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정유·석유화학기업들이 폐플래스틱에서 추출한 열분해유 공정 개발에 뛰어들고 있으나 기술적 한계로 상용화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유·석유화학기업들은 기후문제, 불안한 국제정세와 에너지 수급난 등으로 폐플래스틱 재활용 기술을 주목하고 있으며 폐플래스틱에서 나프타(Naphtha)를 추출한 후 기초유분과 플래스틱을 생산하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정유기업들은 친환경 기술 선도 이미지와 열분해유 시장을 선점하기 위힌 전략을 발표하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현실은 재활용 중소기업에 열분해유 공정을 위탁하거나 실증단계에 머물러 있다.
폐플래스틱, MR·CR·TR 기술로 재활용
폐플래스틱 재활용은 MR(기계적 재활용), CR(화학적 재활용), TR(에너지 재활용)으로 구분되고 있다.
MR 기술은 현실적으로 순도, 색상, 물성 등이 신규 생산 원료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성이 부족하고 소비자 구매력도 낮다는 단점이 꼽히고 있다. 
CR은 플래스틱의 기본 물성을 변환시키는 화학적 변화를 통해 다른 물질로 전환한 후 재활용하는 기술로 부각되고 있으며 열분해에 따른 연료유 제조공정을 국내외에서 꾸준히 연구개발(R&D)하고 있다.
글로벌 CR 시장은 폐플래스틱에서 추출 가능한 열분해유 기준 2020년 70만톤에서 2030년 330만톤으로 연평균 17%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는 고분자 폐기물을 무산소 상태에서 가열해 탄소 사슬을 끊어냄으로써 단량 분자로 전환하는 기술과 고온·고압의 초임계 수증기로 혼합된 폐플래스틱을 분해하는 기술 등을 열분해유 파일럿 생산에 도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저온 열분해로 가스액체, 오일, 고체 잔류물 등을 얻어내는 방식의 재활용 기술을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현재 시장을 형성할 정도의 열분해유 생산기업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바스프, 플래스틱 열분해유 생산 선도
화학기업 중에서는 바스프(BASF)가 앞장서서 CR 열분해유 상용화에 나서고 있다.
바스프는 수년 전 플래스틱을 진공 조건에서 열분해해 오일성분을 짜내고 올레핀(Olefin)을 얻어내는 시범 기술을 선보였으며 2018년 켐사이클링이라는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최초로 CR의 상업적 도입을 시도했다.
산소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 플래스틱을 열분해함으로써 다이옥신(Dioxin)과 같은 유해물질이 생성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스프는 독일에서 협력하는 재활용기업 리첸소(Recenso)로부터 공급받은 폐플래스틱 오일과 합성가스를 페어분트(Verbund)에 투입하면서 에틸렌(Ethylene)과 프로필렌(Propylene)을 생산하고 매스밸런스 방식으로 최종 생산제품에 투입하고 있으나 폐플래스틱 처리능력은 2만톤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2019년 1월 첫 파일럿 생산에 이어 혼합 폐플래스틱 열분해와 생성된 오일을 전문적으로 정화하는 노르웨이 스타트업 퀀타퓨엘(Quantafuel)에게 약 270억원을 투자하며 폐플래스틱 열분해유 순환구조를 마련하고 있다.
2020년에는 폐타이어를 이용해 열분해유를 생산하는 Pyrum에도 투자하며 열분해유를 공급받기로 했다.
넥서스·네스테·사빅 합작으로 실증 플랜트 건설
미국 넥서스(Nexus Fuels), 핀란드 네스테(Neste), 사빅(SABIC) 역시 열분해유 플랜트를 건설하고 있거나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업스케일 기술 실증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넥서스는 열해중합을 통해 생산한 열분해유를 쉘(Shell)에게 6만톤 공급하기로 했으며 2025년까지 플래스틱 100만톤 처리와 열분해유 70만톤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HDPE(High-Density Polyethylene), LDPE(Low-Density PE), PP(Polypropylene), PS(Polystyrene)를 무산소 상태에서 열을 가해 탄소 사슬을 끊어내는 방식으로 열분해유를 생산할 계획이다.
네스테는 Recycling Technology에게 500만유로를 투자해 폐플래스틱 7000톤을 처리할 수 있는 파일럿 플랜트를 건설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100만톤 이상 폐플래스틱 처리를 목표로 삼고 있다. 아울러 CR 기술을 보유한 Alterra Energy의 지분 일부를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빅은 2022년 완공을 목표로 폐플래스틱 2만톤을 처리할 수 있는 열분해 유화 플랜트를 건설하고 있다. 플래스틱에너지(Plastic Energy)와 50대50 비율로 합작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래스틱에너지는 최근 토탈에너지(Total Energies)와도 폐플래스틱 리사이클을 촉진하기 위한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스페인 세비야(Sevilla)에 2번째 CR 공장을 건설한 다음 생산한 열분해유를 토탈에너지에게 석유화학제품 원료로 공급하며 2025년 초 폐플래스틱 처리능력 3만3000톤을 상업 가동할 계획이다.
