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생사의 기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다시는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며 이미 사망 선고를 내린 상태이다.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이 신규 참여한 1990년대 초반부터 생사가 오락가락하기를 반복한 지 30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왜 그랬을까? 석유화학 관계자라면 누구나 인식하고 있겠지만 단연 코스트 경쟁력이 거론된다.
기초 원료로 투입하는 나프타가 경쟁력이 없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나프타 코스트는 경쟁 원료인 에탄의 3-4배에 달하고 심할 때는 5-6배에 이른다. 중동의 경쟁력이 높은 이유이고, 미국도 2000년대 들어 셰일가스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석유화학 경쟁력이 크게 올라섰고 최근 들어서는 에탄 베이스 PE, PVC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어떠한가? 나프타의 원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석탄 베이스 신증설을 확대한 가운데 최근에는 에탄 베이스 건설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주도권 경쟁을 본격화하면서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베네주엘라, 러시아, 이란산 원유를 국제시세에 비해 20-30% 낮게 수입함으로써 석유정제와 함께 석유화학 경쟁력을 끌어올렸고 자체 수요가 둔화하자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신증설을 계속 추진함으로써 석유화학제품 자급률이 100%를 넘어섰고 2030년에는 에틸렌 생산능력을 1억톤 수준으로 확대해 아시아 시장을 장악할 기세이며,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중동도 원유에서 석유화학제품을 직접 추출하는 COTC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사우디, UAE의 COTC 베이스 에틸렌 생산능력이 1300만톤에 달해 한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원가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져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며, 중국과 중동, 미국 3각 편대에 포위되는 신세로 전락한 상태이다. 에틸렌과 나프타의 스프레드가 톤당 250-350달러에 달해야 손익분기점을 넘어 수익을 올릴 수 있으나 불가능하기 때문으로, 가동률 80%가 무너졌으며 수익을 올릴 수 없는 70%대 중반을 오르내리고 있다.
국내 정유기업들이 헤게모니를 잡고 석유화학산업을 주도하는 이유일 것이다. 대산단지는 현대오일뱅크, 여수단지는 GS칼텍스, 울산단지는 에쓰오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경제·산업계를 호령하던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존재감을 잃은 지 오래됐고, DL케미칼과 한화솔루션은 여천NCC 붕괴와 함께 이름조차 사라질 지경이다. LG화학은 배터리, 생명과학을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한화솔루션도 태양광이 지탱하고 있으나, 롯데케미칼은 생사가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석유화학기업들이 최근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소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나 늦은 감이 있고, 제약을 중심으로 한 바이오 투자도 쉽지 않은 상태이다. 매출액 확대를 최우선으로 추진했던 경영 관념을 바꾸기 쉽지 않고, 연구개발의 방향성 전환이 너무 늦었으며 개발 자세 또한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연구소를 완전히 해체하고 새출발하는 편이 낮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50-60달러로 회귀하기 어렵다는 관점에서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고, 정유 3사가 석유화학산업을 주도하는 방향으로 재편을 모색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다.