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석유화학의 기초 원료로 사용되는 나프타를 경제안보 대상품목으로 한시 지정하고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 석유화학기업에게 1조50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시작된 중동전쟁이 확산되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중동산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수입하는 나프타의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가 나프타 공급 차질을 석유화학기업 탓으로 돌리지 않고 서둘러 경제안보 대상품목으로 지정하고 1조5000억원까지 지원하고 나선 것으로 볼 때 정부의 석유화학 구조조정 작업이 나프타 확보에 차질을 빚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 석유화학기업들이 판단을 잘못하거나 대응을 게을리해 나프타 수급에 차질을 빚었다면 이렇게 빨리 대응에 나설 리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나프타까지 직접 챙길 정도라고 이유를 댈 수도 있겠으나 정부 관료들이 이렇게 신속하게 움직인 적이 없다.
정부가 화학산업협회를 들먹일지 모르나 외국 컨설팅기업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들여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의 25-35%를 감축하는 석유화학 구조조정 대책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중국이 에틸렌 생산능력을 4-5년 후 1억톤 이상으로 확장하는 마당에 국내 생산능력을 300만-400만톤 감축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일본이 국내수요 수준으로 에틸렌 생산능력을 감축하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말하겠지만, 일본은 경제산업성과 종합화학기업들이 10년 이상에 걸쳐 꾸준히 작업을 해왔고 종합화학기업들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스스로 합종연횡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중국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고려하지 않은 채 공급과잉만을 탓하며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생산능력이 크게 과잉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방적인 구조조정 정책은 바람직스럽지도 않고 후유증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국내 나프타 크래커의 가동률이 60-70% 수준에 그치고 있고 아시아 공급과잉이 심각하다는 점에서 여수를 비롯해 울산, 대산단지에는 나프타를 중심으로 원료 및 액체 석유화학제품 저장탱크들이 크게 남아돌 것이고, 국제유가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고려할 때 나프타 재고를 크게 확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미국이 중동에 대규모 함대를 파견하는 등 중동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프타 재고를 확보하지 않았고 중동전쟁이 본격화되자 며칠도 되지 않아 나프타 재고가 부족하다며 불가항력을 선언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그것도 여천NCC에 그치지 않고 롯데케미칼, LG화학, 한화솔루션 등 석유화학 대기업들이 대부분 나프타 부족에 허덕이고 있으며 에틸렌, 프로필렌에 이어 ABS까지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 석유화학기업들이 공급가격을 올리기 위해 부풀릴 수도 있겠으나 나프타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정부가 석유화학 구조조정을 압박한답시고 자금줄을 조인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나프타 재고를 1-2개월분 확보하는 것이 정상인데도 하나 같이 1-2주만에 손을 든 것으로 보아 정부의 잘못이 확실하다. 석유화학기업들을 살리겠다고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 정책이 석유화학기업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 대책 자체도 합리성이 떨어진 마당에 자금줄까지 조여 석유화학기업들을 사지로 몰아가고 있다.
석유화학기업들도 잘못이 크다. 잘못된 구조조정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도 문제이지만 자금줄을 조인다고 나프타 재고를 확보하지 않았고 가시적으로 노력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엉터리 석유화학 구조조정 정책을 서둘러 폐기할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