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의 가격카르텔 의혹을 조사하고 있는 모양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이 4월18일 화섬원료인 TPA 생산기업인 삼성석유화학, 삼남석유화학, KP케미칼, 태광산업 등 4사를 방문해 관련조사를 벌인데 이어 4월19일에는 호남석유화학, 대한유화, 대림산업, 삼성토탈 등을, 20일에는 LG화학, 석유화학공업협회를 잇따라 방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방문일정으로 보아 석유화학제품 가격담합 조사대상이 화섬원료인 TPA와 MEG는 물론 합성수지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석유화학제품 전반에 걸친 가격담합 조사는 일부의 지적처럼 매우 이례적이나, 국제유가 폭등을 기화로 석유화학제품 가격을 무작정 인상함으로써 Polyester 및 플래스틱 가공기업들이 무더기로 쓰러져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당연한 일이다. 석유화학기업들이 국제가격을 반영해 국내가격을 변동시킨 것에 불과했는데 무슨 가격카르텔이냐고 항변하고 있다고 들리나,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은 공정거래위원회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제조원가가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고 가격인상도 불가피하나 가격 및 수급 카르텔을 행하지 않고서는 동시다발적인 가격인상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1994년 합성수지 가격 및 수급 카르텔을 공식화한 이례 장기간에 걸쳐 합성수지 시장을 인위적으로 조작해왔고, 가격을 동시에 또는 시차를 두고 인상하는 것은 물론 거래처를 지정하고 반발하는 거래처에는 다른 석유화학기업들이 납품하지 못하도록 하는 악의적인 상거래도 서슴치 않아왔다. 1996년 합성수지 가격 및 수급 카르텔 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 척결하지 못한 것이 근원으로, 석유화학기업들의 가격카르텔 행위 자체를 적발하고 사법처리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당시 누가 카르텔을 비공식적으로 인정토록 유도했는가 하는 점과 또 문제가 불거졌을 때 누가 형식적으로 조사하고 처리하도록 지시했는지를 밝히는 작업일 것이다. 합성수지 가격 및 수급 카르텔을 비공식적으로 인정토록 한 당사자는 뚜렷하게 부각된 인물이 없으나 YS 정권 초기시절로 미루어 보아 오세민 당시 위원장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개혁을 기치로 내건 YS 정권 차원의 작품일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합성수지 가격 및 수급 카르텔 문제가 불거졌을 때 형식적으로 조사토록 한 당사자는 YS 정권 말기에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한 김인호 중소기업연구원장으로 알고 있다. 4월22일 제일은행 매각을 통해 1조1800억원 가량의 차익을 올린 뉴브리지캐피탈에 대해 『합법적인 토대 위에서 투자를 통해 수익을 거두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면서 외국계 자본에 의한 국부유출 주장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장본인이다. 김인호 원장은 행시 4회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경제기획원 차관보, 철도청장, 공정거래위원장을 거쳐 IMF를 불러올 때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인물로 최근 요상한 언동으로 볼 때 카르텔 조사를 흐지부지하게 만든 당사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인호 원장은 4월22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뉴브리지캐피탈이 중소기업연구원에 기증한 1000만달러에 대해 『국내시장에 투자한 비용과 수익에 비하면 적지 않은 규모로 관련기관과 상의해 중소기업의 국제화와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책연구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석유화학 카르텔 조사를 막아 중소 플래스틱 가공기업들에게 치명타를 날리더니 이제 중소기업의 국제화와 경쟁력 제고를 위해 해외 투기펀드의 지원금을 사용하겠다고 하니 이보다 더 이상스러운 아이러니는 없을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고, 내부적으로도 부패한 자들을 척결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또다시 조사인력이나 시간을 핑계로 석유화학 카르텔 조사를 형식에 그친다면 영원히 씻지못할 상처로 다가올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화학저널 2005/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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