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화학기업들이 첨단 전자·반도체용 화학소재 사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가 최대 소비국인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함에 따라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7월4일 한국에 수출하는 불소(Fluorine)계 PI(Polyimide), 레지스트(Resist),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3개 화학소재와 생산설비 수출을 포함한 관련기술 이전 등에 대해 기존의 포괄적 수출허가제에서 개별 수출허가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8월2일에는 외환관리법에 따른 수출 관리상 분류에서 한국을 안전보장상 우호국을 의미하는 화이트리스트(White List)에서 제외한다고 공표하고 8월28일 시행에 들어갔다.
한국은 그동안 반도체 소재 등 첨단소재를 주로 일본산을 수입해 충당해왔으나 사실상 수입이 어려워지고 중장기적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됨에 따라 정부를 중심으로 소재 국산화 및 수입선 다변화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7월4일 수출허가 전환이 이루어지자마자 보유하고 있던 불화수소 등 3개 화학소재 재고를 모두 한국에 수출하고 추가 재고를 대거 확보하는 등 긴급 조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화학소재는 재고를 평소보다 2배 이상 쌓아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따른 혼란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생산기업들이 감산했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으나 일본산 화학소재 조달난 때문이 아니라 스마트폰 부진 등이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 반도체산업은 2018년까지 호황이 이어졌으나 2019년 들어 수요증가율이 둔화되고 거래가격까지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일본도 화이트리스트 제외 이후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화학기업들은 장기간 보관이 어려운 불화수소 등의 특성상 10월 초까지 한국에 수출하지 못한다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재고를 폐기 처분해야 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불화수소 외에 다른 첨단소재들도 장기간 보관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정부의 조치가 산업계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에만 수출을 금지한 것이 아니며 첨단소재는 중국과 타이완에 대해서도 수출규제를 점차 강화할 계획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산업계 입장과 상당한 괴리가 나타나고 있다.
또 화이트리스트 제외조치에 따른 타격이 아직까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일본기업 대부분이 이미 특별일반포괄신청허가를 보유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기존과 크게 달라진 것은 경제산업대신이 통지하는 통보요건 또는 수출기업이 신청하는 객관요건 가운데 하나를 충족시킬 때 개별적으로 허가 신청이 필요해진다는 내용뿐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해당 개발신청 대상이 리스트 규제제품 이외의 모든 화물로 광범위하기 때문에 결국 배터리, 자동차, 반도체 제조장치 등 산업계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기업들은 중장기적으로 한국기업들이 공급처 다변화에 나설 것을 우려하고 있다.
EUV(극자외선) 레지스트는 일본만 생산할 수 있고 이미 일본기업들이 삼성전자 등의 요구에 맞추어 커스터마이징을 실시했기 때문에 공급처 변경이 어려울 것으로 파악되나 불화수소 등은 한국이 국산화할 가능성이 있고 당장 부족물량을 타이완 등으로부터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반도체산업 뿐만 아니라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 등 다른 산업계에서도 일본산 소재만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 브랜드 불매운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일본기업과 관계가 있거나 일본산 원료를 사용한 소비재에 대한 불매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어 국내 산업계의 일본산 탈피 흐름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일본 의류 브랜드와 화장품, 맥주 등은 7월 국내 판매량이 전년동월대비 20-30% 격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산업계는 그동안 첨단소재를 중심으로 일본산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높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소재 등과 관련한 연구개발(R&D)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방대한 데이터를 사용해 목표로 하는 기능을 보유한 소재를 단기간에 개발할 수 있는 머터리얼 인포매틱스(MI) 등 디지털 기술이 미국, 중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 산업계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어 일본이 안심하고 있을 단계는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화는 산업계 판도를 단번에 바꾸어놓을 만큼 강력한 변화이기 때문에 그동안 첨단소재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있던 일본 화학기업들이 정부의 규제조치 후유증으로 시장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