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정유기업들이 환경규제와 석유제품 수요 감소에 대응해 석유화학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일본도 석유‧화학 구조재편에 나서고 있다.
급격한 산업화로 각종 환경문제가 불거지고 있고 단순 유독물질 배출 규제를 넘어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구조재편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2030년 이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하고 2060년에는 실질적 배출량을 제로(0)화함으로써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천명함으로써 석유‧화학산업 재편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일본은 정유사업이 한계에 다다른 가운데 석유화학 사업도 중국‧동남아시아가 급성장하면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지자 정보전자, 헬스케어 중심의 스페셜티 케미칼을 수익원으로 육성하고 범용제품으로 대표되는 석유화학 사업은 탄소중립 목표 설정에 따라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정유사업, 환경규제에 석유 수요 감소로 구조조정 불가피
국내 정유기업들은 탈황설비 확충과 공정 시스템 개선으로 IMO(국제해사기구)의 선박유 규격 대응을 완료하고 석유화학으로 중심을 재편하고 있다.
IMO는 대기오염물질 배출에 따른 사회‧경제적 문제가 확대됨에 따라 해상 연료유의 황 함유량 규제를 점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2008년
10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연료유의 황 함유량 기준을 4.5%에서 0.5%로 대폭 낮추었다.
여기에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이동량이 줄어들면서 휘발유, 등유, 경유 등 석유제품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전기자동차(EV) 시대가 도래하면서 수익모델이 흔들려 석유화학 투자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석유화학 사업은 석유정제 공정에서 생산하는 나프타(Naphtha)를 활용할 수 있는 스팀 크래커 투자에 집중하면서 에틸렌(Ethylene), 프로필렌(Propylene)을 원료로 투입하는 PE(Polyethylene), PP(Polypropylene)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국내 정유기업들은 이미 석유정제의 부산물을 활용해 아로마틱(Aromatics) 계열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나 올레핀(Olefin) 계열은 투자 경험이 없어 석유화학기업과 합작하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국내 정유기업 중 SK이노베이션은 전기자동차(EV) 배터리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는 올레핀 생산을 본격화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온은 배터리 생산능력이 2020년 기준 30GWh로 2030년 500GWh까지 확대할 계획이고, SKIET(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2021년 기준 한국, 중국, 폴란드의 배터리 분리막 생산능력이 총 12억1000만평방미터에 달하는 가운데 2024년까지 27억3000만평방미터로 확대할 예정이다. SKIET는 2020년 배터리 습식 분리막 1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일본 아사히카세이(Asahi Kasei)를 제치고 글로벌 시장점유율 26.5%로 1위에 올랐다.
GS칼텍스는 MFC(Multi-Feed Cracker) 건설에 2조7000억원을 투자해 상업생산을 앞두고 있고,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아람코(Saudi Aramco)의 TC2C(Thermal Crude to Chemicals) 기술 도입 등에 7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정유 매출비중을 2030년 45%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에틸렌 생산능력 75만톤의 HPC(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유기업들이 석유화학 투자를 늘리면서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은 석유화학기업을 포함 2021년 1029만톤에서 2023년 1329만톤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석유화학‧정유 사이의 치열한 가격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중국, 206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80%로 확대
중국은 탄소중립 달성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2021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결정한 제14차 5개년 계획을 통해 경제성장 목표를 제시했으며 경제사회 발전 목표로 △경제발전 △이노베이션 △민생‧복지 △생태환경 △안전보장 등 5개 분야에서 총 20개 항목을 설정했다.
생태환경과 관련된 5개 목표는 2020년 대비 단위 GDP(국내총생산)당 에너지 소비량을 13.5%,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은 18% 감축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으며 구속력이 있는 필수목표로 지정하고 있다.
