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자력발전은 탈탄소화 움직임과 함께 다시 부상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차세대 원자로 SMR(소형 모듈원전)을 상용화하기 위해 SMR 산업 얼라이언스를 설립했으며 현재까지 1000곳 이상이 참여를 신청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벨기에 정부와 공동으로 개최한 원자력 에너지 정상회의에는 유럽 뿐만 아니라 30여개국 정상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각국은 탈탄소화 움직임에 동참하면서도 재생에너지만으로는 화석연료 탈피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원자력발전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의 6분의 1에서 3분의 1 정도 출력을 내는 소형 원전으로 대형 원전보다 건설기간이 짧고 운영·관리비용이 적게 들어 발전단가를 낮출 수 있으며 입지 제한이 많지 않고 안전장치를 구비하기도 쉬워 도시 근교에 들어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따라 최근 SMR을 도시 인근에 건설해 송전탑 없이 도시에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30년까지 SMR 연구를 수행할 국가산업단지를 경주에 건설할 예정이다.
유럽, SMR을 넷제로 기술로 육성
유럽은 EU 내에서 원자력발전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가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면서 원자력발전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리는 1990년까지 원자력발전소 4곳을 모두 폐쇄하며 탈원전에 성공했으나 2023년부터 다시 원자력발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EU 집행기관인 유럽위원회는 SMR이 혁신적인 안전 기능을 갖추었기 때문에 각종 산업에 원자력 기술을 도입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SMR 산업 얼라이언스를 바탕으로 유럽 원자력 밸류체인을 부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SMR은 저탄소 전기와 열을 공급할 수 있어 수송, 화학, 철강, 지역난방 등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시급한 분야의 탈탄소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SMR 산업 얼라이언스는 프로젝트 추진자와 금융기관, 규제당국, 연구자, 정부 입안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협력을 조정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원 대상 중 가장 유력한 분야는 안전이며 비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선진 SMR 기술을 대상으로 로드맵 및 전략적 행동계획을 작성할 예정이다.
유럽위원회는 2023년 3월 유럽 넷제로 산업법(NZIA)을 채택하면서 SMR 기술을 넷제로 기술로 분류했으며 개발 가속화를 지원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에서 물을 분해하며 만든 수소를 재생에너지로 수전해를 거쳐 만든 그린수소와 유사하게 탈탄소 대책으로 인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용량 3배 확대
원자력 에너지를 탈탄소 에너지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유럽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주류로 자리를 잡고 있다.
미국은 2023년 12월 개최된 제28차 유엔(UN)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원자력발전을 3배 확대하겠다는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Net-Zero Nuclear Initiative) 선언문을 제출했으며 한국, 일본, 프랑스, 핀란드 등을 포함해 25개국이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는 205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실질적으로 제로(0)화하기 위해 세계 전체 원자력 발전용량을 2020년 대비 3배
로 확대하자는 내용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원자력기구와 세계 원자력협회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현재는 원자력발전 관련 프로젝트에 융자를 하지 않는 세계은행 등 금융기관에게 원자력발전 프로젝트도 융자 대상으로 포함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또 COP28에서는 파리(Paris) 협정 목표 달성 상황을 평가하는 글로벌 스톡테이크에 원자력도 저배출 기술 중 일부로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일부에서는 탄소중립을 이유로 핵 개발을 장려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으나 IAEA 측은 핵 개발은 정치 지도자의 책임 영역이며 원자력을 녹색에너지로 활용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다우, 4세대 원자로 도입해 저탄소제품 확대
미국은 에너지부(DOE)가 추진하는 첨단 원자로 실증 프로그램(ARDP)을 통해 SMR 실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원자력 에너지에서는 전기 뿐만 아니라 원자로의 고열을 이용해 물을 열분해함으로써 수소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부는 원자로 열을 이용해 생산한 증기를 이용하는 방안을 포함해 SMR을 화학 플랜트에 활용할 때 경제성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누스케일파워(NuScale Power)가 자체 개발한 SMR을 이용해 에너지부 산하 오크리지(Oak Ridge) 국립 연구소와 기술 경제성 분석(TEA)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우(Dow)는 첨단 원자로 및 연료 기술 분야의 주요 개발기업인 X-Energy와 북미 산업설비용으로 그리드급 첨단 원자로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다우의 멕시코만 사업장 중 하나에 X-Energy가 개발한 4세대 원자로 Xe-100을 설치하고 2030년까지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면서 저탄소 전력 및 증기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우는 X-Energy 기술 도입을 통해 수요기업에게 저탄소제품 공급을 확대하고 이산화탄소(CO2) 배출량 감축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우는 쉘(Shell)과도 스팀 크래커 전기화를 추진하고 있다.
