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산업을 옥죄었던 규제가 완화된다고 한다. 특히, 중소 화학기업들이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지적과 원망에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던 킬러 규제가 대통령의 한마디에 무너져 내리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시스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각종 참사가 말해주듯이 국가 시스템의 어디엔가 구멍이 송송 뚫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환경부는 8월24일 화학물질 등록·평가에 관한 법(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규제 강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하고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에 대해서는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규제를 합리화함으로써 2030년까지 총 8조8000억원의 경제효과를 거두겠다고 발표했다.
국제 수준보다 엄격했던 신규 화학물질 등록기준을 연간 0.1톤 이상에서 EU(유럽연합) 등 화학물질 관리 선진국 수준인 1톤 이상으로 조정하고, 화학물질 등록에 필요한 시험자료 대신 공개된 해외 평가자료의 출처만 제시하면 정부가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중소기업들이 사업을 할 수 없다며 아우성치던 규제들이 완화됨으로써 화학제품 등록비용 절감, 조기 출시 등으로 2030년까지 3000억원의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사고 위험이 낮은 사업장에도 적용됐던 획일적인 화학물질 규제를 위험도에 따라 차등 적용해 취급량이 적은 중소기업은 정기검사 등 규제를 면제받거나 완화된 규제를 적용받게 됐다.
반도체·디스플레이에 대한 환경규제도 대폭 개선해 2030년까지 7조70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설비 내부에 안전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화관법에 따라 생산장비 외부에 안전시설을 다시 설치해야 했으나 중복 투자를 줄일 수 있도록 조치하고, 반도체·디스플레이에 대한 불소 배출 기준을 합리화해 8000억원의 운영비 절감을 추진한다. 산업폐수도 재이용을 확대하기 위해 관련기업 사이의 재이용을 허용한다.
환경영향평가 역시 사업규모에 따라 평가절차를 다르게 하고, 환경 영향이 크지 않으면 평가 협의를 면제하는 간이평가를 도입한다. 소규모 환경영향 평가는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통한 평가로 대체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소규모 개발 사업에 대한 평가는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한다.
화평법과 화관법의 독소조항인 킬러 규제를 대폭 풀겠다는 것으로,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한마디 했다고 킬러 규제가 한꺼번에 없어질지는 의문이다. 킬러 규제의 원인을 해소하는 작업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2023년이 가기 전에 화평법과 화관법을 개정해 화학물질 신고 부담을 유럽연합 수준으로 덜어주고 반도체·디스플레이의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기준을 국제기준에 맞추어 완화하며, 환경영향 평가를 사업규모에 따라 다르게 적용한다면 퇴직 공무원들의 밥벌이가 날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평법과 화관법의 규제를 선진국보다 더 철저히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규 화학물질 등록기준을 0.1톤으로 낮춘 것은 모두가 반대했고 적용과정에서 중소기업 대표들을 모두 범법자로 만들 수 있다며 개선을 요구했으나 먹혀들지 않았다.
시험설비 운용이나 컨설팅을 통해 퇴직 공무원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하려는 의도가 확실했으나 막지 못했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의 이념적 도착에 따른 결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막지 못했다.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은 채 법 규정 몇가지를 개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환경부 공무원들은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5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다른 여러 가지 규제를 신설해 정책 의지를 희석하는 작업에 골몰하고 있을 것이다.
환경부 주변에 기생하는 킬러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먼저 실행해야 한다.
화학저널 2023/08/28
<화학저널 2023년 8월 2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