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화학기업들이 벤처기업과의 연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IoT(사물인터넷), AI(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이 발전하면서 화학산업은 물론 제조업 전반이 새로운 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그동안 사용해온 화학적 방법으로는 신제품을 개발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기존 사업모델을 연장시키는 것만으로는 사업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반대로 현재의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고 스스로 변화를 일으킨다면 미래 화학시장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앞으로도 새로운 기술을 확보하고 파격적으로 변화할 신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적극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화학의 틀 벗어나 새로운 기회 모색
일본 화학기업들은 벤처 투자에 있어 방법론이 서로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아사히카세이(Asahi Kasei)는 소재만이 아니라 데이터, 서비스, 솔루션을 모두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반면, 스미토모케미칼(Sumitomo Chemical)은 디지털·바이오 등 기존 사업과 겹치는 부분이 많은 영역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미쓰이케미칼(Mitsui Chemicals)은 기존의 화학이라는 틀을 크게 벗어나 파격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모든 화학기업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변화가 바로 기회라는 인식이며,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과거에는 대기업이라면 하지 않았을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기 위해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과 협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AI를 탑재한 로봇이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유전자를 변환하고 다양한 미생물을 생산하는 모습은 영화에나 나오는 상상이 아니라 이미 현실에도 존재하고 있으며 많은 관련기업들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스미토모, 바이오·헬스케어 기술 확보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교외에 본거지를 둔 바이오 스타트업 Zymergen 활동으로, 일본에서는 소프트뱅크(Softbank)가 운영하는 비전펀드가 출자하고 있고 세계 각지에서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스미토모케미칼 역시 Zymergen의 생물학적 방법을 활용해 혁신적인 고기능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협업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우선, 디스플레이용 광학필름과 흠집이 잘 나지 않는 하드코팅 소재, 플렉서블(Flexible) 기판용 소재, 접착제 등 전자 분야가 대상이며 앞으로 더욱 광범위한 영역에서 공동개발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스미토모케미칼은 미국 보스턴에 CVC(Cooperation Venture Capital) 거점인 코포레이트 벤처링 & 이노베이션 오피스를 개설했다. 과거에도 뉴욕을 중심으로 스타트업 탐색을 진행해 왔으며 CVC 개설을 통해 관련 인원을 더욱 확충할 계획이다.
헬스케어 분야 스타트업들이 모여 있는 보스턴에 거점을 마련함으로써 자사가 보유하고 있지 않은 기술을 확보하는데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츠비시, 미국에서 디스플레이 소재 개발
미츠비시케미칼(Mitsubishi Chemical)은 2018년 여름 실리콘밸리에 100% 출자해 CVC 자회사 Diamond Edge Ventures(DEV)를 설립했다.
일본 전기 메이저 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미국 실리콘밸리의 친환경 시스템에도 정통한 래리 마익스너(Larry Meixner) 전문가를 CEO(최고경영자)로 발탁했으며 혁신적인 이노베이션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DEV는 신소재, AI·IoT, 헬스케어 영역에서 유망한 스타트업을 탐색할 계획이며 1차적으로 AR(증강현실) 및 VR(가상현실)용 디스플레이 부재를 개발하고 있는 미국 DigiLens에 출자했다.
DigiLens는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하는 홀로그램 광학기술에서 강점을 나타내고 있으며 독자적인 나노소재와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아사히카세이, 스타트업 18사에 투자
아사히카세이도 실리콘밸리에 중심을 두고 일찍이 18사에 달하는 스타트업에게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대상 가운데 심자외선(UVC) LED(Light Emitting Diode) 기술을 보유한 Crystal IS, 이산화탄소(CO2) 등 가스 센서 모듈을 생산하는 Sense Air 등 2사는 인수했으며 기존 보유기술 및 사업과 융합시킨 연구주제를 계속 창출하고 있다.
심자외선은 파장이 100-280나노미터로 자외선 중에서도 파장이 짧은 편이며, 특히 가장 높은 살균효과를 나타내는 265나노미터 심자외선은 균이 보유한 DNA 2중나선을 절단시켜 유전자 정보 복제를 차단할 수 있고 증식을 막는 것이 가능하다.