5개 분야 20개 목표 가운데 생태환경 분야 외에 구속력을 가진 목표는 민생‧복지 분야의 노동인구 평균 교육연수, 안전보장 분야의 식량 종합 생산능력 및 에너지 종합 생산능력 관련 내용밖에 없어 중국 정부가 환경 목표 달성에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2021년 주요 선진국과 글로벌기업들이 잇따라 탄소중립 목표를 공개한 가운데 중국도 다른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어 온난화 대책과 관련된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9월 유엔(UN) 75주년 총회에 보낸 영상에서 온실가스(GHG) 배출량 감축과 관련된 3060목표(쌍탄목표)를 발표하고 2030년 이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하고 2060년에는 실질적 배출량을 제로화함으로써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공개했다.
중국 당국은 쌍탄목표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1+N 정책체계 설정에 매진하고 있다.
2021년 10월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이 기본방침인 신발전이념의 완전하면서 정확한 수행 및 탄소피킹과 탄소중립을 위한 행동계획의 적절한 실시를 위한 의견을 공개하고 비화석 에너지가 전체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25년 20%, 2030년 25%, 2060년 80% 등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또 2030년까지 풍력‧태양광 발전 설비용량을 총 2억kW 이상으로 늘리고 GDP 단위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65% 이상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1+N 정책체계를 통해 산업성장 전략은 에너지 안전보장, 도시‧농촌이나 교통 인프라 개발 계획까지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 배출 감축안을 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1차에너지 가운데 약 60%를 석탄에 의존하고 있어 쌍탄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경제구조 개혁이 필수적이며, 중국 정부는 현재의 5개년 계획 중 석탄화력발전을 포함한 경제활동에서 석탄 사용량 증가를 엄격히 규제하고 차기 5개년 계획을 시행하는 2026-2030년에는 사용량을 서서히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계획이다.
전력 부족 문제가 심각했던 2021년 9월 소규모 탄광 채굴‧조업을 재개하며 석탄 베이스 발전량을 늘렸으나 일시적인 조치이고 장기방침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석유‧화학, 설비투자 규제에 구조재편 본격화
중국 정부의 장기방침은 화학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2021년 10월 에너지 효율 규제 엄격화를 통한 석유화학 중점산업의 에너지 절감 및 배출 감축 추진 행동계획(2021-2025년)과 에너지 소비가 많은 산업의 에너지 효율 선진수준과 기본수준(2021년판) 등을 발표했다.
에너지 고소비 및 고배출 등 양고(兩高) 프로젝트 확대를 엄격히 억제할 예정이며 원유 정제설비와 스팀 크래커 뿐만 아니라 암모니아(Ammonia), 탄화칼슘 생산설비 등을 대상으로도 생산 단위당 원료 사용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앞으로는 정유공장과 석탄화학, 석유화학, 금속 등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은 소규모 생산설비의 신규투자 인가를 받을 수 없고 비효율적인 기존 설비는 통합 혹은 집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공장은 앞으로 석유제품 처리능력이 하루 4만배럴 이하인 원유 정제설비의 신규투자를 허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원유 수요의 70% 이상을 수입하고 있지만 처리능력이 수요를 상회하고 있어 대형 정유공장도 투자 인가를 받기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된다.
석유화학도 에틸렌 생산능력이 30만톤을 하회하는 스팀 크래커와 10만톤 이하의 카바이드(Carbide) 플랜트는 조기에 가동을 중단시키고 장기간 가동중단 상태인 좀비 플랜트는 폐쇄할 계획이다.
중앙‧지방정부는 화학기업 등이 에너지 절감 혹은 배출량 감축과 관련된 기술 개발에 나선다면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합성가스 베이스 1단계 올레핀 생산, 원유 직접분해를 통한 에틸렌 생산,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 활용, 프로세스 폐액 및 증기 회수, 사용 열량을 최소화하는 열교환 핀치 기술 활용 등이 대상이며 스팀 크래커의 전기화와 관련된 기술 개발 및 실용화도 촉진하고 있다.
산업 전체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인수합병(M&A)도 장려한다.
