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화학산업은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
유럽은 화학제품 매출액 기준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글로벌 점유율이 30%에 인접한 수준을 유지했으나 최근 거의 반토막이 날 정도로 급격히 축소됐고, 특히 에틸렌(Ethylene)을 중심으로 한 석유화학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고공행진한 이후로 미국, 중동산에 밀리고 있다.
전체 화학산업 매출 가운데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출 역시 무역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수출초과액이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유럽 화학산업협회(CEFIC)는 최근 각국 정부가 탈탄소화에 주력하며 화학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는 판단 아래 유럽위원회에 화학산업 경쟁력 강화와 탈탄소화를 함께 달성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화학 중심 수익 침체 가속화
유럽연합(EU)은 석유화학 침체가 심화되며 글로벌 화학산업에서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
2022년에는 글로벌 전체 화학제품 매출액이 5조4340억유로에 달한 가운데 EU는 매출액 7600억유로에 점유율이 14%에 불과했고 2002년 2
7%에 비해 절반 수준까지 하락한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중국은 매출액 2조3900억유로에 점유율 44%를 기록하며 EU를 제치고 글로벌 1위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U는 전체 화학산업 매출의 3분의 1 상당을 수출에서 얻고 장기간에 걸쳐 수출초과액이 연평균 400억유로 수준을 유지했으나 2022년에는 생활화학제품, 특수화학제품은 수출초과액을 유지한 반면 석유화학, 기초무기화학제품은 수출초과 폭이 축소됨에 따라 전체 수출초과액이 25억유로에 그쳤다.
특히, 석유화학은 유럽 전체 화학산업 매출액의 3분의 1을 차지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출초과 폭 축소가 불가피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에틸렌 톤당 코스트가 1300달러 이상으로 급등하며 북미의 2배, 중동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2022년 화학제품 생산량은 에너지 가격 급등,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 영향으로 석유화학, 범용수지, 기초무기화학제품 수요가 감소하면서 전년대비 6.3% 감소했으며 2023년에도 7.6%의 감소율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CEFIC은 최근의 인플레이션과 구매력 저하, 복잡하면서 코스트가 높은 유럽 각국의 규제 등이 2023년 화학제품 생산량 감소를 견인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24년부터 인플레이션이 개선되고 구매력이 회복되며 화학제품 수요가 일부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고금리가 건설부문을 압박하고 자동차 생산 부진이 여전해 회복률이 1% 미만에 그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주요 화학제품 생산국인 독일의 성장 둔화가 심각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독일 화학공업협회(VCI)에 따르면, 독일은 2023년 화학제품 생산량이 11%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며 2024년에도 크게 늘어나는 일 없이 2023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화학 메이저들은 최근 적자 사업에서 철수하거나 인원 감축, 해외투자 선회 등으로 수익성 악화에 대응하고 있으며 코베스트로(Covestro) 등 일부는 공장 폐쇄까지 검토하고 있다.
EU 그린딜 정책 두고 내부 마찰 우려…
화학을 포함해 유럽 제조업은 경제 성장과 환경이라는 딜레마로 고전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EU는 집행위원회를 통해 지구온난화와 환경파괴 문제 해결을 위한 그린딜(Green Deal)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내부에서조차 환경규제와 경제 성장이라는 2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의견이 확대되고 있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23년 5월 산업 부흥에 관한 연설에서 “EU가 새로운 환경규제를 추가하는 것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며 “EU는 이미 이웃국가들보다 많은 환경규제를 통과시켰고 규정이라면 미국, 중국 또는 세계의 다른 강대국보다 앞서 있어 이미 통과시킨 규정을 이행하는데 그쳐야 하며 규정을 새롭게 변경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CEFIC는 2023년 7월 유럽위원회에 2050년 탄소중립 실현 목표를 공유하면서도 화학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공약을 공개했다.