나프타(Naphtha)를 원료로 올레핀을 생산하는 스팀 크래커는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화학산업 중에서도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지적되고 있다.
다우는 스팀 크래커 뿐만 아니라 화학산업 전체에서 탈탄소화를 추진하는 것을 목표로 전기화 프로세스를 개발하고 있으며 청정 전력 조달이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에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2030년까지 주요 탈탄소 에너지로…
원자력발전이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재생에너지는 2030년까지 주요 탈탄소 에너지로 자리를 잡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새롭게 진행되고 있는 원자력발전 프로젝트 대부분이 2030년 이후 가동 예정이기 때문에 재생에너지가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으며 COP28에서도 110개국 이상이 재생에너지 3배 확대 선언에 서명했다.
다만, 재생에너지 3배 확대 선언에서도 2030년 이후에는 원자력을 포함해 탈탄소화 기술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보았으며 참여국 중 많은 수가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에도 서명한 것으로 파악된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투자 회수에 상당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2030년 이후 원자력발전과 공존 가능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지느냐가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만약 경쟁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2030년까지 투자가 정체되고 전반적으로 탄소중립 움직임이 늦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또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방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핵융합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원자력발전의 경쟁력이 더 향상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투자가 침체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 경주에 SMR 국가산업단지 건설
국내에서는 경주에 SMR 연구를 수행할 국가산업단지를 2030년까지 건설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최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서 경주시와 SMR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경주 SMR 국가산업단지 사업은 경주 문무대왕면 일원 150만평방미터에 SMR 실증·생산·수출 특화단지를 조성하고 SMR 제조 플랫폼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으로, 사업기간은 2030년까지이며 경제 효과는 7조8000억원, 고용 효과는 2만80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서 한국형 SMR인 i(혁신형)-SMR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 넷제로시티를 탄소중립을 실현할 해법으로 제안한 바 있다.
스마트 넷제로시티는 SMR을 주요 발전원으로 삼아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연계해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도시 형태이다.
황주호 사장은 “SMR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삼는 스마트 넷제로시티에서는 에너지 소비비용이 일반 도시 대비 30%까지 대폭 절감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에너지원의 97%를 해외에 의존하고 매년 에너지를 1900억달러 상당 수입하고 있는데 자동차와 반도체 수출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며 “에너지 안보에 대한 확실한 해답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산업계에서 SMR 개발을 촉구한 일화로는 “1년에 전기요금으로만 2000억원을 내는 한 국내기업 사장이 내년에는 500억원을 더 납부해야 한다면서 SMR을 언제부터 가동할 수 있는지 채근한 일이 있었다”며 “SMR 시장은 수요가 있는 곳이 참여해 궁극적으로 민간 위주로 운영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도 최근 원자력발전소의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칙 40년, 최장 60년으로 원전 수명을 유지했으나 2023년 5월 60년을 넘겨서도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세키무라 나오토 전 도쿄(Tokyo)대 부총장은 “후쿠시마(Fukushima) 사고를 계기로 원자력발전소 안전규정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윤화 책임기자: kyh@cheml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