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은 화학산업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유럽 화학산업협회(CEFIC)에 따르면, 2023년 EU 회원 27개국은 화학제품 생산량 및 수출량, 수입량 모두 전년대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코스트 상승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수출량 감소가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며, 특히 유럽 화학산업의 중심지인 독일의 부진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화학기업은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으며 산유국과 연계해 리스크를 줄이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석유화학‧폴리머 중심 생산량 급감
EU는 2023년 화학제품 생산량이 8% 줄어 최근 5년 사이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석유화학제품(모노머)과 폴리머 생산량이 각각 10.6%, 10.5% 줄어 가장 큰 감소 폭을 나타냈으며 기초화학제품은 5.2%, 특수화학제품은 6.3%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생활화학제품 생산량은 3.2% 증가했다.
2023년 12월에는 화학제품 생산량이 전년동월대비 1.7% 증가했으나 4분기 전체 화학 관련 설비 가동률이 74.7%로 급락했고 전반적으로는 2020년 초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 상황과 비슷한 수준으로 부진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화학산업 매출액은 2023년 6610억유로로 전년대비 14.9% 감소했으며 2021년에 비해서는 증가했으나 증가 폭이 소폭에 그쳤다.
수출액은 1-11월 2080억유로로 전년동기대비 160억유로 감소했다. 러시아 수출이 27.0% 급감한 영향이 컸으나 브라질과 미국도 각각 22.0%, 17.0% 급감했고 중국 수출 역시 11.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액 또한 1760억유로로 460억유로 감소했다. 러시아산 수입액이 63.0% 격감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산이 42%, 튀르키예(터키)산 역시 24.0% 감소한데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
바스프, 독일 본사에서 대규모 구조조정
유럽 화학산업 침체는 주요 메이저 영업실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바스프(BASF)는 2023년 매출이 689억유로로 21.0%, 특별항목 공제 전 EBITDA(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는 76억유로로 29.0% 급감했다.
원료가격이 하락하며 거의 모든 사업부에서 판매가격을 낮추었을 뿐만 아니라 수요 감소로 판매량이 급감한 결과로 파악되고 있다.
화학 사업은 EBITDA가 감소했고 판매량이 급감했으며 지분법 적용 자회사 수익이 악화되는 등 침체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재 사업 역시 PA(Polyamide)와 암모니아(Ammonia) 부진이 심화돼 전체 수익 악화를 막지 못했다.
바스프는 2024년 2월 최근의 수익성 악화에 대응해 본사인 독일 루트비히스하펜(Ludwigshafen) 사업장에서 대규모 코스트 감축을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루트비히스하펜 사업장은 2015년 기준 바스프 전체 매출 중 3분의 1이 발생하는 주요 생산기지이나 2022년과 2023년 연속으로 적자를 냄에 따라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다른 사업장에 비해 천연가스를 대량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최근 에너지 코스트 상승으로 수익 악화를 피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했으며 수입비중이 큰 독일이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바스프는 2022년에도 코스트 감축 프로그램을 시작해 2026년까지 루트비히스하펜을 중심으로 유럽 내 비제조 부문에서 7억유로, 유럽 외 사업장과 디지털 서비스 부문에서 2억유로의 코스트 감축을 달성한 바 있다.
루트비히스하펜에서는 카프로락탐(Caprolactam)과 TDI(Toluene Diisocyanate) 생산에서 철수함으로써 2억유로를 감축했으며 2023년까지 총 6억유로의 코스트 감축 효과를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공개한 코스트 감축안을 통해 앞으로 2026년 말까지 인원 감축까지 단행해 추가로 10억유로를 감축한다고 밝혔으며 여름 혹은 가을쯤 구체적인 계획안을 공개할 방침이다.
에보닉 2000명 감축에 코베스트로 매각설까지…
에보닉(Evonik)은 2023년 매출이 153억유로로 17.0%, 조정 후 EBITDA는 17억유로로 33.0% 급감했다. 판매량이 8.0% 감소하고 판매가격이 3.0% 하락한 영향으로 파악된다.
에보닉은 2023년 10월 경영재편을 추진하기 위한 에보닉 테일러메이드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1단계로 수개월 동안 다양한 제조 및 프로세스 분석을 시행했다.
앞으로 2026년까지 1단계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조직체제를 구축할 예정이며 프로그램 종료 후 연간 4억유로의 코스트 감축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감축액 중 80% 정도는 인원 감축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사업 활동을 직접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관리 업무를 폐지하며 주요 업무는 신규 조직에 일관성을 갖춘 형태로 재편할 방침이다.
이사회 이하의 계층 수를 최대 6단계까지 줄이고 평가‧승인 절차를 가속화하며 관리자 직속 부하는 1-4명에서 평균 7명까지 늘릴 예정이다.
전반적인 슬림화 및 신속화를 도모하고 있으며 관리직을 포함해 글로벌 사업장에서 최대 2000명의 인원을 감원할 계획인 가운데 1500여명은 독일 사업장에서 줄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베스트로(Covestro)는 2023년 매출이 144억유로로 20.0%, 조정 후 EBITDA는 11억유로로 33.0% 급감했다.
공급과잉이 심화되면서 원료가격이 급락해 판매가격을 11.0% 인하했고 판매량이 7.0% 줄어든 영향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부바디(Abu Dhabi) 국영 석유기업 ADNOC은 최근 코베스트로 인수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앤트워프 선언, 제조업 경쟁력부터 챙겨라!
화학, 에너지, 철강 등 유럽의 기반산업 대표들은 최근 유럽 산업협정을 위한 앤트워프(Antwerp) 선언을 통해 EU에 경쟁력 강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화학산업이 주도하는 움직임으로 바스프의 벨기에 앤트워프 사업장에서 유럽 산업 회의를 진행했으며 벨기에의 알렉산더르 더크로 총리와 유럽연합 집행기관인 유럽위원회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에게 선언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언문은 EU가 목표로 설정한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전력 생산량을 2배 확대할 필요가 있고 산업계 투자를 과거 10년에 비해 6배 늘려야 하는 상황이나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대규모 설비투자 유치에 나서고 중국이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해 유럽 수출을 늘리며 유럽 제조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럽은 해외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기초산업과 에너지 집약형 산업이 집중돼 산업별 맞춤 정책 없이는 결국 기존 주요 산업인 화학 분야에서 해외에 심각한 수준으로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EU는 유럽의회 선거와 유럽위원회 교체가 예정돼 있어 선언문은 차기 유럽의회의 유럽위원회 소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업 대표들은 10개 항목으로 요청사항을 적었으며 산업 경쟁력 강화를 앞으로 5년 동안 우선 사항으로 고려할 것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프로젝트에 강력한 지원을 요구했다.
유럽이 전략적 파트너십 및 인프라 강화를 통해 풍부하면서 저가의 저탄소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지역이 돼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원료 자급률을 확보하고 지속가능제품 수요를 육성해 이노베이션을 확대할 필요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EU의 분단을 막으면서 단일시장으로서 이점을 이끌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언에는 화학, 제약, 제지, 철강, 광업, 알루미늄, 유리, 아연, 금속, 섬유, 정유, 시멘트, 석탄, 비료, 세라믹, 산업용 가스, 바이오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대표가 이름을 올렸다.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