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틀에 갇히는 순간 발전은 없고 망하는 지름길에 들어서게 된다. 1990년대 초 <W이론>을 통해 한국 사회의 위기를 예견했던 서울대 이면우 교수가 <창의력>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 강조한 말이다. 이면우 교수는 2월1일 밤 KBS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프로그램에 출연해 “구공탄이 경쟁력을 10% 올리면 도시가스를 이길 수 있느냐” “솜틀집이 고임금 저효율을 개선하면 캐시밀론을 이기느냐” “CD가 발전하면 MP3를 넘어설 수 있느냐”면서 한국인의 고정관념, 낡은 패러다임을 깨야 발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영특한 민족, 기가 센 민족, 에너지가 넘치는 민족이 이토록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옛날부터 내려온 잘못된 틀에 갇혀 있는 줄 모르고 있었고, 깨려고도 안 했으며, 낡은 틀 안에서 자꾸 경쟁력 10% 올리기에 열중하면서 합심전력, 일치단결과 같은 정신 나간 소리나 한 탓이라고 꾸짖었다. 그리고 <창의성 이론>을 바탕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포기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라>, <변할 것과 변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구분하라>, <빠른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느린 파문을 주목하라>고 주문했다. 일치감치 저 세상으로 도망간 양주동 선생이 들으면 불벼락을 내릴지 모르겠으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으면서도 같은 논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옛 것과 새 것은 기초가 같다는 측면에서 전혀 다르지 않으나, 옛 것을 발전시켜 전혀 다른 새 것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IMF보다 더하다는 경제위기의 한 가운데 서서 그것도 석유화학제품 가격 폭락으로 생사를 다투는 마당에 무슨 헛소리냐고 꾸짖는다면 할 말은 없으나, 우리나라 경제·산업계가 그렇고 석유화학산업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판국이어서 낡은 틀을 깨고 무엇인가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줄 것을 당부하기 위해 던지는 서설이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삼성·현대의 참여로 과당경쟁이 시작된 1990년대 초반 생사가 위태로운 지경으로 내몰렸으나 1990년대 중반 세계경제의 호황과 카르텔에 따른 과당이익을 바탕으로 신증설에 박차를 가해 10년 사이에 세계 4-5위의 석유화학 생산대국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전체적으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고 수출입을 포함한 무역액도 10위권이며, 에너지 소비는 선진국을 앞지르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소비량이나 소비증가율이 산업 생산규모를 추월했고, 온실가스 배출량이나 배출증가율 역시 월등해 문제가 되고 있다. 석유화학, 석유정체, 철강, 제지, 시멘트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을 육성한 결과로, 앞으로 에너지 다소비 및 과소비, 온실가스 과다배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경제·산업 전체가 생존의 위기에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개발도상국이라는 이유로 온실가스 배출감축 의무를 지지 않았으나 앞으로는 배출감축 의무를 회피할 마땅한 방법이 없고 또 회피해서도 아니되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에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부시 정부와는 정반대로 온실가스 배출감축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한국을 비롯한 중진국에 대해서도 온실가스 배출감축 의무를 부과할 것을 강력히 천명하고 있다. 문제는 에너지 소비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급격히 감축하고서도 현재와 같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생산량을 30% 줄여 고부가가치화하면서 인력을 30% 감축하고 연봉 또한 30% 삭감하는 3R 전략을 시행해야 하는 까닭이다. 만약, 에너지 다소비와 낭비가 개선되지 않고 온실가스 배출감축 의무를 지게 된다면 석유화학이나 석유정제는 엄청난 배출감축 비용 때문에 수출경쟁력이 추락함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생존이 불투명해질 것이 분명하다. 온실가스 배출감축 비용을 포함한 코스트 경쟁력을 고려하는 전혀 새롭지도 않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기준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해야 하는 시점이다. <화학저널 20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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