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안용찬(60) 애경산업 전 대표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직전에 영장전담 판사의 고교 동문을 변호인으로 긴급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용찬 전 대표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전관예우 논란과 함께 영장판사가 가습기 살균제 생산기업인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책임계약을 영장기각 사유로 든 점을 두고도 법조계에서 뒷말이 무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안용찬 전 대표는 3월26일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심문 기일과 담당 영장판사가 정해지자 A변호사를 선임했다. A 변호사는 영장실질심사가 열리기 하루 전인 3월28일 선임계를 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장을 지낸 A변호사는 2019년 2월 정기인사 때 법복을 벗은 A급 전관이다.
특히, A변호사가 안용찬 전 대표의 영장 재판을 맡은 송경호 부장판사의 고교 2년 선배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송경호 부장판사는 3월29일 영장실질심사를 한 뒤 안용찬 전 대표는 물론 함께 청구된 애경산업 임직원 등 4명의 구속영장을 전부 기각했다.
법조계에서는 송경호 부장판사가 영장 재판을 스스로 회피하고 다른 판사가 맡았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사건을 회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서울중앙지법은 별개로 전관예우 근절 차원에서 형사 사건에 한해 재판부와 지연·학연 등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가 선임되면 사건을 다른 재판부에 재배당하고 있다.
송경호 부장판사는 안용찬 전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로 피의자 회사와 원료물질 공급기업과의 관계 및 관련 계약 내용을 들었다.
애경산업은 2002년 10월 가습기 메이트 제조기업 SK케미칼과 제조물 책임계약을 맺었다. 'SK케미칼이 제공한 상품 원액의 결함으로 제3자의 생명, 신체, 재산에 손해를 주는 사고가 발생하면 SK케미칼이 전적인 책임을 지며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정한 계약을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의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근거로 삼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오히려 애경산업이 가습기 메이트 원료물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어서 안용찬 전 대표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한 검찰에 더 유리한 증거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반면, 영장기각 사유로 손해배상 계약을 거론한 것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성립한다는 점을 전제로 두고 책임의 경중을 고려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SK케미칼의 형사 책임을 따지게 되면 제조물 책임계약을 어떻게 반영할지 주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권순정 부장검사)는 3월25일 소환 조사한 김철(59) SK케미칼 사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한 차례 기각된 안용찬 전 대표의 영장도 재청구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