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입을 전면금지함에 따라 국내 정유 및 석유화학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미국이 5월2일부터 이란산 원유에 대한 수입금지 예외조치를 전면 해제할 것이라고 예고하자 외교부를 통해 연장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Reuters)는 이란산 컨덴세이트(Condensate)를 주로 사용하는 한국 석유화학기업들은 이란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분석하고 미국도 정부 차원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한국의 요청이 좌절됐다.
국내에서는 SK인천석유화학, SK에너지, 현대케미칼, 한화토탈 등이 컨덴세이트를 사용하며 이란산 수입비중이 2018년 1분기 기준 51%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4월에는 수입 컨덴세이트 가운데 이란산 비중이 무려 58.5%에 달해 최대 비중을 차지했으나 5-8월 30% 안팎 수준으로 하락했고 9월에는 이란산 수입이 전혀 없었다. 미국이 이란산 수입을 전면 차단할 예정이라고 밝히자 먼저 수입을 줄였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앞서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이란산 컨덴세이트를 대체할 수 있는 유종으로 미국 서부텍사스 원유(WTL: West Texas Light)를 테스트했다고 보도했으나 국내 석유화학 관계자들은 WTL 테스트는 수입 다변화를 위한 것일 뿐 이란산 컨덴세이트를 대체할 가능성은 없다고 부인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4월22일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조치와 관련해 5월1일까지가 시한인 한국·중국·인디아·일본·터키 등 8개국에 대한 한시적 제재 예외조치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으며, 5월2일부터는 이란과 원유를 거래하는 기관이나 관련기업은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된다.
이란산 원유를 일일 평균 40만배럴 수입하는 최대 수입국인 중국은 미국의 일방적 조치를 비난하며 이란산 원유를 앞으로도 계속 수입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다만, 사이노펙(Sinopec)과 CNPC는 수입을 중단했다.
미국은 현재 이란의 원유 수출량이 하루 100만배럴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국제유가 안정을 유지할만한 많은 공급원이 있다며 상황을 낙관하고 있다.
하지만, 원유보다 컨덴세이트를 주로 수입하는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나프타(Naphtha) 함량이 70%에 달해 다른 지역보다 경쟁력이 우수한 이란산을 대체할만한 수입원이 없다는 점에서 타격이 심각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조치에 따라 나프타 및 컨덴세이트 수입처를 오스트레일리아, 러시아로 전환하고 있다.
한화토탈은 2019년 나프타 직접 수입량을 크게 확대할 계획이다. 그동안 이란산 초경질유를 수입해 생산한 나프타를 투입했으나 이란산 수입이 막혔기 때문으로, 한화토탈은 2018년 이란산 원유 1900만배럴을 수입함으로써 국내 석유화학기업 가운데 가장 많았다.
한화토탈 관계자는 “2019년 초에는 이란산 초경질유와 나프타 직접수입 비율이 80대20 정도로 나타났으나 이란산 원유 수입이 중단되면 이란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초경질유와 나프타 수입비중이 50대50 정도로 변경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석유화학기업들은 이란산 원유를 대체해 수입하던 카타르산 대신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산으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이란제재 발표 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카타르산 원유 도입도 어려워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좁은 해협이다.
카타르산 컨덴세이트 수입량 비중은 2018년 1-4월 29.7-42.9%에 머물렀지만 6-7월에는 50% 수준으로 올라섰고 이란산이 아예 수입되지 않았던 9월에는 80.4%로 치솟았다.
한국은 이란제재의 예외국으로 인정받은 180일 동안 하루 평균 20만배럴에 그치는 수입한도 내에서 이란·카타르 외에도 나이지리아·노르웨이·리비아·말레이·필리핀·오스트레일리아 등 다양한 지역의 컨덴세이트를 수입함으로써 대비해왔다.
그러나 대개 월별 수입량이 1000배럴을 넘지 않아 이란·카타르의 대안이 되기 어렵고 가격 측면에서도 수익성이 맞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화토탈과 같이 나프타를 직접 수입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으나 수입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 완전한 대안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가 없어도 수입처 다변화는 필수적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석유화학 관계자는 “이란은 최근 제재 문제도 있지만 컨덴세이트를 생산해 자국 설비에 투입하는 양이 점점 많아져 수출량이 줄어드는 추세”라며 “국내기업들도 수입처 다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석유화학기업들은 초경질유 수입처가 바뀌고 나프타를 직접 구매해야 할 상황에 처하면서 2분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