2021년 5월 사이노켐(Sinochem)과 켐차이나(ChemChina) 등 국유 화학 대기업 2사의 경영통합을 통해 신생 사이노켐이 탄생했으며 민간 영역에서도 대규모 M&A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7대 석유화학기지와 다른 대규모 화학공업원구의 공장 이전을 추진함으로써 기지 및 원구의 산업 집적화와 고도화를 도모할 계획이다.
화학단지 내부에서는 원자력발전을 통해 전력 공급을 실증하고 있으며 여러 입주기업들이 용역설비나 각종 인프라를 구축‧공유하는 활동을 에너지 절감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 수단으로 중시하는 등 이종산업과의 협력을 촉진할 방침이다.
중국은 2020년 말 기준 에틸렌 생산능력이 3500만톤이고 앞으로 수년 동안 30% 정도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나 당국이 설비투자를 엄격히 관리하면서 에틸렌 생산능력 확대 속도가 다소 둔화될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2024-2025년에는 미인가 프로젝트를 포함해 에틸렌 생산능력 1000만톤 이상의 설비투자가 예정돼 있다.
일본, 탄소중립 달성 위해 범용제품 축소
일본 화학기업들은 포트폴리오 개혁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정보전자, 헬스케어 중심의 스페셜티 케미칼은 주요 수익원으로 성장하고 있으나 범용제품으로 대표되는 석유화학 사업은 탄소중립 목표 설정에 따라 재편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석유화학 사업의 수익성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재편했으나 최근에는 호황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변화에 대응해 재편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일본은 석유화학 컴플렉스가 분산돼 있고 주력 생산하고 있는 스페셜티 케미칼 원료로 석유화학제품을 활용하고 있어 무조건적 재편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최종 수요기업의 방침 변화에 맞추어 탄소중립 대응을 가속화하고 있다.
많은 일본 화학기업들이 소재를 공급하고 있는 애플(Apple)은 2030년까지 사업 전체 및 제조 서플라이체인, 생산제품 라이프사이클 등 모든 과정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후 애플 아이폰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전자소재에서 탄소중립 대응이 강력히 요구되고 있으며 당장 탄소중립형으로 전환하지 않는 소재는 2020년대 후반 소재 경합에서 도태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아이폰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정보전자 분야에서 서플라이체인의 중요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반도체 회로 형성에 사용하는 포토레지스트는 JSR, TOK, 신에츠케미칼(Shin-Etsu Chemical), 스미토모케미칼(Sumitomo Chemical), 후지필름(Fujifilm) 등 일본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의 약 90%를 장악하고 있다.
포토레지스트는 합성수지, 감광재, 용제를 원료로 제조하며 원료 설계와 조합과 관련된 기술‧노하우가 성능, 품질을 좌우하기 때문에 시장 성향이 폐쇄적이고, 포토레지스트 원료 대부분은 석유화학제품이어서 석유화학 재편에 따른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헬스케어 역시 석유화학기업들이 축적한 기술‧노하우로 성장한 사례가 많아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미쓰이케미칼(Mitsui Chemicals)은 생명 & 헬스케어 사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하고 있으며 이미 다른 화학기업들이 대거 진출한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CDMO 분야의 경쟁이 치열한 편이나 지력증강제, 석유채굴용 약제 분야에서 사용하는 아크릴아마이드 사업을 통해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유기합성과 효소 기술을 응용해 핵산의약, 항체의약, 유전자 치료 등 새로운 치료수단 영역에서 시장을 개척해나갈 계획이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상호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여러 종류의 사업을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복합기업 할인(Conglomerate Discount)에 따른 주가 저평가가 불가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화학산업 특유의 다양성과 탄소중립에 어느 정도로 기여하고 있는지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대부분 소비재 브랜드들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가운데 원료를 공급하는 화학기업들은 소비재 브랜드보다 20년 이른 시기에 탄소중립을 실현해야 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하지만, 석유화학 사업은 공공성이 높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육성할 스페셜티 케미칼 영역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홍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