일본 미츠비시케미칼(MCC: Mitsubishi Chemical)은 영국 무라테크놀로지(Mura Technologhy)로부터 CR 기술을 도입했으며 1만톤급의 열분해 설비를 건설하기 위한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SK지오센트릭, 중소기업 협력에 해외기술 도입
SK지오센트릭은 세계 최대 도시유전을 목표로 열분해유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SK지오센트릭은 열분해유 사업을 투트랙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 국내 중소 재활용기업들과 협력해 열분해유를 구매하고 해외 기술기업들과 협력해 중대형 공장을 직접 건설하는 2가지 전략이다.
SK지오센트릭은 에코그린, 제주클린에너지 등 국내 폐플래스틱 열분해 중소기업이 생산한 열분해유를 도입해 2021년 9월부터 국내 최초로 울산 컴플렉스 정유·석유화학 공정에 원료로 투입하고 있다.
노규상 에코그린 대표는 “평균적으로 1회에 폐플래스틱 10톤 정도를 처리하고 있다”며 “수율이 약 50-60%이며 열분해 시 발생하는 가스 등은 열에너지로 재활용한다”고 밝혔다.
SK그룹에 따르면, 열분해유는 염소 등 불순물이 다량 함유돼 재활용이 어렵고 대기오염물질 배출, 설비 부식 등 2차 오염 문제도 있어 사용이 극히 제한적이다.
SK지오센트릭과 에코크레이션은 불순물 제거를 위한 촉매공법 개발 협력으로 문제 해결을 노리고 있으며, 현재 열분해유의 나프타 함량을 25%에서 5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촉매를 이용해 열분해유에서 수소화 반응을 일으켜 질소, 염소, 황 등 불순물을 제거하는 방식이며 후처리 과정을 거치며 낮은 점도, 흰색의 반투명한 열분해유를 얻어내는 것으로 파악된다.
동시에 연속공정 기술로 세계 최대 열분해 공장을 시운전하고 있는 미국 브라이트마크(Brightmark)와 울산에서 10만톤의 폐플래스틱을 처리하는 열분해 공장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수도권에서도 열분해 기술기업과 3만-4만톤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2024년 말까지 CR 사업의 일환인 열분해, PET(Polyethylene Terephthalate) 해중합, PP 용제추출 공장을 울산 컴플렉스 인접 산업단지 6만5000평 부지에 건설해 화학적 재활용 클러스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GS칼텍스·LG화학·현대오일뱅크도 적극화
GS칼텍스는 GS건설 및 폐플래스틱 열분해 기술기업인 도시유전과 협력해 열분해유를 석유정제 공정에 투입하는 실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폐플래스틱 열분해유 50톤을 여수공장 고도화시설에 투입하고 있으며 실증사업 결과를 활용해 2024년 열분해유 5만톤 생산설비 투자를 모색하고 100만톤으로 확대해 프로필렌과 PP를 생산할 계획이다.
LG화학은 2024년 1분기 당진에 열분해유 2만톤을 생산하는 초임계 열분해유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초임계 수증기를 열원으로 사용하는 기술로 수증기로 폐플래스틱을 찌는 방식을 활용하면 더 많은 양의 열분해유를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무라테크놀로지 기술을 도입하는 것으로 파악되며, LG화학은 2021년 10월 무라테크놀로지 지분에 투자하고 미국 엔지니어링기업 KBR(Kellogg Brown & Root)과 기본설계를 위한 공정 라이선스 및 엔지니어링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KBR은 최근 무라테크놀로지에게 1억달러를 추가 투자해 지분을 18.5%까지 확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LG화학과의 3사 동맹이 더욱 견고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2021년 11월부터 열분해유 100톤을 원유정제 공정에 투입하는 실증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대표는 “열분해 공정(DCU)을 활용해 앞으로 5만톤의 신규 폐플래스틱 열분해유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국내 열분해유 생산은 대부분 중소기업이 담당하며 파일럿 설비에 그쳐 상업가동 스케일에 필요한 기술과 데이터 존재 여부가 불확실한 것으로 파악된다.
기술기업, 관련 데이터 공개 “난색”
열분해 기술은 폐플래스틱 성분과 함량에 따라 고품질 열분해유 생산조건이 다르고 상업가동 스케일의 실증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한계에 놓여 있다.
