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화학제품 현물가격이 일제히 폭등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국의 춘절 연휴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재고 처리에 골몰해야 할 판국에 현물 시장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석유화학제품 가격이 대폭등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 남부 걸프 연안에 한파가 몰아쳐 텍사스를 중심으로 루이지애나 지역에서 가동하고 있는 석유화학 플랜트의 60-70%가 가동을 중단해 미국산 유입 감소가 불가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가동중단 소식이 알려진 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폭등 사태가 벌어진 것은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미국 플랜트가 가동을 중단하고 불가항력을 선언했다고 당장 미국산 유입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산이 아시아에 도착하기까지는 한달 이상 걸린다는 점에서 미국의 가동중단 충격은 3월 중순이 가야 가시화되고 기존 계약물량이나 미국 항구를 출발한 현물은 도착에 차질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런데도 현물가격이 대폭등한 것은 인위적인 조작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먼저 무역상들이 농단을 쳤을 개연성이 높다. 석유화학 무역상들은 일반적으로 저가에 구매해 고가에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고, 폭발사고 등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현물가격 끌어올리기에 열중이다. 미국 한파는 무역상들이 장난을 치기에 가장 적합한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는 중국 메이저인 사이노펙이 대폭등에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시아 현물가격 폭등에 앞서 중국 거래가격이 톤당 1000위안 안팎으로 대폭등한 것이 잘 증명해주고 있다. 중국 자체 공급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인 폭등사태가 발생한 것은 메이저인 사이노펙, CNPC가 선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아시아 현물시장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플래츠는 대폭등의 이유로 한국산 공급이 줄어들었거나 공급을 중단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석유화학 현물시장은 물건을 직접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서류로 거래한다는 점에서 공급 농단 여지가 크다.
그렇다면, 무역상을 비롯해 중국 메이저, 한국 석유화학기업이 단독으로 대폭등을 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무역상들이 작전에 돌입해도 국내기업들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고,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아시아 현물 공급을 한국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
결국, 무역상을 중심으로 중국 메이저, 한국 석유화학기업 3자가 미국 한파를 기화로 담합을 자행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니 짐작이 아니라 사전 담합을 통해 대폭등을 유발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상을 초월한 대폭등 현상이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석유화학기업들이 수급 타이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공급을 조절해 현물가격 급등 또는 폭등을 유도할 수는 있다.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생태적 특성이고 공급 조절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3자가 담합해 폭등을 유도했다면 다른 문제이다. 공정거래를 가로막는 카르텔로 건전한 거래 질서를 어지럽혀 거래 상대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고 공정거래법에 저촉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검찰권마저 약화된 틈을 이용해 카르텔을 저질렀다면 더욱 문제로 강력한 제제가 요구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상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법무부도 요지경이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