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화학기업들이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사이 선제적 구조개혁에 나선 일본 화학기업들은 수익 악화 폭을 최소화하는데 성공해 주목된다.
일본 화학 메이저 10사의 2019년 영업이익은 총 1조5690억엔으로 전년대비 9.5% 감소에 그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있던 2009년에는 영업이익 총액이 4414억엔에 그쳤으나 10년만에 3.5배 확대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영업이익률도 2009년 4.0% 초반에서 2019년에는 10.0%대 후반으로 크게 상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석유화학 마진이 축소되고 자동차, 반도체 등 주요 전방산업 부진이 심화됐으나 지난 몇년 동안 추진해온 구조개혁을 통해 수익 창출능력을 제고했기 때문이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과거 10년 동안 범용화학제품에서 기능성 화학제품 중심으로 생산구조를 개선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구조개혁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구글(Google), 아마존(Amazon), 페이스북(Facebook), 애플(Apple) 등 GAFA로 대표되는 새로운 플랫포머들이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기존 소재·부재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도 큰 변혁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나날이 진화하는 디지털 기술과 그동안 축적해온 화학기술을 조합함으로써 완벽하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선제적 구조개혁 덕분에 수익 악화 “최소화”
일본 화학기업들은 2008년 후반 발생한 리먼 브라더스 사태 당시 자동차, 반도체, IT 등 다양한 산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불황이 찾아오면서 영업실적이 크게 악화된 경험이 있다.
미쓰이케미칼(Mitsui Chemicals), 도소(Tosoh), 미츠비시가스케미칼(Mitsubishi Gas Chemical) 등은 2008년 영업적자에 시달렸으며, 2009년에도 미쓰이케미칼과 쇼와덴코(Showa Denko)가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최근의 경기불황은 리먼 브라더스 사태만큼 영향력이 큰 것은 아니지만 세계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첨예한 무역분쟁을 벌이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각국의 경제가 모두 영향을 받음으로써 화학기업의 수익성 악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일본 화학기업들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호황을 누리면서 3년 연속 사상 최대의 영업실적을 갱신한 곳이 많았으나 2018년 하반기부터 상황이 급변해 2019년에는 대부분 영업이익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역풍이 불어와도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로 개혁한 덕분에 영업적자까지 기록한 곳은 없고 감소 폭도 10% 미만에 그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능성 화학제품으로 전환하는 작업은 2008년 이전부터 시작됐으나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계기로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스미토모케미칼(Sumitomo Chemical)은 2003년 미쓰이케미칼과의 통합에 실패한 후 석유화학과 생명과학의 뒤를 잇는 새로운 사업으로 정보전자화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진출한 지 20년이 지나지 않아 매출액이 2018년 기준 4000억엔으로 7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에츠케미칼(Shin-Etsu Chemical)은 2019년에도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반도체용 실리콘(Silicone)은 예전부터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시황에 큰 영향을 받는 품목이기 때문에 최근 반도체 기기 부진으로 타격이 예상됐으나 오히려 영업이익 증가를 견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물인터넷(IoT)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를 앞두고 반도체산업이 호황을 누렸을 때 장기계약을 늘린 영향으로 시황이 악화돼도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세키스이케미칼(Sekisui Chemical)은 2019년 전체 사업에서 영업이익이 최고치를 갱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기능성 플래스틱은 전자, 자동차를 주력 시장으로 설정해 최대 수익창출원으로 성장했다. 원래는 전자분야에서 액정용 공급비중이 가장 높았으나 최근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부진이 이어짐에 따라 반도체 등 비액정용 비중을 50%로 확대함으로써 수익 악화를 방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자화학, 중국·한국 영향 확대로 “고전”
전자·디스플레이·반도체용 화학 분야는 수익성 악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2019년 여름부터 본격화된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큰 영향을 미쳤고 미국-중국 무역마찰에 따른 경기둔화에도 타격을 받았다.
반도체 소재 생산기업들은 반도체 시장 둔화로 고전했다.
그러나 다른 용도 없이 차세대 반도체 제조에만 투입되는 파인케미칼 소재들은 경쟁력이 더욱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앞으로는 반도체 시황이 개선되고 2020년 말부터 D램 재고 소진이 이루어지며 메모리 시황이 호전되면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 분야에서는 투자가 되살아나고 있다.
우선, 차세대 EUV(극자외선) 프로세스에 대한 대응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스마트폰이나 데이터센터에 투입이 가능한 회로선폭 7나노미터 이하의 첨단기기용 EUV 소재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JSR, TOK, 스미토모케미칼 등이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후지필름(Fuji Film)도 소재 자회사를 통해 독자적인 레지스트를 개발함으로써 5나노미터 이하 세대를 공략하고 있다.
반도체 연마공정에서는 Mitsui Chemicals Tocello가 Icros Tape 사업에서 호조를 누리며 2019년 가을 신규 가동한 타이완 공장의 조기 증설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cros Tape는 반도체 제조 후공정에서 회로를 그리는 실리콘 웨이퍼 뒷면을 연마할 때 회로면에 부착해 오염물 부착을 방지하거나 균열의 원인이 되는 충격을 흡수하는 용도로 채용되고 있다.
