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케미칼(Dow Chemical)과 듀폰(DuPont)이 합병함으로써 거대 화학기업이 탄생했다.
1802년 화약기업으로 출발한 듀폰은 약 2세기에 걸쳐 화학기업, 사이언스기업으로 사업구조를 크게 전환한데 이어 AI(인공지능)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이 급속히 진화함에 따라 새로운 이노베이션을 목표로 다우케미칼과 통합을 추진했고 새로운 3개 전문 화학기업이 탄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글로벌 화학 시장에서는 다우듀폰 탄생을 기점으로 화학사업 구조재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범용 분야는 중국을 중심으로 신흥기업이 생산규모를 대폭 확대해 뛰어난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고, 최근에는 셰일(Shale) 혁명의 영향으로 미국도 경쟁력이 회복되고 있어 대응방안 마련이 불가피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학 메이저들은 고부가가치 분야 및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등 내부적인 전략 뿐만 아니라 다우듀폰과 같이 경쟁기업과 통합하거나 제휴하는 등 외부적으로도 다양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범용분야, 미래 틈새시장 공략 준비를…
다우듀폰은 지주기업 형태로 사업부문을 농업화학·종자(Agriculture), 과학·화학소재(Material Science), 스페셜 첨단제품(Speciality Products) 3개 전문화학기업으로 분할할 예정이어서 일부에서는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스페셜티 화학 사업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통합에 따라 30억달러의 코스트 절감과 10억달러의 성장 시너지가 발생하고 연구개발에 자금, 인재, 기술이 집중됨으로써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악조노벨(AkzoNobel), DSM 등 유럽 및 미국 화학기업들도 강점분야를 더욱 특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일본 및 한국 화학산업은 유럽 및 미국의 구조재편과 대조적으로 군웅할거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성장성이 아니라 매출규모 및 시가총액이 작은 곳이 인수합병(M&A)의 대상이 되고 있고, 성장분야에서는 개발경쟁으로 체력을 소모해 EV(전기자동차) 등 성장시장 본격 형성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개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규모 운영자금이 필수적이고 OEM과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질과 양, 가격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범용 분야는 경기 사이클, 기술개발을 예측한 후 출구를 고려해 사업을 전개해야 함은 물론 범용 분야에서 얻은 수익을 고수익형 및 첨단기술형 틈새시장에 투입하는 쌍방향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특정 수요처와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는 KAM(Key Account Management) 전략도 중요시되고 있다.
일본, 에틸렌 생산능력 추가 축소 가능성
일본은 2015년부터 에틸렌(Ethylene)을 중심으로 생산하는 스팀 크래커의 가동률이 90% 이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국제유가가 하향안정화됨에 따라 수익환경이 양호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러나 높은 가동률은 내수 신장에 따른 것이 아니라 메이저 3사가 생산능력을 100만톤 축소하고 해외 플랜트에서 사고가 발생해 수급이 타이트해진 영향이어서 차기 구조재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은 Mitsubishi Chemical Holdings(MCH)과 Asahi Kasei Chemicals(AKC)이 Okayama 및 Mizushima 소재 스팀 크래커를 통합하면서 대대적인 석유화학 구조재편을 시작했으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이 에틸렌 100만톤 이상의 스팀 크래커 건설을 본격화하는 등 셰일가스의 위협이 현실화되고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수준으로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확보할 수 없는 것으로 분석돼 구조재편이 불가피했으나 너무 서두른 나머지 에틸렌의 고공행진을 초래함으로써 구조재편에 나서지 않은 한국은 물론 신규투자에 나선 동남아시아 석유화학기업들의 수익을 담보해주는 역할에 그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MCH는 미래를 내다보고 미리 구조재편을 진행함으로써 석유화학 호황을 이끌 수 있었다고 강조했으나 한국에서 구조재편을 늦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일본에서는 에틸렌 50만톤 크래커를 가동하는 석유화학기업을 통합한다고 총 생산능력이 100만톤으로 확대되지 않고 50만톤 2기를 가동하면 코스트를 감당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합병을 통해 시너지를 추구할 필요가 있고 50만톤 2기를 부수고 100만톤 크래커를 새로 건설하는 각오가 필요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C4 이후 유분을 강화하기 위해 정유기업과 