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래스틱 국제협약이 또 결렬됐다.
유엔환경총회(UNEA)는 스위스 제네바(Geneva)에서 8월5-15일 플래스틱 오염에 대한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 체결을 목표로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 속개 회의(INC-5.2)를 진행했으나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INC-5.2는 2024년 말 부산에서 개최된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INC-5)가 결론을 내리지 못함에 따라 약 반년만에 재개된 제2부 회의였다.
하지만, 플래스틱 생산제한 문제를 둘러싸고 강력한 규제를 원하는 유럽, 아프리카, 도서 국가와 정면으로 맞서는 러시아, 산유국, 인디아로 이루어진 구도가 변하지 않아 협약 문안 타결에 도달하지 못하고 종결됐다.
3조‧6조 둘러싸고 갈등 “여전”
플래스틱 국제협약은 유엔환경총회가 2022년 플래스틱 오염을 종식하는 내용의 결의를 채택한 이후 국제적 과제로 부상했다.
유엔(UN)은 2022년 2월28일-3월2일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 5.2)에서 국제협약 성안 추진 결의를 채택했고 총 5차례
의 INC 회의를 통해 2024년까지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 성안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11월25일-12월1일 부산에서 개최된 INC-5에서 협약이 완성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플래스틱 생산 감축 의무화를 둘러싸고 의견 합치에 이르지 못했다.
이후 2025년 8월 INC-5.2까지 논의가 연장됐으나 INC-5.2 역시 막판 협상 과정 중 논의가 길어져 당초 계획했던 종료일보다 하루 늦게 종료했음에도 의견을 모으는데 실패했다.
산유국 측은 협약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원유 수출 감소를 우려해 플래스틱 해양 유출 방지 대책을 강화하자고 주장한 반면, 유럽 측은 플래스틱 생산량부터 줄여 플래스틱 오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자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루이스 바야스 INC 의장은 부산에 이어 제네바에서도 회의를 이끌었으나 부산 회의와 달리 의장 초안(Chair’s Text)을 도출하는데 실패했고 다음 일정도 정하지 못했다.
유럽이 8월13일 1차적으로 발표된 초안이 산유국 의견에 치우쳤다고 반발해 8월15일 유럽의 의견을 반영했으나 결국 양측의 의견을 조율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부산 회의와 제네바 회의 사이 6개월 이상 시간이 소요된 점을 고려했을 때 2025년에는 더이상 INC 회의가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연말 UNEA 회의에서 UNEA가 어떠한 의견을 내놓을지 주목되고 있다.
INC-5.2, 플래스틱‧화학물질 대상 축소에도…
국제사회는 플래스틱 폐기물의 해양 유출이 국경을 넘는 문제로 확대된 만큼 각국의 자체적 노력에만 의존하지 않는 협약을 마련할 필요성에는 동의하나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플래스틱 국제협약은 약 30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고 전체적인 흐름이 이미 정해져 조항별 구체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3조(문제가 있는 플래스틱 가공제품 및 우려 화학제품), 6조(플래스틱 생산‧공급), 11조(자금 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의 자금 지원을 둘러싼 갈등은 환경 관련 협상에서 일반적인 일이어서 3조와 6조가 플래스틱 협상 고유의 쟁점이 되고 있다.
캐나다 오타와(Ottawa)에서 4월23-29일 개최된 INC-4에서 INC-3 회의 결과에 따라 INC 사무국이 준비한 협약 수정 초안(Revised Draft Text)을 바탕으로 플래스틱 오염 방지를 위한 규제 대상 및 방식, 이행수단 등 협약의 세부 항목에 대한 문안 간소화 작업을 진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INC-5.2도 INC-5의 의장 초안을 출발점으로 논의했다.
INC-5 의장 초안은 3조의 문제가 있는 플래스틱에 대해 일회용 플래스틱과 같이 광범위한 표현이 아니라 빨대, 커트러리 등 구체적으로 지정했고 우려가 있는 화학물질 역시 완구, 식품 접촉 소재로 사용되는 프탈산에스테르(Phthalic Acid Ester), BPA(Bisphenol-A)로 한정했다. 기존에는 참여 각국이 제안한 것을 모두 반영해 3조에서 자외선 흡수제나 PFAS(Polyfluoroalkyl Substance) 등 광범위한 물질을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또 6조는 생산 제한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제외되고 다수가 지속가능한 생산이라는 표현을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INC-5.2에서는 △플래스틱 생산 규제 여부 △플래스틱 규제 범위 및 방식 △재원 마련과 지원 방식 등 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플래스틱의 원료 폴리머 생산 감축 여부를 두고 산유국의 반대가 거셌던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회원국들은 그동안의 논의 결과를 기반으로 추가협상 회의를 추후 개최하고 협상을 이어갈 계획이다.
INC-5.2에는 유엔회원국 정부대표단과 국제기구, 산업 관계자, 시민단체·학계 등 이해관계자 3700여명이 참여했으며 한국에서는 외교부,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관계관으로 구성된 정부대표단이 참석했다.
플래스틱 오염 개념 정의부터 필요
국제사회가 협약의 필요성에 대해 합의했으나 합의 도출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플래스틱 오염이라는 개념이 매우 애매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플래스틱 폐기물이 해안에 쌓이는 것을 오염이라고 부르는데 저항이 적은 반면, 플래스틱에 포함된 첨가제나 미세 플래스틱이 일으키는 우려까지 오염으로 표현하는 점에는 폐기물 처리나 화학물질 관리 분야의 의견이 상당히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세 플래스틱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과학적으로 불확실한 면이 아직 남아 있어 국제적인 일률적 규제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국제사회에서 유럽이 가장 강력하게 규제 강화를 주장하고 있으나 다른 국가들은 유럽에 과학적 증거를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또 플래스틱 국제협약이 다루는 주제가 많고 협상이 복잡한 것도 합의 도출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화학물질 규제나 폐기물 관리는 플래스틱만의 주제가 아니고 특정 국가 고유의 문제도 아니며 세계 각국의 환경정책 및 법 제도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강윤화 책임기자: kyh@cheml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