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 타이완의 TSMC를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 정부가 세금 감면을 약속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니, 르네사스를 중심으로 협업체제를 구축해 미래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구상을 착실히 실천해가고 있다. 메모리에 국한돼 있으나 한국에 패한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반도체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고 있다.
특히, 일본 화학기업들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반도체 소재‧약품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부흥과 한국-일본 무역마찰을 기화로 기술‧설비 투자를 한국에서 중국‧타이완으로 이원화 또는 삼원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버티고 있어 한국을 외면할 수는 없으나 타이완‧중국으로 다원화시켜 위험요인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과의 무역마찰로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고, 또 피부로 체감했으니 위험을 회피하면서 안정적 성장을 도모하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고 타이완도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으나 한국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결국, 반도체 관련 투자를 일본, 한국 중심에서 미국, 한국, 중국, 타이완으로 다원화하면서 일본 자체적으로 반도체산업을 부흥시킴으로써 위험요인을 분산함은 물론 한국에 빼앗겼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소재‧장비 국산화를 외칠 뿐 뚜렷한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장기적 비전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말년으로 접어들었으니 더 이상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는 하나…
그래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 삼성과 SK가 국내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미국 출장에서 돌아온 이재용 부회장에게 눈길이 쓸리고 있다.
미국에 20조원을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프로젝트는 이미 발표했고, 다음으로 메모리 생산을 더욱 고도화시키면서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에 뛰어드는 순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삼성이나 SK는 자동차 반도체 시장점유율이 1-2%에 머물러 존재감이 없으며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언, 일본 르네사스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가 자율주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르면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고 중앙제어 칩이 부상하고 있다.
NXP·인피니언·르네사스가 MCU를 공급하면 ECU를 구성하고 ECU 70-100개가 자동차에 탑재되고 있으나 앞으로는 MCU, ECU가 통합된 소프트웨어가 자동차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삼성과 SK에게 기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GM은 이미 퀄컴·STM·TSMC·르네사스·NXP·인피니언·온세미 등과 협력해 3개 MCU를 개발함으로써 MCU 투입 개수를 95% 감축할 것이라고 한다. 통합 ECU 전용의 반도체(SoC)와 자동차용 소프트웨어(OS)가 하나의 세트로 구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본의 반도체산업 부흥전략에 맞서 한국이 반도체 강국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동차용 반도체를 집중 육성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메모리 편중에서 벗어나면서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도 진입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반도체‧디스플레이용 소재‧약품을 국산화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도 요구된다.
말로는 반도체 강국이라고 큰소리치고 있으나 실속은 일본이 챙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