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기업들이 외부압력 행사를 위해 사외이사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
사외이사 제도는 1997년 외환위기 발생 이후 대형 상장기업에 3인 이상을 두도록 제정됐으며 2001년 의무화됐다.
국내 화학기업은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부분 사외이사를 두고 있으나 화학경영, 회계, 감사와 상관없는 정부 권력기관 출신을 임명해 외부압력 행사에 활용하고 있다.
사외이사 임명은 지배주주나 경영진을 견제한다는 본연의 목적에 맞게 선임되지 않고 지배주주가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선임되거나 지배주주나 경영진과의 친목관계에 기초해 선임됨으로써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미국, 유럽 등은 사외이사가 주주와 경영진 사이의 대리인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국내기업들은 지배주주 권력이 막강해 사적 이익을 위한 임명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사외이사 제도는 독립성과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으나 화학기업들은 권력기관 출신들을 임명해 공정거래위원회, 관세청 등에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세무조사, 중소기업적합업종, 불공정거래, 반덤핑 등 정부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LG화학은 남기명 전 법제처장과 서울대 화학생물공학과 오승모 교수를 2010년부터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있으며 차국헌 서울대 화학생물공학과 교수와 안영호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을 2016년 신규 선임했다.
안영호 사외이사는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해 공정위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여기에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앤장은 정부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 처분 취소소송에서 LG화학 등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어 독립성이 결여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차국헌 교수는 줄기세포 배양효율을 높이는 나노막 개발을 포함해 생체모방과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어 LG화학이 농화학 및 바이오 투자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서울대학교는 사외이사 겸직 제한 규정을 강화해 LG화학이 2015년 10월 서울대학교 김장주 교수를 사외이사에서 사퇴시켰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나 2016년 서울대학교 교수 2명이 사외이사에 임명돼 겸직 제한규정이 강화됐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관계자는 “김장주 교수는 OLED (Organic Light Emitting Diode) 소재를 집중 연구하고 있으나 LG화학이 OLED 조명 사업을 LG디스플레이에게 넘기는 등 OLED 사업을 축소하는 일환으로 사외이사를 차국헌 교수로 교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구용역을 수주한 교수는 경영감시 책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수 없고 실제 교수 출신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안건에 찬성을 나타내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공정성이 의심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김윤하 전 금감원 일반은행 검사국장, 김철수 전 관세청 차장, 박용석 전 법무연수원 원장 등 사외이사 3명을 모두 권력기관 출신으로 신규선임했다.
롯데케미칼은 2016년 세무조사를 앞두고 권력기관 영입을 통해 외부압력을 행사하겠다는 의혹이 확대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이 2012년 세무조사를 받은 바 있으며 국세청은 2005년부터 매출액 5000억원 이상인 대기업에 4년마다 정기 세무조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LG화학은 2014년 특별 세무조사를 받아 1000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해 4년 후인 2018년에도 사외이사를 권력기관 출신으로 영입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김문순, 임안식, 김영학, 이시우, 한동석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임안식 이사는 김승연 한화회장과 고교 동문으로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출신이며 김승현 회장의 법정 변호인을 활약했던 것으로 나타나 지배주주의 친분 관계 인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알콜은 2015년 이종익 전 서울세관 통관국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한 후 초산에틸(Ethyl Acetate) 반덤핑 연장을 신청해 3년간 재연장 판정을 받았다.
일부에서는 중국산 초산에틸이 반덤핑 연장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사외이사 입김이 일부 작용해 반덤핑 연장이 가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KCC는 권오승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와 송태남 전 고려화학 중앙연구소 상무를 2년 임기로 재선임해 사외이사 근속연수가 8년째에 진입했다.
LG화학은 2명의 사외이사가 6년째 근속하고 있어 장기연임에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KCC의 권오승 이사와 송태남 이사는 오랜 사외이사 수행으로 내부화돼 독립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경영진 감시능력이 약화됐다고 평가받고 있다.
사외이사의 과도한 장기 연임을 제재할 강제성은 없으나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5년 장기연임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기업은 2016년 8월부터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동일인물이 5년을 초과해 사외이사로 연임하는 것을 금지시킬 예정이다.
시장 관계자는 “금융기업에 이어 경영진을 감시하는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장기연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하지만, 국내기업들은 지배주주가 사외이사를 임명하고 있어 경영진 감시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고 주장했다. <허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