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환율을 놓고 말들이 많다.
달러당 원화환율 1100원이 붕괴됐기 때문으로, 5월 말 1200원에 근접한지 불과 3개월이 안 돼 크게 상승했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다만, 1100원이나 1200원이 적정한 것인지는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산업계는 대부분 1100원이 마지노선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GDP나 수출흑자를 고려하면 900-1000원 사이가 적정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시장의 흐름에 맡기고 인위적인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부에서는 국산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인위적인 개입을 통해서라도 원화가치 상승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자는 원화가치가 상승할 요인이 있는데도 당국이 개입하면 시장의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고, 후자는 시장의 왜곡을 통해서라도 국산의 경쟁력을 높여 수출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산업계를 중심으로 당국의 개입을 원하고 있고 불개입을 주장하는 논리는 극히 일부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시장의 흐름과는 반대로 기준금리를 인하함으로써 경기부양이라는 본래의 취지는 살리지 못한 채 가계부채 급증이라는 부작용만 초래했듯이 환율 개입도 비슷한 결과가 우려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전체적으로 수출 호조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산의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 차질이 우려된다는 산업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화가치 하락조치를 강행했으나 국내산업의 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결과적으로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져 오늘날 수출이 줄어드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원화가치 하락은 단기적으로 자동차, 전자, 철강, 석유화학 등 국내산업의 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져 수출을 늘릴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나, 장기적으로는 관련기업 및 산업이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경쟁력을 하락시킬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조치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국내기업들이 수출 경쟁력을 상실하고 전체적인 수출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 것도 근본적인 경쟁력 향상 노력은 소홀히 한 채 인위적인 환율조작을 통해 수출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했기 때문으로, 최근 원화가치 하락을 통해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서슴없이 늘어놓는 것은 뻔뻔스러움의 극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도 수출 부진이 계속되고 있고 국내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 나머지 고용부진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 환율조작에 나설 가능성이 감지되고 있다. 겉으로는 산업계의 주장을 수용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산업계가 환율조작을 요구하는 것을 내심 반기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되고 있다.
어느 정부이든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경쟁력 향상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단기적으로 성과를 올릴 수 있고 어렵지도 않은 환율조작의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하지만, 일본이 20년의 장기침체를 겪고서도 오늘날 경쟁력이 가장 뛰어난 국가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엔화환율은 달러당 120-130엔에서 70-80엔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평가절상됐지만 일본은 정부나 산업계 모두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판단하고 코스트를 감축하고 연구개발을 확대하는 등 처절한 노력을 기울였고 겉으로는 국가와 산업이 망해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전자, 자동차, 반도체 소재는 물론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부문에서도 글로벌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수도 없이 범해왔던 환율조작의 우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되고, 국내기업들도 원화한율 평가절하에 의지해 수출을 확대하겠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살길은 따로 있다.
<화학저널 2016년 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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