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시장이 일찌감치 한파에 휩싸이고 있다.
겨울철에 진입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지만 요즘 날씨가 변덕을 부려 겨울 같은 가을이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석유화학산업도 엄동설한을 방불케 하는 맹추위에 얼어붙고 있다.
에틸렌은 1300-1400달러의 초강세 현상이 장기화되는 듯했으나 급락과 폭락을 거듭한 끝에 1000달러가 무너졌고, 상대적으로 강세를 계속하던 프로필렌도 급락현상이 나타나면서 1100달러가 붕괴됐다. 부타디엔은 수급과는 상관없이 1700달러대로 올라선지 얼마 되지 않아 폭락세로 전환돼 1000달러대 초반으로 고꾸라졌다.
MEG는 폴리에스터 시장 침체에 따라 900달러가 무너졌고, SM도 정기보수 마무리에도 불구하고 1300-1400달러대 강세를 이어갔으나 어느덧 1200달러가 붕괴됐다. ABS는 2주 폭락해 1700달러가 무너짐으로써 1800달러대 강세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고, PS도 GPPS, HIPS, EPS를 가리지 않고 대폭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석유화학 전반에 왜 폭락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한국,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석유화학 메이저들이 공급물량 조절을 통해 장기 강세를 유도한 후유증과 더불어 미국-중국 무역전쟁 본격화에 따라 중국 경제가 후퇴조짐을 보임으로써 석유화학제품 수요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18년 가을부터 셰일가스 베이스 미국산 PE가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정도가 아니라 불길에 기름을 붙는 격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이다.
미국이 중국산 전자제품을 비롯해 수입제품 2000억달러 상당에 관세 10%를 추가 부과함으로써 중국산의 수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고, 중국의 산업 생산이 위축됨으로써 석유화학제품 수요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 2019년 1월1일부터 중국산에 관세 25%를 추가 부과하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지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도 미국산 수입제품 1000억달러 상당에 관세를 추가 부과함으로써 PE, PVC, SM 등 미국산 석유화학제품이 중국시장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막고 있지만, 미국산이 동남아시아 시장에 대량 유입됨으로써 동북아시아 시장이 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석유화학제품은 수입관세가 상대적으로 낮고 수입이 자유화돼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 시장 전체가 미국산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히, 미국산 PE는 셰일가스 베이스로 원료코스트가 나프타 베이스의 30% 수준에 불과해 아시아 석유화학기업들에게 치명타를 날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나프타가 톤당 600-700달러를 오르내리는 가운데 에탄은 200달러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경쟁이 불가능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셰일혁명이 아시아 석유화학산업을 위협할 것이라는 경고는 3-4년 전부터 제기돼왔지만 미국-중국 무역전쟁이 불거짐으로써 코스트 경쟁력 하락에 수요 감소가 겹쳐 치명타를 날릴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83-84달러 수준에서 77달러대로 하락해 다행이나 결코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점이 더 큰 문제이고, 중국 경제가 본격적인 침체국면에 진입하지 않았다는 것은 석유화학 관계자들을 더욱 우울하게 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 경영자들은 중국만을 바라보고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자세가 얼마나 잘못됐는지 반성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한다. 사드 보복은 아무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