물 살균이나 공기 정화 분야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수은램프를 대체하는 용도로 사용하면 살균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질화알루미늄 단결정기판에서도 독창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Crystal IS와 아사히카세이 자체기술을 조합시켜 신규사업에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사히카세이가 출자한 스타트업 가운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펩타이드(Peptide)를 사용해 냄새 센서를 만들 수 있는 Aryballe도 미래 잠재력이 높은 편이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Aryballe이 생산한 센서를 활용하면 품질검사 등에서 미세한 냄새까지 검출해낼 수 있으며 센서 단독제품 뿐만 아니라 데이터 서비스 등 사업을 확장시킬 여지가 많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본, 100억엔대 중장기 투자펀드 조성
신에츠케미칼(Shin-Etsu Chemical), 미츠비시케미칼 등 일본 화학·소재 생산기업들이 공동 설립한 투자펀드 UMI2호 투자사업 유한책임조합은 벤처,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를 2020년부터 본격화한다.
중점투자 대상으로는 이산화탄소 감축, 물, 식량 등 3개를 설정했으며 NCC(Naphtha Cracking Center) 대체기술과 바이오화학제품, 수처리, 양식·농업 등 혁신기술을 갖춘 곳을 대상으로 투자할 방침이다.
이스라엘 등 해외펀드와도 연계해 국제적인 동향을 관찰하면서 일본과 해외의 유망기업을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호펀드는 벤처캐피탈인 Universal Materials Incubator(UMI)가 2019년 4월 설립했으며 최근 Dexerials도 참여를 결정해 화학·소재 관련기업 12사와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등이 출자한다.
펀드규모는 현재 65억엔 수준이며 앞으로 은행 등 추가 출자를 유치해 100억엔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1호펀드 기한이 9년이었던 것과 달리 2호펀드는 기본 10년에 2년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활동이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2호펀드는 1호펀드가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생명과학, 모빌리티·우주, 전자·정보 분야에도 주목하지만 ESG(환경·사회·거버넌스) 투자와 SDGs(지속가능한 개발목표) 실천 등을 바탕으로 이산화탄소 감축 등 지구환경 문제나 국제사회가 겪고 있는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기술을 갖춘 벤처 등에게 투자를 집중할 예정이다.
개별기업의 단독 투자로는 실현이 어렵고 개발기술을 공업화 혹은 양산화시킬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대상에 대해 리스크 머니를 공급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1건당 5억-10억엔을 투입하고 총 10-12건의 사업 및 벤처기업 등에 투자한다.

친환경·물·식량 문제 해결책 모색
이산화탄소 감축 분야에서는 셰일(Shale) 베이스인 에탄(Ethane)을 사용한 올레핀 제조, 원료다양화 기술, 소형·고효율 크래킹 기술 등을 주목하고 있다.
기술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석유 베이스에 밀리지 않는 경제성을 갖추게 된 바이오공법으로 화학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벤처에 대해서는 주로 원료 관련기술을 갖춘 곳을 모색할 예정이다.
NCC 외에도 제조공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건조공정 등 프로세스 개량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물 분야에서는 일본기업들이 막 기술에 강점을 갖추고 있지만 밸류체인에서 일부만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가가치를 최대한으로 확보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막 여과기술 외에 새로운 수처리기술 등을 핵심으로 운전관리, 유지보수 등을 조합한 사업 시스템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할 예정이다.
식량부족 해결을 위한 신기술도 화학·소재 생산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고 있다.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세계적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수산물 양식용 사료와 치어 등으로, 아직까지 천연자원에 의존한 서플라이 체인을 구성하고 있으나 생산성을 높이는 혁신기술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연계처가 있는 미국, 유럽 뿐만 아니라 소재과학 관련 유망기술을 다수 갖춘 이스라엘에서는 헤브라이대학계 펀드와도 연계한다.
성장시장으로서 매력이 큰 인디아에서도 현지펀드와 연계해 신기술을 발굴할 예정이다.
일본에서는 벤처 뿐만 아니라 유망기술을 갖춘 중소기업도 주목하고 있다.
UMI는 출자기업의 출자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투자와 신규사업화 관련 전문가도 육성할 예정이다. 출자기업의 인재 교류 도모도 계획하고 있다.
UMI는 유럽과 미국에 비해 재편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일본 화학산업 문화를 벤처투자와 인재육성을 통해 변혁시키고자 하는 목적에서 설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