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학산업은 2019년 큰 홍역을 치렀다.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를 이유로 반도체·디스플레이용 3개 화학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정부가 곤란이 처하고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으나 사실 화학기업으로서는 창피하기 그지없는 사태였다.
문제는 국내 화학기업 중 누구도 스스로 창피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출액 10조원이 넘는 LG화학도, 롯데케미칼도, 정밀화학기업으로 널리 알려진 OCI도, KCC도 고순도 화학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일본산 수입에 의존하는 사태를 남의 일 인양 쳐다보기에 급급했다.
스스로가 왜 차별화된 특수화학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어떠한 일정으로 연구개발을 강화해 어느 시점에 생산할 수 있는지 의견을 천명하거나 사과하는 화학기업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일본 아베 내각총리와 문재인 대통령의 기 싸움이겠거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로 서두를 것 없다는 관망적 자세로 일관했고, 일부에서는 일본은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없으니 머지않아 한국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자세 견지에 그쳤다.
경영진은 물론이고 생산 현장이나 경영기획 부서, 연구개발 현장에서도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올바른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대부분의 화학기업 관계자들은 글로벌 분업 추세에 맞추어 한국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2차전지를 잘 생산하고 일본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지, 자동차용 소재 및 장비를 공급하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고기능성 전자, 전지,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모든 소재와 부품, 장비를 국산화해 자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일정부분 국제분업을 통해 상호 협력하면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효율성 측면에서 훨씬 유리한 측면이 있다. 모든 것을 독식하는 것은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도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전자, 전지, 자동차 기술이 진화하고 발전하는 단계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개발하며 무엇을 수입으로 충당할 것인지 설계한 후 분업체계를 갖추는 것과 무작정 수입에 의존한 나머지 상대국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보복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일본이 계획적이고 체계적이라면 한국은 정반대의 측면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일본은 근면하고 근검정신이 투철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을 잃지 않는 반면, 한국은 스스로 내세울 것이 별로 없음에도 잘난 척하고 최근에는 주제를 잃은 나머지 근면·근검 자세마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먼 옛날의 추억에 그치고 있다. 밥해 먹을 쌀이 없으면 라면 끓여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젊은이들의 항변(?)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연구개발 현장에서조차 여행 다니고 골프 치고 즐길 만큼 즐길 수 있어야 노벨화학상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딱히, 화학산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국민 전체가 정신적 대개혁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한국은 머지않아 선진국이 아니라 다시 필리핀, 아르헨티나로 되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한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되씹어볼 필요가 있듯이, 화학산업도 오늘날 왜 이 지경인지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