일체화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C2, C3는 정유기업이, C4 이후 유분은 화학기업이 담당함으로써 석유화학 사업의 부가가치가 향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원료 경쟁력이 뛰어난 해외에 에틸렌 크래커를 건설해 원료를 확보하고 일본에서는 C4 이후를 강화하는 양면전략도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돼 정유기업과의 연계를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일본 석유화학산업은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높은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으나 원료 측면의 핸디캡, 플랜트 생산능력의 차이 때문에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 대규모 최신설비가 잇따라 가동하고 글로벌 공급과잉이 심화됨으로써 또다시 크래커 통폐합이 불가피해질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일본은 장기적으로 에틸렌 크래커 3-4기를 가동하는 것으로 충분해 경쟁기업과 통합하거나 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M&A·분사와 통합전략은 “경영방식 차이”
MCH는 2017년 4월 화학3사를 Mitsubishi Chemical로 통합함으로써 코스트 감축 및 성장에 대한 시너지 효과가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 화학산업은 MCH의 통합경영을 계기로 자본계열을 중심으로 구조재편이 일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기업들은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 자본을 뛰어넘는 합병은 실현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중간규모의 종합화학기업으로 상생하기보다는 사업부문을 각각 거대화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쪽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글로벌 최대 종합화학 메이저로 자리 잡고 있는 BASF는 끊임없이 포트폴리오를 개선하며 글로벌 경쟁력이 뛰어난 사업을 바탕으로 페어분트(Verbunt) 경영을 강화함으로써 통합 시너지를 추구하고 있고, 다우듀폰도 3개 독립기업이 각각 거대화를 추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화학기업 사이의 통합보다 내부적으로 사업부문별 시너지를 추구하는 쪽이 현실적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일본은 폴리올레핀(Polyolefin)을 비롯해 PS(Polystyrene), PVC(Polyvinyl Chloride) 등 범용수지 부문에서 재편을 통한 집약화를 실현한 바 있으나 성장·전략분야에서도 통합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시되고 있다.
유럽 및 미국 화학기업들은 사업이 호조를 보이는 시기에 활발하게 매각을 추진하는 특징이 있다.
듀폰의 케뮤어즈(Chemours), 바이엘(Bayer)의 코베스트로(Covestro)는 불황시기와 상관없이 분사한 대표적 케이스로, 전략사업에 경영자원을 집중한다는 방침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준전략사업은 높은 금액에 매각할 수 있을 때 처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결과로 해석된다.
반면, 일본은 불황이 예측되거나 불황이 도래한 후 구조재편을 시도하는 편이다.
일본기업의 경영 스타일 때문으로, LiB(리튬이온전지)는 EV 보급이 본격화됨에 따라 양극재·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분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으며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선결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기업들은 수요처와 신뢰감을 형성한 후 서로 의견을 조정하며 소재 성능에 맞춰 적용하는 영업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강점분야에 경영자원을 집중하는 전략적인 투자가 요구되고 있다.
일본기업들은 새로운 고부가가치 화학제품·소재를 개발할 수 있는 인재를 확보하는 것도 시급해지고 있다.
벤처기업을 활용하거나 개방화를 추진할 수 있으나 신규시장 개척, 마케팅을 포함한 개발력이 중요하기 때문으로, 사업 통합도 인재 분산을 막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경쟁기업과도 연합
다우듀폰의 탄생은 이노베이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강점분야에 경영자원을 집중하는 시대에 들어섰음을 의미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틈새분야에서 글로벌 1-2위를 달리고 있는 화학기업이 적지 않는 등 뛰어난 전문성이 강점으로 평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성장사업은 범용화가 불가피해 근본적인 국제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데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EV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50%에 달하는 소재도 급속히 범용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기업들은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적극 투자하고 있다.
