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지주가 황각규(65) 부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 신동빈 회장을 40년 가까이 보좌해온 최고위급 인사를 정기이사회도 아닌 임시이사회에서 해임한 것은 보기 드문 사태로, 롯데그룹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롯데케미칼을 중심으로 한 롯데그룹의 화학사업은 최근 수익구조가 크게 악화돼 구조재편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나프타에 비해 코스트가 낮은 셰일 베이스 미국 ECC 사업까지 적자로 전환될 정도이니 위기에 노출된 것은 분명하다.
롯데케미칼은 범용 석유화학 사업이 중심이어서 코로나19와 같은 경기침체 요인이 발생하면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3월 대산 크래커 폭발사고까지 겹쳐 영업실적이 나쁠 수밖에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황각규 부회장을 퇴진시키면서까지 대대적 혁신을 추진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롯데그룹이 20년, 50년, 100년 앞을 내다보고 화학사업을 혁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롯데그룹의 체질이 그렇고, 일본색이 짙으면서도 일본 화학기업들이 추구하는 스페셜티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화학사업을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고 5년, 10년이 아니라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틀을 구축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고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롯데케미칼이 롯데첨단소재를 합병한데 이어 롯데정밀화학까지 통합함으로써 LG화학과 같은 종합화학기업으로 성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단순히 통합이나 합병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베인(Bain)의 진단을 참고하면 어떠할까? 베인은 화학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수익성 악화를 받아들여야 하고 안정과 성장 시나리오를 모두 대비할 것을 주문하면서 코로나19 사태가 화학산업계에 파괴적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화학 시장이 최종 수요처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가 수요‧공급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화학제품 수요처는 건설, 자동차, 전자, 섬유, 제지, 헬스케어 등으로 최종 수요처 흐름을 반영한 마케팅 전략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건설용 화학소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고려할 때 건물 종류별로 수요가 달라져 창고는 이커머스 시장 성장에 힘입어 시장 위축이 크지 않는 반면 오프라인 소매점 혹은 여행 관련 건물 수요는 급감할 수밖에 없어 대비가 필요하다. 자동차도 OEM, 애프터마켓을 구분해 수요 변화를 조망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도 국제유가가 크게 떨어져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서플라이 체인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화학기업 최고경영자는 보호(Protect)-회복(Recover)-재편(Retool) 관점에서 미래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베인은 회복단계에서 화학기업이 검토해야 할 핵심으로 판매 네트워크·가격·가치에 대한 수요처 행동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외부요인 및 경쟁구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산업별 수요는 얼마나 회복될 것인가, 수요회복 국면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4가지를 제시했다.
국내 화학기업들도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응해 사업구조를 재평가하고 생존‧발전할 수 있도록 혁신작업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