봉지재 분야에서는 Sumitomo Bakelite가 시장점유율 40%를 목표로 자동차 탑재용 수요 개척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디스플레이·배터리는 국내기업이 주도
디스플레이 소재 생산기업들은 FPD(Flat Panel Display) 생산이 중국으로 집중되면서 LCD(Liquid Crystal Display) 패널을 둘러싼 저가경쟁이 펼쳐지며 수익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LCD는 더이상 예전 수준의 수익성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저가경쟁을 이끌었던 중국조차 공급과잉에 가동률 조정에 나설 정도로 시장 상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기업 중심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 전환의 영향으로 LCD 가격이 일시적으로 되살아나기도 했으나 타이완기업들만 호조를 누렸고 일본은 JDI(Japan Display)가 채무악화 상황에 놓이며 경쟁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있다.
다만, OLED도 중국이 양산을 본격화하면 단가가 하락하면서 수익성이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삼성디스플레이는 퀀텀닷(양자도트) OLED인 QLED(Quantum Dot Light Emitting Diode) 공급에, 타이완의 AUO는 마이크로 LED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기업과 차별화를 도모할 수 있는 신제품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일본기업들도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분야는 친환경 자동차 시장이 확대되며 동반성장하고 있으나 중국기업들이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대하고 있고 국내기업들도 굳건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어 일본기업들에게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JXTG에너지가 비야디(BYD) 일본법인과 전기버스용 축전지 분야에서 협업함으로써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대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앞으로는 경쟁보다는 협업 중심의 구도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쇼와덴코, 적극적 M&A로 돌풍 일으킨다!
일본 화학 메이저들은 그동안 구조개혁을 위해 미루었던 투자를 적극화하고 있다.
연구개발(R&D) 강화 뿐만 아니라 인수합병(M&A)을 가속화할 예정이며 독창적인 기술이나 생산제품 확보, 신제품‧신기술 개발속도 가속화를 위해 사업규모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쇼와덴코는 히타치가 히타치케미칼(Hitachi Chemical)의 지분 51.2%를 매각한다고 발표한 이후 2019년 2월부터 인수를 위한 검토작업에 돌입했고 7월 초 1차 입찰 이후 2차 입찰을 거쳐 11월 중순 인수협상권을 확보했으며 최종적으로 2020년 2월을 목표로 주식공개매수(TOB)를 실시하고 3월 말 모든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2023년 완전한 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시장 관계자들은 시가총액이 4500억엔 수준인 쇼와덴코가 8500억엔대인 히타치케미칼을 인수할 계획이라고 밝히자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으나 쇼와덴코는 미래사회로 급변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투자였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특히 쇼와덴코가 그동안 갖추지 못했던 생명과학 사업을 히타치케미칼이 신성장동력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던 만큼 성장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쇼와덴코는 고수익 사업을 다수 확보함에 따라 단독으로도 10년, 20년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히타치케미칼 인수가 반드시 필요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Nippon Shokubai(NSC)와 산요케미칼(Sanyo Chemical)도 2019년 5월 경영통합 계획을 공개했다.
NSC와 산요케미칼은 2020년 10월 통합기업 신포믹스(Synfomix)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소재 밸류체인을 보유한 NSC와 풍부한 기능성 화학제품을 갖춘 가운데 솔루션 비즈니스를 추진하고 있는 산요케미칼의 융합으로 시너지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NSC는 규모화 없이는 앞으로 10년 후 존속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산요케미칼과의 통합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기술·품질을 개선 및 강화함으로써 강점을 갖춘 분야에서는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해왔으나 상장기업 수만 200사가 넘을 정도로 군웅할거 상황에 놓여 있다.
NSC와 산요케미칼의 경영통합이나 쇼와덴코의 히타치케미칼 인수는 앞으로 일본 화학시장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생명과학과 강점 분야 투자 계속…
일본 화학 대기업들은 생명과학 분야에 대거 투자하고 있다.
스미토모케미칼은 2019년 9월 Sumitomo Dainippon Pharma를 통해 영국 Roivant Sciences 지분을 10% 이상 확보했으며 자회사 5사의 인수를 포함한 전략적 연계에 총 3200억엔을 투자할 계획이다.
11월에는 미츠비시케미칼홀딩스(Mitsubishi Chemical Holdings)가 Mitsubishi Tanabe Pharma를 완전 자회사화하기 위해 4918억엔에 달하는 주식공개매수를 실시했다.
아사히카세이(Asahi Kasei)는 면역억제제를 개발하고 있는 미국 제약기업 Veloxis Pharmaceuticals를 약 1430억엔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화학 메이저들은 앞으로도 중점사업으로 분류하고 있는 생명과학 분야에 적극 투자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도록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화학기업의 M&A 트렌드는 대기업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에어워터(Air Water)는 6월 산업가스 메이저인 프렉스에어(Praxair)의 그룹기업인 Praxair India로부터 인디아 동부 산업가스 사업 일부를 인수했다.
또 10월 말에는 일본 초산나트륨 1위 생산기업인 Daito Chemical을 자회사화해 화학 관련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2021년까지 매출액을 1조엔으로 확대하겠다는 3개년 중기 경영계획에서 설정한 전략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아이카(Aica)는 멜라민 화장합판 분야 아시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기 위해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5월 베트남에서 현지 생산을 시작했고 11월에는 멜라민 화장합판 판매 메이저인 베트남 대기업 그룹의 사업기업 8사의 사업 인수를 발표했다.
또 미국 멜라민 화장합판 메이저의 아시아 사업기업 4사를 인수하는 등 적극적인 M&A에 나서 중점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다져나가고 있다.
2019년에는 유망시장과 첨단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M&A, 스타트업에 대한 출자도 잇따랐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메이저와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속한 결단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강윤화 선임기자: kyh@cheml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