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하는 일을 보노라면 참으로 모순된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003년 중앙정부 부처의 예산 요구액이 그렇고, 기금운용이 그러하며, 공기업의 경영혁신이니 인력감축이니 하는 것들이 그렇다. 중앙정부 부처의 2003년도 일반회계 예산요구액이 무려 132조6000억원으로 2002년 예산 105조9000억원보다 25.2% 늘었다고 한다. 일반회계와 재정융자특별회계 순세입을 포함한 재정규모 기준 요구액은 140조5000억원으로 2002년 예산에 비해 25.5%(28조5000억원) 증가한 것이다. 중앙정부 부처의 예산요구 증가율은 재정규모 기준으로 2000년 24.0%에서 2001년 29.9%로 높아진 후 2002년 28.0%, 2003년 25.5%로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기획예산처는 균형재정을 달성하기 위해 과감한 세출 구조조정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혀 가을 최종 편성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2003년 경상성장률 7-9%를 감안해 120조원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편성할 방침이어서 대폭 삭감될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물론 삭감을 고려해 부풀려 요구하는 것이 관례라는 점은 누구나 다 인식하고 있다. 48개 기금의 2003년도 운용액도 163조3000억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2002년 146조8000억원에 비해 11.3% 증가한 것으로 국민연금기금 등 4개 연금성 기금의 운용규모 증가액 17조7000억원이 전체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경제·복지·사회 등 40개 사업성기금은 2002년에 비해 10.0% 증가한 51조원을, 중소기업진흥 및 산업기반기금과 국민주택기금 등 경제·산업·과학분야는 13.1% 증가한 37조9000억원을, 4개 계정성 기금은 공공자금관리금의 차입원금 상환 감소에 따라 9.8% 감소한 53조9000억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특히, 48개 기금은 자체수입을 통해 16.9% 증가한 60조3000억원을 조달하고 예산출연·융자 등 정부 내부수입을 통해 43조8000억원을 마련하는데, 예산출연이 2조9000억원 늘어난 5조9000억원에 달했다. 채권발행 등 민간차입을 통한 수입이 22.1% 줄었다고는 하나 차입도 34조원에 달하고 있다. 지출에서도 기금운영비가 1조3000억원으로 32.7% 증가하고, 차입금원리금 상환이 18.1% 감소했다고는 하나 26조5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 시행에 따른 설비투자자금 지원확대에 1조원을 증액하고 임대주택 건설 확대에 1조2000억원, 고용보험급여 증가에 1800억원, 직업능력개발 지원 확대에 900억원을 늘렸다고 하니 불요불급성 경비에 국민세금을 쏟아붙는 꼴이다. 한편에서는 2002년 들어 공기업과 정부산하기관 9곳에서 직원 421명이 감축된 것으로 집계됐다고 자랑이다. 1-4월 자산관리공사가 기금업무 등 업무량 축소에 따라 직원 300명을 줄이고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과 한국디자인진흥원도 조직개편으로 각각 28명과 23명을, 대한광업진흥공사는 조직개편으로 18명, 신용보증기금은 상위직급 위주의 명예퇴직으로 17명을 감축했고 무역협회와 과학기술정보연구원도 각각 10명씩 줄였다고 한다. 또 한국전력과 도로공사, 산업은행 등 14개 기관은 불필요한 자산 30건을 매각해 76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기금은 국민세금을 펑펑 쓰고, 공기업들에게는 경영혁신을 강요하니 정책의 말발이 먹혀들리 없고, 반발이 확대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해야 할 정도이다. 일반회계 예산요구 증가율만 보아도 그렇다. 중앙인사위원회가 399% 증액을 요구한 것을 비롯해 여성부 154%, 환경부 151%, 식품의약품안전청 133%로 나타나고 있다. 없애거나 통폐합 대상인 부처들이 엄청난 예산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국민과 경제계는 4년전 DJP 정부 출범 당시에 정부부처를 통폐합해 대폭 줄이고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했건만 모두가 허사였다. 쓸데없는 부처가 생기고 감축된 인력이 되살아나 오히려 간섭이 증가함으로써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18개 중앙부처에 19개 처·청,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등 특별위원회를 제외하고도 중앙부처가 무려 40개를 넘고 있다. 재정경제부의 경제업무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의 응용기술업무를 통합해 경제산업부로, 환경부와 산자부의 에너지업무를 통합해 환경자원부로, 교육인적자원부와 과기부의 기초과학업무를 통합해 교육과학부로, 보건복지부의 의약·식품 관련업무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이관하고 노동부, 여성부를 통합해 사회복지부로 개편해야 한다는 것은 선택권이 없는 명제이다. DJ가 실패한 원인이 아들들의 비리에 앞서 국가장래보다는 DJ 개인의 명예를 더 중요시했다는 점과 청와대 안방마님의 국정농단이 심각했다는 점이라고 볼 때 DJ정권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시급한 현안이다. <화학저널 2002/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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