풍부한 재생에너지, 원자재 자급을 우선하며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확보하고 국경을 넘는 전력망 확대, 자원국과 파트너십 체결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우선 수입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CR(Chemical Recycle) 등 이용가능 기술의 스케일업, 이산화탄소(CO2) 포집·활용(CCU), 바이오 베이스 원료 사용을 장려하는 포괄적 순환형 탄소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재생가능 탄소, 순환형 탄소 원료 시장을 육성해야 하고 저탄소제품 수요 자극, 국가 보조금 신청제도 간소화, 유럽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경쟁력 있는 세제 확립을 통해 유럽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지속가능 화학제품 생산은 화학기업의 지속가능성 강화에만 효과를 내야 하고 지속가능성을 저해하거나 생존을 위협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해 각종 환경 정책으로 화학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으로 산업 경쟁력 강화
유럽 화학산업은 탄소중립과 산업 성장을 함께 달성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CEFIC는 제조공정을 개선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 및 기술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유럽 화학산업의 지속가능성을 강화하기 위한 디지털 기술 연구를 추진하고 있고, EU 집행위원회는 2024년 1월 화학산업의 친환경‧디지털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집행위원회가 처음으로 공개한 이니셔티브로 주로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설계(SSbD: Safe & Sustainable by Design) 프레임워크, 화석연료 대체, 수소 등 친환경 기술, 전기 및 디지털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집행위원회는 2023년 7월 EU의 화학산업을 혁신하기 위한 이니셔티브를 요청했으며 유럽 주요기업, 무역협회, 중소기업 등 이해관계자은 80개 이상의 이니셔티브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향료협회(IFRA)는 Green Compass Tool 개발을 통해 향료 및 원료 생산기업의 친환경 화학 환경을 지원하자고 제안했으며, 바스프(BASF)는 화학제품이 조직 내부는 물론 소비자, 사회의 요구사항을 충족하는지 여부에 관한 지속가능성 평가 방법 TripleS(Sustainable Solution Steering)를 제안했다.
유럽의 연구기관, 무역협회, 대학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로 구성된 IRISS 프로젝트는 유럽 및 세계의 SSbD 커뮤니티를 연결하고 SSbD 실현을 위한 로드맵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벨기에, 클러스터 체제 활용해 친환경 전략 가속화
벨기에는 유럽 화학산업의 탈탄소 전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KOTRA에 따르면, 벨기에는 화학산업 매출이 2020년 기준 608억유로로 전체 제조업의 25%를 차지하며 전체 화학제품 생산량 중 80%를 수출할 뿐만 아니라 전체 수출에서 화학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35%에 달하고 있으나 최근 경쟁력 약화가 심각한 상태이다.
그러나 EU의 탈탄소 전략에 맞추어 다른 유럽 국가보다 이른 시기부터 지속가능 산업 육성에 나섰으며 앤트워프(Antwerp) 석유화학 클러스터의 항만 기능을 활용해 청정수소 및 바이오 연료 공급을 확대하는 등 중장기 경쟁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벨기에 화학기업과 EU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혁신 클러스터는 일반적인 산업단지보다 더 진화된 개념으로, 생산기업과 연구개발 분야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공급자 또는 수요자, 나아가 경쟁자와의 상호 협조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벨기에 정부는 산학협력, 투자 유치 및 지원을 강화하고 있으며 2020년 화학산업 투자액이 24억유로로 전체 산업 투자액 중 32%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친환경 기술·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세제 혜택이 이어지면서 환경오염물질을 감소시키는 촉매제 및 플래스틱 규제에 따른 대체물질 개발이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왈론(Waloneye) 지방정부가 지속가능한 화학산업을 포함해 분야별 산업 정책에 중점을 둔 장기계획으로 자금 지원, 세재 해택을 통한 연구개발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Horizon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윤화 책임기자: kyh@chemlocus.com)
표, 그래프: <화학제품 생산 증가율(2012-2022), 글로벌 화학제품 판매액 비교(2022), 유럽의 화학제품 판매 점유율(국가별), 유럽의 화학제품 판매비중, EU의 화학산업 생산 점유율, EU의 화학제품 수출입동향, EU의 화학제품 수출입(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