친환경 타이어에 사용되는 SSBR(Solution-Polymerized Styrene Butadiene Rubber)은 4사가, LiB의 4개 소재는 각각 3사 이상이 사업화하고 있다.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도 발광 및 디스플레이 소재 생산기업들이 격전을 벌이고 있다.
생산기업이 지나치게 많고 상호 경쟁함으로써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체제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업을 통합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상실해 거대 자본화된 유럽, 미국, 중국의 하청기업으로 전락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점유율 1-2위인 일본기업은 공동개발과 관련된 상담을 통해 OEM으로부터 1차 정보를 획득하기가 쉽지만 복수가 난립함으로써 기술경쟁 뿐만 아니라 가격경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즉, 사업을 통합해 기능을 집약시키면 1차 정보를 획득할 가능성이 더 높아져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고, 신흥기업의 등장으로 범용화가 이루어져도 OEM의 1차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범용과 공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업을 통합하면 자금 조달능력도 강화돼 M&A 추진도 수월해질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일본 산업혁신기구는 Sekisui Chemical과 Sumitomo Chemical의 폴리올레핀 필름 사업을 Sumika Sekisui Film(SSFH)으로 통합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했고, SSFH는 통합에 따라 더욱 많은 정보가 들어올 뿐만 아니라 종업원의 동기부여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쳐 1년만에 이익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산업혁신기구는 SSFH를 중심으로 일본 필름 사업의 종합 구조재편을 구상하고 있다.
성장분야에서도 제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Mitsubishi Chemical과 Ube Kosan은 중국 소재 LiB용 전해액 생산설비를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범용화에 따른 가격경쟁에 대비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공략을 강화할 목적으로 제휴를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에서 나아가 유럽, 미국 등 선진국 EV 시장에서 확고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OLED 분야에서도 Idemitsu Kosan과 Toray가 발광소재 기술과 관련해 제휴하고 있다.
경영진의 적극성이 성장의 원동력
일본은 철강, 석유, 종이·펄프 등 소재산업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구조재편이 이루어졌으나 화학산업은 구조재편보다는 내부적인 사업내용 전환을 통해 성장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암모니아(Ammonia)로 출발한 Asahi Kasei Chemicals은 핵심을 석유화학으로 전환함으로써 섬유사업 비율을 최대 70% 이상에서 최근에는 10% 미만으로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화학산업은 자동차, 전기전자를 중심으로 양질의 생산기업에 규모화된 수요가 존재함으로써 순조롭게 구조재편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다만, 모두 일본시장을 전제로 한 구조재편이며 글로벌화,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 산업가치 이동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기능성 화학제품 강자들이 연합하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으나 경쟁기업과의 통합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유이다.
MCH는 화학3사 통합으로 Mitsubishi Tanabe Pharma, Taiyo Nippon Sanso를 편입시킴으로써 경쟁력을 대폭 향상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범용제품은 시장환경이 좋을 때 구조재편에 나서야 성공할 수 있고, 특히 세계시장에서 기술적으로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지 화학제품별로 정밀하게 조사해 대비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MCH는 PTA(Purified Terephthalic Acid) 사업에서 실질적으로 철수한 반면 MMA(Methyl Methacrylate)는 글로벌 1위를 수성하는 등 범용 분야의 사업구조를 재편한데 이어 AI 등 디지털 기술을 포함한 사업모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일본 화학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최고경영자(CEO)의 임기가 4년에 불과해 장기적인 비전을 설정하고 구조개편을 결단하기 어려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앤드루 리버리스 다우듀폰 회장은 2004년 다우케미칼의 CEO로 취임했으며, BASF를 세계 최대의 화학기업으로 성장시킨 주르겐 함브레히트 회장도 8년간 경영을 맡았다.
일본 화학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에서 에틸렌 크래커를 가동하고 있는 Shin-Etsu Chemical이나 MCH는 CEO의 임기가 길어 장기경영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위기에 대비한 고차원적 성장전략 추진이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