해외조차도 CR 상업가동이 이루어지지 않아 참고 및 적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국내 기술연구 관계자는 “열분해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기술기업들도 상업가동 스케일 데이터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며 “데이터를 요구하면 계약서를 먼저 내미는 방식이기 때문에 투자접근이 조심스러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플래스틱 열분해 기술의 쟁점은 플래스틱 성분에 따라 최적조건이 다르게 나타나 효율적인 분리체계가 필요하고 복합수지 열분해 역시 복합성분에 따라 조건 설정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된다.
고분자 분해 및 안정성 논문에 따르면, 섭씨 400도로 열을 가했을 때 PS가 가장 빠르게 평형 상태에 도달했으며 HDPE는 PS보다 약 2배의 시간이 요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합수지 역시 혼합비율에 따라 액상 및 가스 수율이 다르게 나타나고 분해속도 역시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공정기술 역시 연구가 더욱 필요한 상태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열분해 기술은 반연속식 반응장치가 대부분으로 하루에 1회만 운영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CR 장비 운전기업은 2020년 기준 12개이며 플래스틱 처리능력이 2000톤 이상인 재활용기업은 단 3곳 뿐인 것으로 파악된다.
플래스틱 재활용 중소기업들은 반연속식 설비 4개 이내를 병렬로 설치해 폐플래스틱 처리효율을 높이는 등 노력하고 있으나 반연속식 공정 자체가 가열, 반응, 냉각 단계로 이루어져 있어 경제성이 부족하고 대기오염물질, 폐수 및 잔여물이 발생하는 등 친환경 설비가 미비한 것으로 니티니고 있다.
대표적으로 PVC(Polyvinyl Chloride) 폐비닐 재활용을 위한 염소 제거 기술이 다양한 범위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플래스틱 초기 생산에 투입되는 각종 첨가제 처리방법 역시 연구개발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기술 관계자는 “일반 열분해로 얻을 수 있는 오일은 오염이 심해 석유화학제품 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품질 개량이 필요하다”며 “유해성분이 들어가지 않는 기술을 개발해야 정유·석유화학기업들이 열분해유를 플래스틱 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파일럿 플랜트 수준이어서 상업생산은 난제
현재 열분해유 기술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대기업의 자금력으로 기술 한계를 극복할 것이라는 의견과 해외 기술기업들도 검증된 기술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국내 열분해유 연구 관계자는 “대기업은 자금력으로 외국에서 기술과 공정을 라이선스할 수 있다”며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열분해유 상업생산이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SK·GS·현대 등 대기업들이 수천억을 투자하면 상용 플랜트를 가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관계자는 “대기업이라면 해외기업에게 기술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한 다음 독자개발 노선으로 돌아설 역량이 있다”며 “석유화학처럼 복잡한 기술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반면, “해외기업들도 기술 데이터 공개를 꺼리고 있으며 대부분 파일럿 플랜트에 불과해 상업가동 조건을 맞추기가 까다로울 것”이라는 주장 역시 존재한다.
해외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비교 데이터를 작성하려고 해도 기술기업에서 투자협약을 조건으로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탄소감축 연구 관계자는 “석유화학기업이 실증 속도를 높이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사업에 유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술을 도입하고 있는 단계”라며 “파일럿 플랜트에서 나오는 데이터 결과가 좋으면 확장할 수 있으나 반대라면 사업을 리셋하고 다시 기술기업을 찾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환경부, 법적 기준 마련했으나 한계점도 존재
정부도 제도 개선으로 열분해유 사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환경부는 2022년 2월 폐기물시설촉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하고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산업단지 부지에 설치 가능한 폐기물처리시설에 기존 매립시설 뿐만 아니라 소각시설과 폐기물을 열분해하는 재활용시설을 신설하는 등 기준을 마련했다.
열분해유를 석유화학제품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도 2022년 5월 시행에 들어갔다.
기존 시행규칙에서는 열분해유를 연료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했기 때문에 국내에서 생산되는 열분해유는 플래스틱 생산이 아닌 난방용 연료로 쓰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1년 SK지오센트릭·GS칼텍스, 2022년 현대오일뱅크의 실증을 위한 규제 특례를 승인했으며 규제 샌드박스에 따라 중소기업이 생산한 열분해유를 구매해 플래스틱 원료로 투입하며 실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석유제품의 정의를 규정한 현행 석유사업법 2조에 폐플래스틱 열분해유 항목은 여전히 추가되지 않는 등 한계점이 남아있어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논의가 필요한 상태이다.
플래스틱 성분별로 열분해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폐플래스틱 분리수거 체계 재정비 역시 요구되고 있다.
열분해유 기술 관계자는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지자체에서 폐플래스틱 수거체계를 정비하면 사업성이 확대될 것”이라며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인택 기자: hit@cheml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