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학기업들이 풍전등화의 신세라는 점을 부인하는 화학기업 관계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석유화학기업들이 에틸렌 및 PE의 강세를 바탕으로 2015년에도 상당한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렇다고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해 장사를 잘하고 있다고 자랑할 수는 없는 상태이다.
더군다나 중동이 천연가스 베이스 에틸렌을 바탕으로 PE 생산을 확대하는데 그치지 않고 각종 유도제품 생산을 확대하고 있어 3-4년 후에는 전반적으로 경쟁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셰일가스 베이스 에틸렌 생산능력을 1000만-1200만톤 확대하고 대부분을 PE 생산에 투입할 예정이어서 2016년 말부터는 미국산 PE가 중국을 중심으로 대량 유입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중국 역시 석탄화학을 집중 육성하고 있어 2-3년 후에는 PE, MEG의 자급률이 급격히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중동, 미국, 중국의 3각 공세에 직면하고 있으며 3각 파고를 현명하게 넘어서지 못하면 나락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신세이다.
그렇다고 정밀화학이나 기능소재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정밀화학은 페인트를 중심으로 해외진출이 줄을 잇고 있으나 조선이 극도로 침체되면서 자동차용을 제외하고는 전망이 극히 불투명하고, 염료는 이미 사양화됐으며, 점·접착제도 고부가가치제품은 선진국 화학기업들이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계면활성제는 그런대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으나 역시 기술개발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능소재 역시 태양광 시장 침체로 폴리실리콘이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전자소재는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반도체용 화학제품도 반도체 강국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일본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2차전지는 LG화학과 삼성SDI가 글로벌 선두를 달리고 있으나 역시 소재는 일본산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왜 그러할까? 석유화학이건, 정밀화학이건, 기능소재이건 하나같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미래비전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을 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의 사업능력을 정확히 판단하고 100년, 200년은 아니더라도 20-30년 앞이라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하지만 돈이 된다면 과열경쟁도 마다하지 않고 단기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으면 뛰어들지 않는 단견이 문제이다.
10년, 20년 앞을 내다볼 수 있는 판단력도 갖추지 못했으니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2세, 3세가 뛰어들면서 미국식 돈놀이를 선호함으로써 현상마저 악화되는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Dow Chemical은 글로벌 2대 화학기업이지만 미래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 사업성이 양호하다고 판단되면 M&A를 적극화하고, 사업성이 떨어지거나 미래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매각하거나 분사하는 형태로 사업을 최적화하고 있다.
DuPont도 장기간 글로벌 화학 메이저로 활약해왔음에도 농업화학, 생명과학 전문기업으로 이행하기 위해 전문영역이 아닌 사업은 매각을 주저하지 않았고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TiO2 사업마저도 분사하는 결단을 내렸다. 당장의 매출이나 수익이 문제가 아니라 오직 장래성을 놓고 판단하고 있다.
Dow와 DuPont은 구조조정으로도 부족하다고 판단해 DowDuPont으로 통합한 후 농업화학을 중심으로 3개 사업을 특화시키기로 결정했다. 오너가 없는 것도 아닌데 지분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전문경영진이 줄을 서 있음에도 이해관계를 초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래비전이 있느냐, 장기적으로 사업성이 양호한가,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 등등 가치경영이 바탕에 깔려 있다.
<화학저널 2016년 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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