LiB용 습식 분리막 공장 건설을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 현재 북미에서 습식 분리막에 투자하는 경쟁자는 미국기업밖에 없으며 일정수준 수요가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다만, 아사히카세이 역시 시장을 낙관하지 않고 있으며 유럽, 미국 자동차기업들과 협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카세이는 또 AN(Acrylonitrile) 베이스 초이온전도성 전해액 기술을 개발해 라이선스 사업을 시작했으며 최근 독일 배터리 생산기업과 계약을 체결했다.
전해액 분야에서는 MUIS가 인디아기업과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맺으면서 미츠비시케미칼도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배터리 공급망은 전기자동차 시장의 급격한 둔화로 기존 수요 예측이 과대됐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 시장 자체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어 소재 생산기업들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차별화된 노력을 기울일 것이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