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페인트 생산기업들은 원료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됨에 따라 내수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페인트는 원료 투입비중이 용제 30-40%, 수지 20-30%, 안료 20-30%, 기타 10-20% 수준으로 최근 용제, 안료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KCC, 노루페인트, 삼화페인트, 강남제비스코 등 메이저들이 4월부터 내수가격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KCC는 인상폭이 20%로 가장 높아 폭리를 취하기 위해 가격인상을 결정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용제 급등에 안료도 강세 장기화
페인트는 용제인 톨루엔(Toluene), 자일렌(Xylene) 가격이 약세를 지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MEK(Methyl Ethyl Ketone), MIBK(Methyl Isobutyl Ketone), IPA(Isopropyl Alcohol) 등은 2016년 하반기부터 급등해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TiO2(Titanium Dioxide)는 주로 루타일(Rutile)형이 페인트의 안료로 채용되고 있으나 중국산이 가격 상승을 유발하면서 톤당 3000달러 초반에 거래되고 있다.
방청 페인트는 주원료로 채용되는 Zinc Powder가 4000달러 수준까지 급등해 수익성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중국의 Zinc Powder 생산량이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원료 Zinc 가격이 급등한 영향이 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페인트 생산기업들은 원료가격 상승 외에 수요까지 감소해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스마트폰 부문은 메탈 소재가 플래스틱을 대체하기 시작하며 플래스틱용 수요가 급감했고, 강교 부문은 국내 건설이 대부분 마무리됨에 따라 수요가 3분의 1 이상 감소했다.
해양·선박 부문은 2016년 하반기에 비해 호전됐지만 신조는 여전히 부진한 상태이며 보수는 관급물량이 꾸준해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페인트 생산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를 만회하기 위해 해외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나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날지 의문시되고 있다.
삼화페인트는 인디아 법인을 설립하며 베트남 법인의 수익성 악화를 만회하는 등 해외 유통망을 강화할 방침이며 최근에는 중국 현지 거래처인 Dongguan Runfeng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적자 탈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남제비스코는 베트남 법인 설립으로 가전용 수요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메이저, 줄줄이 가격 인상
국내 페인트 메이저들은 4월부터 내수가격을 5-20%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루페인트가 4월부터 5%, 강남제비스코와 삼화페인트는 6월부터 각각 5% 가량 인상했다.
삼화페인트 관계자는 “TiO2와 일부 용제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가격인상이 불가피했다”며 “경쟁기업과 비슷한 수준에서 인상했다”고 밝혔다.
노루페인트와 강남제비스코 역시 TiO2와 아세톤(Acetone) 급등에 따른 IPA, MIBK 가격 상승이 인상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KCC는 7월10일 가격을 20% 인상했으나 수요처의 반발이 심해 10% 수준으로 조절할 것으로 알려졌다.
KCC 관계자는 “가격을 인상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세한 근거는 제시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시장 관계자는 “KCC의 인상폭이 크기 때문에 폭리를 취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KCC만큼 인상해야 원료 코스트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라는 주장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경쟁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처음 인상한 곳의 인상폭에 맞춘 것으로 알고 있다”며 “KCC가 20% 가까이 인상했기 때문에 다른 메이저들도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대리점에 따라 인상폭에 차이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대리점에 따라 인상 여부와 정도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내 10위권 대리점은 아직 인상 여부에 대해 들은 것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일부 지역은 이미 인상한 곳도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KCC는 가격을 인상한 뒤 대리점 성과에 따라 공급가격을 상이하게 적용하기로 해 논란이 됐으나 예전부터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던 관행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KCC 관계자는 “대규모 대리점의 이탈을 막기 위해 새로운 가격 방침을 내놓았다”며 “대리점 기준가격이 올랐어도 영업 일선에서 대리점과 가격을 조정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실제 대리점의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TiO2, 중국산 상승으로 수익성 악화 유발
TiO2는 페인트의 수익성 악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TiO2는 중국산이 루타일형 가격을 주도하기 시작함에 따라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
중국산은 저급 그레이드를 중심으로 저가공세를 펼치며 메이저들의 가격인상을 막아왔으나 꾸준한 연구개발(R&D)로 품질 격차가 줄어들어 고급 그레이드 대체 비중이 확대됨에 따라 최근에는 인상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산은 매월 가격을 변동시키기 때문에 분기마다 조정하는 메이저에 비해 가격 주도가 쉬운 것으로 파악된다.
글로벌 TiO2 생산량이 650만톤 수준에서 560만톤으로 90만톤 감소함에 따라 수급타이트가 발생한 것 역시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TiO2는 중국 정부의 환경규제 강화로 공장 가동률이 낮아지며 생산량이 더욱 감소했고 원광석도 중국의 채굴 비중이 현저히 감소해 글로벌 가격이 전년대비 2배 이상 폭등하며 원료 코스트 상승에 일조했다.
TiO2 가격은 톤당 3000달러 초반을 형성하고 있으며 하반기까지도 계속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나 4000달러를 뛰어넘었던 2011년의 폭등세에는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용제, MEK·MIBK·IPA 강세
용제는 페인트 원료 투입비중이 30-40%로 높아 수익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채용비중이 높은 톨루엔과 자일렌이 2012년 이후 약세를 지속하고 있어 페인트의 수익성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톨루엔은 kg당 2012년 1529원에서 2017년 1/4분기 1046원으로 483원, 자일렌은 1626원에서 1029원으로 597원 하락했다.
