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은 수출입이 자유화돼 있기 때문에 독점적 이익을 추구하기 어렵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들으면 두 손을 들고 반가워할 것이다. 화학제품은 수입관세가 비교적 낮아 수출이나 수입이 자유롭기 때문에 독점이나 과점이 거의 불가능하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잘 제어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할까?
범용 그레이드가 중심이고 수출입에 제한이 없으며 관세 또는 낮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수백만 가지에 이르는 화학제품을 모두 생산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경제성 측면에서도 매우 뒤떨어져 주력제품을 제외하고는 수입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구가 15억명에 이르고 시장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중국도 모든 화학제품을 직접 생산하지는 않고 있으며 생산이 가능해도 경제성이 떨어지는 화학제품은 수입으로 해결하고 있다. 물론, 사회주의적 색채가 남아 있기 때문에 경제적 효율성을 도외시한 채 생산을 강행하거나 경쟁하는 모순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화학제품을 사용하는 수요기업들은 화학제품이야말로 독과점의 천국이고 경제민주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고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석유화학은 생산규모가 거대하고 생산기업이 많아도 마음대로 거래할 수 없고 가격도 국제가격에 비해 항상 높다고 아우성이다.
왜 그러할까?
거래단위가 워낙 크다보니 중소기업들은 상대하기가 버겁고 수입도 운송비용을 고려하면 5만-6만톤은 넘어야 하나 웬만한 중소기업은 연간 사용량을 초과해 수출입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삼성과 현대가 석유화학 시장에 참여한 1991년 이전에는 플래스틱 가공기업들이 합성수지를 배정받기 위해 줄을 서야 했고 중소기업 사장도 석유화학기업 대리 앞에서 머리를 조아려야만 했다. 수입이 쉽지 않고 수입가격이 내수가격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제품 생산량의 60-70%를 수출하고 있는 최근에는 어떠할까?
1994년 불법적으로 실행한 합성수지 가격 및 수급 카르텔의 후유증 때문인지 거래선을 바꾸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고, 수출이 아니면 죽음이라고 외치면서도 내수가격이 수출가격보다 상시적으로 높으며, 거래가격 결정권 역시 일방적이다. 폴리머가 아닌 모노머는 더욱 그렇다.
경쟁체제를 도입한답시고 1980년대 후반 석유화학 투자 자유화 정책을 시행했지만 석유화학기업들이 거대화되면서 경쟁은 외면한 채 독과점화를 강화하고, 카르텔을 묵인한 영향으로 거래 중소기업을 하청화했으며, 고위공무원과의 유착관계가 더욱 심화되면서 안하무인의 지경으로 변모한지 오래됐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8월22일 “경제민주화를 하려는 제도적 장치가 아무리 완벽해도 실천하려는 정치지도자의 의지와 신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밝혔듯이 부자들의 탐욕을 제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고 고위공무원과 재벌의 유착관계가 도를 넘어섰기 때문일 것이다.
김종인 대표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경제사회구조가 엄청나게 왜곡됐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면서 “빈부격차가 심화하고 양극화 현상이 뚜렷한 현상을 어느 정도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이 지속발전할 수 있겠느냐”고 회의를 나타냈다.
독일 비스마르크 재상처럼 자본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를 포함토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처럼 독과점체제가 불가능하도록 하는 경제사회적 변혁이 요구된다.
석유화학기업들이 거대화되면서 경제민주화를 외면하고 공룡화된다면 결국에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