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경영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영위기에 몰려 생사가 불투명하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글로벌 석유‧화학 메이저들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서두르면서 코스트 감축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반면, 국내기업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구조조정도, 코스트 감축도 외면한 채 한가롭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인가? 일시적으로 사업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나 코로나19 사태가 해결되면 금방 좋아질 것으로 낙관한 것인가? 아니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 수준으로 급등하고 석유화학제품 현물가격이 연일 급‧폭등하고 있어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고 판단한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적 보복이 무서워서인가? 친노조 정책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민노총이 해고를 금지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구조조정이니, 코스트 감축이니 말도 꺼내기 힘든 분위기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생사가 불투명한 마당에 마냥 눈치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로벌 석유‧화학기업들은 이미 구조조정과 코스트 감축을 적극 실행하고 있고 코로나19 사태가 2021년 봄까지 장기화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사업구조를 획기적으로 개혁하는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 석유 메이저 쉐브론은 2020년 말까지 인력을 최대 15%를 줄일 계획 아래 전체 4만5000명 가운데 6000명 정도를 해고할 방침이라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석유·가스 수요가 크게 감소해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BP도 2020년 예산을 25% 감축하고 일부 자원개발 사업 연기를 결정했으며, 엑손모빌은 2020년 운영경비를 15% 줄일 방침이고, 토탈은 2020년 지출을 20% 감축한다고 3월 발표했으나 4월 25%로 확대한다고 수정했다.
봉쇄령, 이동제한 영향으로 석유 수요가 20-30% 급감해 국제유가가 30달러대에서 등락함으로써 매출 급감은 물론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마당에 제일 먼저 코스트 감축 카드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석유사업의 미래가 불투명해 사업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정유기업들은 에쓰오일이 사무직 1450명 가운데 48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별 움직임이 없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은 1분기 영업손실이 4조4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2분기에도 1조5000억원 안팎의 적자가 예고되고 있다.
석유정제 마진은 12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거듭하고 있고 코로나19 사태가 조기에 진정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화학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코베스트로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임직원 임금 삭감을 결정했고, 국내 임직원들도 임금을 6-15% 삭감키로 했다. 그것도 코베스트로 경영진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 독일 본사 노조가 고용안정을 조건으로 고통분담 차원에서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현물가격 올리기에 급급할 뿐 구조조정이나 코스트 감축은 강 건너 불구경에 그치고 있다.
수급을 무시한 현물가격 급‧폭등 전략의 후유증 감내보다 구조조정이 더 힘든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마냥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