반면, MEK, MIBK, IPA 등은 중국의 환경규제 강화로 일부 플랜트 가동이 중단됨에 따라 국제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MEK는 2016년 1월 톤당 721달러에서 2017년 4월 953달러로 232달러, MIBK는 753달러에서 1459달러로 2배 가까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MIBK 가격 상승은 아세톤 가격이 급등한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IPA 역시 659달러에서 1062달러로 403달러 급등했다.
Zinc Powder, 4000달러 넘어섰다!
Zinc Powder는 톤당 4000달러를 돌파하며 페인트 수익성 악화를 부추기고 있다.
방청 페인트는 각종 금속, 특히 철이 녹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되며 Zinc Powder 등 방청안료를 첨가해 생산하고 있다.
Zinc Powder 가격은 2016년 1월 톤당 1500달러 수준에 불과했으나 매달 상승해 12월에는 3000달러를 넘어섬으로써 2배 이상 폭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2월에도 4000달러 초반으로 20% 급등하며 방청 페인트의 수익성 악화를 심화시킨 것으로 파악된다.
Zinc Powder는 비철금속 원료 메이저인 스위스 Glencore가 2016년 초 공장 가동을 중단한 영향으로 크게 상승했다.
시장 관계자는 “Glencore의 가동률은 물론이고 아연 광산이 많이 소재한 중국, 미국, 이란 등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Zinc Powder는 2월 이후 크게 변동하지 않았으나 6월 말부터 또다시 1달만에 200달러 가량 급등해 방청 페인트의 수익성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수요기업 관계자는 “Zinc Powder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하며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방청 페인트는 생산기업 대부분이 수익성 개선을 위해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강교·플래스틱용 수요 “부진”
페인트는 원료가격 상승에 이어 일부 수요가 부진함에 따라 수익성 악화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강교 시장은 대부분이 구축된 상황이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혀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
강교 생산기업 가운데 1곳의 페인트 구매액은 2011년 연간 20억원에 달했으나 2016년에는 월간 4000만-5000만원으로 3분의 1 이하까지 줄어들었으며 생산기업 역시 10곳 이상에서 5곳 이하로 감소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강교는 대부분 구축됐기 때문에 수요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며 “생산기업 역시 강교부문을 매각하는 등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플래스틱용은 전기전자부문 채용이 줄어들며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플래스틱용 수요는 스마트폰용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나 삼성전자가 고급 스마트폰 모델에 메탈 소재를 채용하기 시작하며 감소했다.
최근에는 보급형 모델 역시 메탈 소재를 채용하며 수요가 더욱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양선박용 수요는 2016년 하반기보다는 개선돼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관계자는 “해양선박용 수요는 2016년 하반기 최저점에 도달한 뒤 증가하고 있다”며 “신조 수요는 여전히 부진하지만 보수 수요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양선박용 수요는 크게 신조와 보수로 구분되며 신조 수요는 소규모 조선소가 상당수 폐업했기 때문에 여전히 부진하지만, 보수 수요는 해경, 해양수산부, 해양수산연구원 등 관급물량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제비스코, 삼화와 다를 수 있을까?
강남제비스코는 삼화페인트가 베트남 법인에서 부진을 지속한 선례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공장을 준공해 주목받고 있다.
삼화페인트는 2010년 베트남 법인을 설립한 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에게 스마트폰 플래스틱용 페인트를 공급하며 호조를 누렸으나 스마트폰 소재가 플래스틱에서 메탈로 전환되고 경쟁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하며 점유율 싸움이 치열해져 수익성이 악화됐다.
삼화페인트는 베트남 법인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됨에 따라 영업이익이 2014년 208억원에서 2015년 159억원으로 급감하며 1994년 이후 처음으로 매출이 역성장했다.
이에 따라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중이 2015년 3.8%에서 2017년 5.5%로 상승세를 나타냈다.
인디아 법인 신설을 통해 해외 유통망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내고 있다.
삼화페인트는 2016년 3월 인디아 법인을 신설하고 2017년 2월부터 상업생산에 돌입하면서 인디아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삼화페인트 관계자는 “베트남 시장에서 철수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며 “인디아 법인 설립은 해외 유통망을 확대하려는 방침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플래스틱용 페인트는 수요가 꾸준히 신장하고 있는 가전용에 주력할 것”이라며 “가전, 자동차용 페인트 개발에도 집중해 새로운 매출 동력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강남제비스코는 삼화페인트와 같은 전략으로 베트남 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파악돼 많은 시장 관계자가 의문을 품고 있다.
강남제비스코는 베트남에 2000톤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가전용 친환경 분체 페인트와 공업용 페인트를 주력제품으로 내세울 예정이며 이후 건축용으로도 확대할 방침이다.
강남제비스코 관계자는 “공장을 준공하기 전 철저히 시장 조사를 진행했고 미리 영업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며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기술력을 검증받은 뛰어난 품질을 바탕으로 베트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가전용, 공업용에 이어 건축용으로 판매제품을 확대할 것”이라며 “생산량 역시 2000톤에서 4400톤까지 2배 이상 확대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베트남 등 동남아는 건축용 페인트를 선택할 때 저렴한 가격을 가장 중시하기 때문에 강남제비스코가 건축용 수요를 확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삼화페인트 등 대부분의 페인트 생산기업들은 스마트폰용 수요가 급감하자 경제 상황에 영향을 덜 받고 수요가 꾸준한 가전용에 집중하고 있다.
<임슬기 기자: ysk@cheml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