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화학기업이라는 수식어로는 만족할 수 없는 LG화학이 ABS, PVC 등을 세계 <1등 상품>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한국 화학산업의 위상을 생각해서만이 아니라 한 기업이 자사 제품에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도약하려는 노력은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히 독려할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나치면 부족하니만 못하다는 말처럼 LG화학이 내세우는 <1등 주의>는 이미 식상한 느낌을 주고 있다. LG화학이 <1등 주의>를 언론홍보에 내세우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말 여종기 LG화학 기술연구원장이 대덕연구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2005년까지 세계 1등 제품이 될 수 있는 6개 제품을 개발중”이라고 밝힌 데서부터 시작된 듯싶다. 당시 여종기 원장은 차세대 반도체용 절연재로 사용될 유기 및 무기 고분자 소재를 개발하고 있으며, PDP용 형광체, 리튬 폴리머전지 등도 적극 육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002년 LG그룹의 신년사에서는 구본무 회장이 <1등 LG>를 무려 13차례나 언급하며 강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의 위상 때문인지, <1등>이라는 단어의 횟수 때문인지 이미 LG가 경쟁그룹을 의식해 <1등>을 내세우고 있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이어 2002년 5월 구본무 회장은 충북 청주에 위치한 LG화학 공장을 방문해 “정보전자소재 사업은 1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사업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으며, LG화학은 TFT-LCD용 편광판과 PDP용 편광판 등 디스플레이 소재 분야, 리튬이온전지와 리튬폴리머전지 등 2차전지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게 됐다. 2003년 들어 LG화학은 한해 매출목표를 발표하면서 또다시 <1등>을 내세웠다. 2차전지와 편광판 증설 등 정보전자소재 부문의 신규 및 증설을 대폭 지원하고 R&D에 1548억원을 투자해 수익성 위주의 내실경영과 1등 사업역량 확보에 주력한다는 <1등 계획>도 빠지지 않았다. 2003년 4월 LG생명과학이 Factive의 성과로 주목을 받을 때도 국내 최초로 FDA 신약승인을 획득했다는 찬사와 함께 “Factive와 같은 신약 개발은 <1등 LG>를 달성하기 위한 연구원들의 집요한 승부 근성의 개가이자 국내 바이오기술 연구의 신기원을 연 획기적 쾌거”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7월 LG그룹 임원 세미나에서는 “<1등 LG>에 걸맞게 LG 브랜드를 첨단과 고급 이미지를 추구하는 최고의 브랜드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목전의 이익 때문에 무분별한 사용으로 LG 가치에 흠을 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데 중론을 모았다. LG화학 역시 본사 및 지방사업장은 물론 협력기업, 대리점의 브랜드 사용현황을 파악하는 대대적인 브랜드 관리점검에 착수해 CI 오용, 도색 불량 및 훼손, LG 브랜드 무단도용 사용 등을 면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8월 초에는 LG화학이 중장기 사업목표를 제시하면서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전지, 편광판, PVC, ABS, 인조대리석, 표면자재 등 6개를 <1등 사업>으로 집중 육성한다고 재차 홍보에 열을 올렸다. 나아가 LG그룹이 <1등 인재 육성>과 <1등 조직문화 구축>을 내세우는 바람에 때마침 불거져 나온 삼성그룹의 “천재 육성론”과 감정적인 대결 양상마저 보였다. 8월 말에는 LG 계열사 최고경영자 회의를 열면서 그룹 차원에서 ABS와 PDP TV, 홈쇼핑 등 3개 사업을 글로벌 <1등 사업>으로 집중 육성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 때는 28일과 29일 국내 일간지 경제ㆍ산업면을 온통 LG그룹의 <1등 상품>과 LG화학의 "ABS 세계 1위"라는 문구가 장식해 <1등 LG>의 절정을 이루었다. 9월 말에는 계열분리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면서 <1등 LG>로의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서 화학, 전자, 통신사업 부분에 핵심역량을 집중한다고 설명했고, 10월 초부터는 해외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기업설명회에 나서며 또다시 <1등 제품>과 전략사업을 내세우고 있다. 이러다가는 LG화학이 세계 글로벌 화학기업으로 거듭나는 원년으로 목표하고 있는 2005년까지 계속 <1등 타령>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미 국내에서 명실공히 화학기업 1등으로 자리잡고 있는 LG화학이 자꾸 1등을 운운하는 것이 새삼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LG화학의 <1등 주의>는 LG그룹 전체의 모토에 발맞춘 것이고, 이를 통해 계열사 가치를 동시에 드높이는 효과도 발휘할 것이다. 허나 LG화학에 몸담고 있는 임직원에게 분발하는 힘이 되기는커녕 “1등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강박관념과 지나친 경쟁의식만 심어주지 않을지 안쓰럽다. 또한 1등을 향한 노력보다 1등으로서의 고(高) 자세가 먼저 몸에 배어 그렇지 않아도 대기업의 횡포가 문제시되는 화학산업계의 고질적인 단점을 들춰낼까 심히 우려된다. 홍보효과를 노리고 줄곧 1등을 노래하며 “일관성”을 보이는 것은 좋지만 LG화학의 현 상태는 “편집증”에 가까운 <1등 병>이요, 너무 자주 접하다 보니 자칫 반복되는 메아리처럼 공허한 느낌이 든다. 진정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제품 수와 시장점유율로만 1등을 외치지 말고 과감한 R&D투자와 그 결실인 기술력으로 승부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자기 자신이 1등임을 더욱 빛나게 하는 방법은 당당한 자신감을 겸손함으로 살짝 가리며 비켜설 때가 아니겠는가? 안(기술력)과 밖(홍보력)을 탄탄히 다진 1등은 남들이 먼저 알아주는 법이다. 더욱이 기업의 홍보전략에 국내 언론사들은 슬쩍 눈감아줄지 몰라도 세계 화학시장은 <1등> 구호를 그대로 믿고 수용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조인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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