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화학산업협회(CEFIC)가 2025년 1월 유럽 화학산업 경쟁력 보고서를 발표했다.
CEFIC은 유럽 화학산업이 한계에 도달해 대응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강점으로 평가되는 저탄소와 순환경제 이행을 성장동력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작금의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면 내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린딜 뿐만 아니라 유럽의 산업 공동화를 방지하고 미래를 확보하기 위한 대담하고 긴급한 행동의 필요성을 요구했다.
화학산업, 생산능력 1100만톤 감축 계획
유럽 화학 메이저들은 앞다투어 생산능력을 축소하고 있다.
CEFIC은 유럽연합(EU) 행정부에 당장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미래 성장으로 이어가기 위한 정책 실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화학산업은 2023년부터 2024년까지 생산능력 1100만톤 이상을 축소한 것으로 파악된다. 1100만톤은 유럽이 과거 10년 동안 감축한 생산능력과 동일한 수준이다.
축소되는 생산비중은 방향족 41%, 올레핀 26%, 폴리머 23%이며 매출 기준 65억-110억유로(약 9조7900억-16조5600억원)가 증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부가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15억-25억유로(약 2조2600억-3조7600억원)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올레핀을 생산하는 스팀 크래커는 정유공장과 연동하기 때문에 다운스트림에 미치는 영향이 커 가동중단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으며 메이저인 엑손모빌(Exxonmobil), 베르살리스(Versalis), 사빅(Sabic) 등이 300만톤을 줄였다는 사실은 유럽이 긴급 사태에 빠져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특히, 유럽의 스팀 크래커들은 천연가스 베이스 에탄(Ethane)을 원료로 사용하는 미국·중동 크래커와 비교해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유럽과 마찬가지로 나프타(Naphtha)를 원료로 투입하는 중국과 인디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로부터 저가에 원료를 조달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생산능력 확대와 유럽 수요 부진의 이중고도 유럽 화학산업을 압박하고 있다.
규제 주도형 산업정책 한계로…
산업정책의 영향도 상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혁신과 인재, 생산 생태계가 요구되는 다운스트림 영역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으나 규제 주도형 산업정책은 화학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유럽 화학기업들은 이노베이션을 추진할 때 다양한 행정적 장애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가 지연되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 투자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아직 경쟁력을 유지하는 전형적인 영역은 의약품 중간체와 전구체이며 상대적으로 단순한 소분자 의약품 원제와 중간체는 최근 10년 동안 생산의 상당 부분이 중국과 인디아로 이전됐다.
반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중국의 중국제조 2025(MIC 2025: Made in China 2025), 인디아의 생산 연동형 우대정책(PLI: Production Linked Incentive) 등 경쟁국들은 보조금 주도형 산업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이 기존 규제 주도형 산업정책을 지속하면 생산능력 축소 폭이 더욱 확대돼 앞으로 5년 이내에 유럽 화학제품 매출 가운데 최대 8%가 증발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럽 화학산업은 에너지 가격 인하, 주요 원료 확보, 환경규제 부담 경감, 투자와 이노베이션을 촉진하기 위한 보조금 정책 등을 요구하고 있다.
화학산업은 유럽이 필요로 하는 이노베이션의 대부분과 관계가 있으며, 유럽 화학기업들은 적절한 정책이 시행되면 순환형·저탄소 기술 리더로서 강점을 살려 선도자 우위(First Mover Advantage)를 확보함으로써 2-10년 동안 추가적인 성장과 고용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EU, 경쟁력 상실로 가동률 악화
CEFIC은 유럽의 2023년 에틸렌 생산 코스트가 톤당 885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중동은 345달러로 39%, 미국은 281달러로 32%에 불과해 경쟁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EU 가입국 27개국 기준 화학산업 가동률은 2022년 하반기부터 75%대에 머무르면서 장기 평균 81%를 크게 밑돌고 있다.
화학산업은 유럽의 대표적인 수출 산업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다만, 2023년 수출 초과액은 355억유로를 돌파했음에도 불구하고 2013년(472억유로)과 비교하면 4분의 3 수준에 불과했다.
일반 소비제품, 특수화학제품 수출 초과액은 증가하고 있으나 석유화학제품은 수입액이 수출액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이 아시아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며, 특히 중국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은 2023년 글로벌 화학산업 판매액 가운데 43.1%를 차지했다. 2013년 34.0%에서 점유율을 9.1%포인트 확대한 셈이다.
중국은 설비투자 영역에서도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화학산업 설비투자액은 2023년 2686억유로에 달했으며 중국은 46.5%로 EU의 12.0%를 크게 상회했다.
연구개발비 투자에서도 중국은 유럽과 격차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화학산업 연구개발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13년 24.5에서 2023년 32.4%로 확대하는 동안 EU는 20.7%에서 17.9%로 감소했다.
CEFIC은 유럽이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글로벌 수요 증가가 제한되는 가운데 EU 이외 지역에서 거액의 설비투자가 이루어지면서 전세계 화학제품 시장 경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우성 선임기자: yys@chemlocus.com)
표, 그래프: <EU의 화학제품 생산능력 축소 비중, EU 화학산업 매출 비중, 유럽의 주요 생산능력 축소 계획(2023-2024년 발표), EU의 화학산업 가동률(분기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